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명성황후

여주, 그리고 명성황후 생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경기도를 빛낸 역사 속 인물 이야기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명성황후는 ‘마지막 황제 고종의 비’이면서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한국사에 있어 많은 주목을 받은 인물입니다. 뮤지컬 및 드라마로도 많이 각색되어 대중에게도 합니다. 그녀는 살아생전 국내는 물론 뛰어난 외교술로 국외에서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습니다.


조선말기, 우리나라를 여행차 방문했던 영국의 비숍 여사와 선교사 언더우드의 부인은 명성황후의 지성과 외교적 능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들 조차도 그녀를 호걸, 여장부로 평가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활발한 정치활동은 늘 그녀의 신변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의 국정을 자신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었던 일본인들에게 있어 명성황후는 눈에 가시와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러시아를 동원해서 자신들을 조선에서 축출시킬 계획을 세우던 명성황후의 계획을 무산시키고자 명성황후를 시해했습니다.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경복궁안으로 침입한 일본인들에게 명성황후는 처참하게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명성황후는 일본인들에게 시신마저 불살라지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성황후를 이렇게 '조선시대 제일의 비운의 왕비'로 기억합니다. 가장 착잡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조선의 국모가 됐던 명성황후. 그런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아마도 왕비로 간택되기 전인, 유년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185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명성황후는 고종의 비가 될 때까지 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 그곳에 머물렀는데요. 이를 기념해 경기도 여주는 명성황후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유형문화재 제 46호로 지정받았습니다. 안채만 남아있던 곳을 사랑채와 별당, 행랑채를 복원시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현재, 명성황후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나라사랑교실, 다도교실, 전통예절교실 등)도 운영하고 있으니 예약 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바로 맞은 편에는 명성황후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되었습니다. 명성황후와 고종의 영정뿐만 아니라 관련된 역사지식들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게 건축되어서 나들이 하기 좋은 봄, 가을에 찾아가면 더욱 좋습니다.





한편, 명성황후 생가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감고당입니다. 감고당은 명성황후가 한양으로 올라간 후 왕비로 책정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원래는 종로구에 있다가 1966년 도봉구로 옮긴 후, 철거위기에 처한 건물을 명성황후의 고향인 여주로 이전 복원했습니다. 또한 본래 감고당은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하여 지어준 집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이 곳에서 거처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비로 책봉된 명성황후는 과거 인현왕후의 일을 회상하며 이곳을 ‘감고당(感古堂)’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그 의미를 알고나니, 두 왕후의 슬픈 인연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information

  • 명성황후 생가

    주소/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문의 / 031-880-4024

    관람시간/ 3~8월 : 9:00 ~ 18:00, 11~2월 : 9:00 ~ 17:00

    관람요금/ 어른 1,000원, 청소년 및 중고생 700원, 초등학생 500원 (6세이하, 65세 이상 무료)

  • 경기천년 인물기행

    /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경기도를 빛낸 역사 속 인물 이야기를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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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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