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옆집에 사는 예술가

세계의 절반만을 털어놓는 이

남양주_송필 작가의 작업실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공평아트센터에서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 세줄, 인터알리아, 갤러리 그림손, 북경 zero filed gallery 등지에서 10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주요 그룹전에 참여해 왔다. 2015년 구본주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과 중국 북경 Manet Museum, 상해 젠다이 MOMA Museum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중력과 분투하는 이


‘너무 깊이 헤아리면 답을 찾지 못한다.’


수년 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마을에서 번개가 치던 밤 일기장에 썼다. 줄이고 줄여 11킬로그램으로 채비한 배낭을 메고 불의 땅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로 향하던 길이었다. 몇 달을 전전하는 배낭 여행객에게 11킬로그램 정도는 상당히 가벼운 축이다. 그럼에도 처음 며칠은 당장이라도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았다. 어깨가 내려앉을 것만 같고 발바닥은 늘 뜨거웠다. 몸이 고달팠더니 머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상황을 합리화했다. ‘견디자.’로 시작한 생각은 자기 연민, 비하, 질책을 거쳐 어느새 이 배낭을 ‘삶의 무게’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시포스, 운명아! 멈출 수 없는 삶이자 굴레. 자못 비장하던 며칠간의 적응기가 지나자 삶의 무게 운운하던 생각은 자취를 감췄다. 무게는 당연히 줄지 않았다. 다만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버거움이 어깨 정도에서 멈췄다고 할까.



고백하자면 처음 송필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작업실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작품들을 보며 낮은 한숨이 나왔다. 오래전 힘든 일을 겪고 있던 어느 선생께서 모든 짐을 산처럼 이고 다니는 노숙인을 보며 당신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깨침이 들었다고 전해 들은 날이 떠올랐다. 돌, 신발, 옷가지를 이고 직립한 낙타, 산양, 달팽이에게 연민을 느꼈다. 이다지도 잔인하다지. 고행이 질긴 교훈이구나. 그런데 만나 뵌 송필 작가의 첫인상은 짓누르는 대기에 한갓 반응하지 않는 키 큰 풀이라고 해야 할까. 땅에 납작하게 붙은 풀 아닌 억새나 갈대 종류. 중력을 이겼거나 중력에 개의치 않는 이와 같게 보였다. 작품 세계에 대한 틈을 내고 이면을 찾아보려는 얕은 수의 질문에 대체로 도사의 선문답스러운 얘기가 몇 차례 오가고서야 질문을 거둬들였다. “보이는 게 다예요.” 초연한 응수에 현학으로 버무리는 그저 그런 습속은 번다할 따름이다. 그래서 할 일은 잘 보려는 노력이었다. 잘 보다가 찾은 하나의 단서는 다행히 이 무게를 짊어진 시시포스들이 맹수가 아니며, 고역의 현실에서도 낯빛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정도? 멀리서 보면 고행만 보일 뿐이지만, 다가서서 살펴보면 또 다른 교훈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날의 대화에서 한 가지 주제만이 자국처럼 오롯하게 남아 지금까지 맴돈다. 그건 ‘직접 화법’이란 태도다. 직접 화법이라고 분명히 밝히는 태도. 송필 작가와 직접 화법. 송필 작가의 직접 화법이 내겐 대괄호다. 맥락이 뭉텅 잘려 나가서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 해 간 ‘리얼리즘을 향한 직구’라는 구절이 하지나 동지가 절기로 찾아오듯 간간이 의식 위로 떠오른다. 숨고 눙치기 바쁜 교류에서 적확함은 얼마나 탐나는 태도인지. 적확한 태도에 대해 탐이 난다고 얘기하는 이 풋감성은 어찌나 유약한지. 참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에 오랫동안 엉성한 부목만 댄 상태라고 할까. 송필 작가에게 찾아간 그날이 마침 절기였을까. ‘직접 화법’은 귓속을 웅얼대던 ‘리얼리즘을 향한 직구’와 교직하여 이제 무어라도 풀어내야 한다고 다그치는 듯하다. 그러나 송필 작가에게 맞춰져야 할 이 글의 초점과 목적을 몇 차례 시뮬레이션 하다가 이제 그만 어떤 수작들은 내려놓으려고 한다. ‘송필 작가는’ 혹은 ‘작가가’로 시작하는, 일반적으로 비평으로 분해 온 추측들을 접으려고 한다. 작가론, 작품론이라고 불리던 거창한 분류를 포기한다. 동서양 막론한 철학과 미학, 이념과 사상을 거둬들인다.




따라오는 방식은 송필 작가와 작품을 기억에 간직한 채 쓰는 감상문에 가까울 듯하다. 그 만남과 오픈스튜디오에서 기획자로 짐짓 아는 체와 전문가인 양 유려하게 진행하여야 한다는 값싼 책무가 덮어 버리고 만 말간 눈, 그것이 있다면 그 눈을 뜨고 복기하는 내 이야기가 이제부터다.





서쪽 하늘을 떠받치는 이


송필 작가의 작품은 무엇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따라가기에 직접적이다. 작가도 직접 화법이 자신에게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맞다. 그렇다면 작품으로 무엇을 보고 읽고 느껴야 할까. 그런데 송필 작가의 작품을 더 기민하게 보고 읽고 느끼는 것이 작가와 작품의 존재 이유일까. 그는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간략한 말들을 써서 표현했을 뿐이다. 오픈스튜디오 사전 만남에서도, 낯선 이들과 함께해야 했던 당일에도 힘들이지 않고 세계의 절반만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머지 세계의 절반은 마주하는 이들이 채워야 할 몫으로 남기고서 말이다. 그래서 그 몫을 이제 다하려고 한다. 다행히 그 몫이 절반이라 다행일까. 온전한 모양새를 갖추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 착각이 부담감을 덜고 한결 자유롭게 만든다.



〈Looking for Utopia〉, 650×500×100㎝, 청동, 2014



바로 이 세계의 절반에 대해 궁리해야 하는 나는 어느새 작업실 주위에 산재한 시시포스들에서 아틀라스로 관심을 옮긴다. 아틀라스는 티탄 신족과 올림피아 신들과의 싸움에서 티탄 신족의 편을 듦으로 인해 제우스로부터 평생 동안 지구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형벌을 받은 신이다. 미술사 도판에서 아틀라스는 주로 둥근 구 형태를 이고 진 사내로 등장한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서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아틀라스는 두 팔을 머리 위로 구부려서 상판을 이고 있는 모습을 띤다. 이후 아틀라스의 형상은 건축의 기둥에 삽입되거나 돌덩이를 인 노예의 형상으로 드러나다가 지구가 둥글다는 세계 인식 전환 후 구를 짊어진 모습으로 진화했다. 하늘의 무게를 짊어진 이의 휴브리스는 물론 가혹한데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납덩이 같을 발바닥으로 관심이 하향한다. 짓누르는 대기를 온몸이 받아 안고서 딛고 있는 그곳은 어디인가. 대지는 인간만의 형벌이란 세상에 없는 듯 아틀라스의 몸뚱이로 전해지는 하늘의 무게를 땅의 힘으로 버틴다. 아틀라스를 사이에 두고 하늘과 땅이 힘겨루기를 한다. 아틀라스의 숙명에 맞춰진 초점을 그가 이고 있고 그가 딛고 있는 전체에서 고려해 볼 때 여기에서 승부는 시초부터 없다. 가늘게만 보이는 다리, 연약해 보이는 몸뚱이에 연민이 한정되면 삶은 고행이라는 고행의 무한대로 이내 빠져버리고 만다. 힘의 작용만을 보려고 할 때 반작용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눈감게 된다.




그런데 한편 신도, 숙명도, 인간도 17세기 뉴턴의 운동 법칙 중 제3법칙 작용과 반작용으로 정리되기에는 너무 싱겁다. 납작하다. 한때의 신화, 주술, 종교의 역사에서 과학의 논리와 이성이라는 필터를 거칠 때 도출된 답이 정말 답이었나. 다음 중 함수가 아닌 것으로 묻는 수학 문제처럼 답이 있긴 한 건가. 황금 사과를 얻기 위해 그에게 간청하는 헤라클레스에게 아틀라스도 하늘을 잠시 건네어 준 적이 있다.




황금 사과를 찾아 나서는 이


헤라클레스에게 황금 사과는 무엇이기에 아틀라스를 대신하여 하늘을 떠받치게 되었을까. 개입하는 변수로 다시 관심은 전진한다. 미케네의 왕 에우류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노력을 명하고 이 12가지의 과업을 완수해야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다고 명한다. 그중 11번째 과업이 서쪽의 님프로 불리는 헤스페리데스가 지키는 황금 사과를 따서 가져오는 것이다. 불멸의 과육으로 일컫는 이 황금 사과는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땅의 여신 가이아가 준 가지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100개의 머리를 가진 용 라돈이 황금 사과를 지키고 있어 접근이 어려웠던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에게 부탁하는 대신 하늘을 넘겨받았다. 황금 사과는 또한 파리스의 선택의 모티프로 아테네, 헤라, 아프로디테의 다툼을 파리스가 심판한 사건의 발단이다. 불화의 여신이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기입된 이 사과를 이들에게 던지고 분란을 만든 것이다.


황금 사과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역사에서 재림해 왔다. 금은 광산을 찾아 나서는 서부극은 차라리 낭만적이었다. 비록 자본주의가 금본위 제도 고수를 20세기에 점차 수정, 폐기해 왔으나 금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다. 자본의 위용은 여러 외시로 등장해 왔는데 마천루는 하늘 높이 솟구쳐 오름으로써 세를 과시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빅뱅처럼 고전의 반열에 오른 빌딩이 생각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에게는 세계 초고층 5위라는 롯데월드 타워가 있다. 송필 작가의 작업실 밖 한편에는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져 버린 빌딩들이 도열해 있다.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움으로, 누군가에게는 통쾌함으로, 혹자에게는 그 조형의 정교함으로 다가올 이 빌딩의 연작은 주로 작가가 중국에 체류할 시기 제작된 작품이다. 너르고 평평하게 느껴지는 중국이라는 대지에서 몇 해를 체류하는 기간 동안 오히려 과밀 지역의 랜드 마크를 작업으로 번안했다.


황금 사과를 향한 삶의 끝없는 과욕을 가차 없이 어그러뜨리고 날선 주제를 시각화하여 빚어내던 작품들은 삶의 무게에 대한 천착으로 점차 이행했다. 사람을 홀리는 강력한 대상에서 그 대상에 홀리는 삶의 본연에 대해 더 겸허해지는 마음의 반영일까. 흔드는 바람보다 점차 흔들리는 몸과 마음으로 수렴하는 무게 추를 받아들이며 이제 어른의 얘기를 전하는 듯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송필 작가의 작업은 어른의 작품이었는지 모른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회화는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란 말을 인용하며 자신은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는데, 조각 전부가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송필 작가의 근작은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 아닐까. 나이 든 세대의 예술이 아니라 나이가 무엇인지 삶에서 깨치는 사람의 예술 말이다.


그의 작업실 혹은 작업실의 환경에서 무엇보다 뒤돌아보게 만드는 건 그가 뒷산으로 난 길을 향해 쌓아 올린 돌담과 숲길이다. 뒷산으로 난 길을 내고 그 주변을 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노동과 그 결과물에 집적된 무수한 시간이 도통 가늠되지 않는다. 별것 아닌 걸 별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담담한 시간이 작품에 쏟는 시간만큼 나란하였겠구나 짐작한다. 여전히 삶의 무게에 대해서 과연 예술로 직접 화법을 행하기란 가능할까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다만 작가가 직접 화법이라 일컫는 이 작품들을 감상할 때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반추하는 습속을 헤아려 보게 된다. 의욕과 좌절, 고난, 그리고 매혹의 연쇄를 간헐적으로 겪으며 뜨는 눈. 밝히는 시야. 이조차도 각자의 품안에서 풀어내는 순간의 해법이겠지만 에둘러 뭉개지 않고 묵직하게 들어오는 화법(話法)은 비록 조각이지만 직접 화법(畫法)으로 분한, 송필 작가가 전하는 세계의 절반 혹은 우리가 그려 보는 세계의 절반이다.




나오며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의지해야 할 단 하나의 단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 한 자락을 쥐며 시작했는데 닫고 나오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글은 쓰고 또 거듭 쓰기를 반복하는데, 바로 이 실낱 하나를 퇴고 과정에서 되돌아와 지울지 남길지 미지수를 안고 시작했다. 실패한 기획이라면 교정의 과정에서 얼마나 지우고 싶을까 망설였다. 나와의 싸움이었는데 한편 늘 자기와의 싸움에 놓인 작가들에 비해 이 순간이 간헐적임에 안도가 되기도 한다. 조각에서 숲길로 향하는 이미지를 연상하며 여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적어도 작가들이 작품만을 사랑하길 바라지는 않으리라는 유추의 반영이다. 피그말리온의 대자(對自) 사랑 아닌, 걷고 만나고 나눠야 하는 삶을 조각은, 예술은 품고 있을 게다. 따라서 걷고 만나고 나눠야 하는 삶을 향해 길 한편을 터놓지 않은 작품과의 만남은 유아적일 수밖에 없다. 이 숲을 가리키는 가르침을 송필 작가가 구상(構想)하는 구상(具象)에서 배운다.


글_김현주(독립기획,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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