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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숨은 마을에서 은하수 마을로

용인 은이성지에서 안성 미리내성지까지


1827년, 여섯 살 아이였던 김대건과 그의 가족은 박해를 피해 은이골로 들어왔다. 1836년, 프랑스 선교사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모방(Maubant)신부는 은이골에서 15세 소년 김대건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 성사와 첫영성체를 내렸으며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된 김대건 신부는 그 해 은이골로 돌아와 교우들을 사목(司牧)했다.

그가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곳도 은이공소였다. 은이골은 김대건 신부에겐 종교적 본향이었다. 현재 은이골은 ‘은이성지’라 불린다. 은이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성당이 복원 건립되어 있다. 실제 성당은 2001년에 철거되었고 철거된 자재를 그대로 옮겨와 원래 모습 그대로 세웠다고 한다.



복원 건립된 김가항성당, 사진=용인시 


지난 2021년에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천주교수원교구와 용인시가 협력해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순례길을 정비했다. 순례길은 ‘청년김대건길’로 불린다. 김대건이 신부가 되어 은이성지를 찾았을 때도, 순교 후 미리내성지에 묻혔을 때도 그는 내내 20대 청년이었다. 여름과 같은 나이에 겨울처럼 살다 간 신념의 사나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가 없고 천주를 모르는 나의 판단이며 성직자 김대건의 마음은 믿음으로 내내 온화했는지도 모른다. 천주교인들은 그를 성인으로 추앙한다. 천주교인이 아닌 나도 그를 우러러본다.



미리내성지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동상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를 잇는 청년김대건길은 총 10.3km다. 대부분 구간이 용인시 관할이지만 미리내성지는 안성시에 속한다. 와우정사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약 3km에 은이성지가, 남쪽으로 약 8km에 미리내성지가 있다. 성지와 성지 사이에는 3개의 고개가 있고 고개마다 십자가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고개가 고비로 읽히는 것은 한양에서부터 안성까지 포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셔 온 17세 소년 이민식의 존재를 알아서 일테다. 신자 빈첸시오 이민식은 한강 변에 묻힌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몰래 꺼내 머리를 품에 안고 몸은 등에 업은 채 닷새를 걸어 미리내에 당도했다. 포졸들에게 발각될까 봐 밤에만 산길로 걸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유실되어 뼛조각조차 수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미리내성지 내 본당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로 걷는 길은 응달과 양달이 교차한다. 온통 숲이라 나무 사이로 볕이 들었다 사라졌다 한다. 한여름에는 그늘이 많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한겨울에는 낙엽 쌓인 바닥이 폭신폭신해 걷기 좋다. 도보 여행자에게는 무난하게 걸을 수 있는 트레킹코스인데 순례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숨은 마을에서 은하수 마을(미리내는 순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한다)까지의 여정은 점차로 나아감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았던 박해받은 자들의 믿음은 한 번도 꺾인 적 없이 지순하게 이어져 오늘의 평화에 닿았다. 애덕고개를 넘어 비로소 미리내성지에 닿았을 때, 분지와 같은 마을은 한낮에도 별빛이 넘실거렸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용인시 : 놀이동산과 부동산 사이에서>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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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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