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옆집에 사는 예술가

지금 여기 붉은 산수

파주_이세현 작가의 작업실





경남 거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졸업했다.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떠나 런던 첼시 대학교 석사 졸업 전시를 위해 시작한 붉은 산서 작업으로 단번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최근 국내에서 성황리에 마친 개인전 《개꿈-레드》(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2015) 외에도 뉴욕, 런던, 암스테르담, 취리히, 서울 등 전 세계를 오가며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BOA(Bank of America),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하나은행 등 국내 다수 기관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민생미술관(상하이), 제임스리 컬렉션(베이징), 울리지그 컬렉션(취리히) 등 해외 유수의 기관 및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이세현 작가의 작업실은 파주출판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직후부터 파주출판도시에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이번에 새로 마련한 작업실도 여전히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세현 작가가 10여 년째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파주출판도시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에 위치하며, 한강 하류의 자유로에서 심학산까지 이르는 갈대 샛강과 나란히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1989년, 출판 유통의 현대화를 도모하고자 출판인들이 조합을 꾸리면서 시작된 이곳의 정식 명칭은 ‘파주출판문화정보국가산업단지’이다. 단순히 출판유통의 혁신적인 구조 마련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건축 디자인까지 더해 다양한 건물들로 채워지면서, 복합문화단지의 성격도 탑재했다. 출판사 사무실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크고 작은 책방, 그리고 북카페, 아트숍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지만, 사실상 출판업계의 불황이 이어지면서 출판 도시로서의 성격은 점차 약해지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추세이다. 얼마 전 이세현 작가가 새로 입주한 SAP(스튜디오 알트 파주)는 최근의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가 몇몇 중견 미술인들과 합심하여, 저렴한 임대료로 이곳의 작업실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덕분에 십 수 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 SAP에 입주해 활발한 예술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입주 예술가들은, 이곳에서는 서울 도심까지 접근하기가 쉽고, 비교적 저렴한 집세로 조용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SAP의 1층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이세현 작가의 작업실은 단정한 전시 공간과 널찍한 작업 공간, 그리고 탁 트인 잔디밭을 품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태어난 예쁜 딸과 아내와 함께 그는 깔끔한 살림집까지 파주에 마련했다. 전시나 미팅 등의 이유로 서울로 오가는 날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 시간을 작업에 쏟는 작가의 일상은 이곳 경기도 파주에서 이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종종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 작업실 근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들, 그리고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이웃의 소소한 일상사들은 그의 붉은 산수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자신이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장소에 얼마나 다양한 감성들이 교차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의 산수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작가 자신도 밝히듯, 붉은 산수의 소재는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혹은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느낌들’이다. 그의 작업을 단순히 사생화의 차원에 남겨둘 수 없는 이유이다.



〈Between Red-32〉, 190×190㎝, Oil on Linen, 2007



붉은, 산수


동양의 전통 산수화는 자연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서구의 풍경화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수화는 유가나 도가 등과 같은 동양적 사유에 기반을 둔 관념화의 일환이다. 눈에 보이는 자연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옮겨 그리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 서양의 풍경화와 달리, 동양의 전통 산수화는 자연을 관찰하되 주관적인 해석을 반영하여 구도나 형태 등을 고안해내는 장르다. 산수화에서 통용되는 다시점적 기법은 기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시각예술에서 지향하는 가치들과 맞물려 있다. 선대의 산수화가들이 서구의 일점 원근법을 기피한 것은,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시점만을 허용하기에 대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섬세한 감성의 층위들이 누락될 수 있음을 염려한 탓이다. 모더니즘 시대를 지탱한 불멸의 진리가 허상임을 낱낱이 밝힌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청되는 다원주의적 감각을 혹시 선대의 산수화에 깃든 정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풍경들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시선과 감성을 끌어내는 데에 주력하는 이세현 작가의 산수는 어쩌면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의 원근법적 구도 대신 전통 산수화의 구도를 차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붉은 산수가 처음 시작된 사연은 이렇다. 이세현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 그가 2006년 영국 런던 첼시 대학원 졸업전시를 두 달가량 앞두었을 때 고민이 깊어졌다. 유학 생활 내내 그는 유럽의 거대한 미술사적 맥락에서 자신을 어떻게 위치 지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던 탓이다. ‘동양에서 온 나는 어떻게 이 거대한 서구의 주류 미술사적 흐름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던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동양의 회화적 전통이었다. 겸재 정선이나 표암 강세황 등과 같은 조선 대가들의 산수화에서 그는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먹이 아닌 붉은 안료로 한국의 산천을 담아낸 작품을 졸업전시에 출품했다. 그것이 붉은 산수가 처음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왜 붉은색이었을까? 그의 작업대 위에 수십, 아니 수백 자루의 붓들이 이토록 붉게 물들게 된 것은, 온 세상이 붉은색으로 보였던 작가의 경험이 강렬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던 탓이다. 작가는 군 복무 시절,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종종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 지대에서 야간 보초를 서곤 했는데, 그때마다 야간 투시경을 썼다. 그 야간 투시경을 통해 보았던 비무장지대 DMZ의 산천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적막만이 감도는 그 붉은 풍경은 우리네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비현실적인 미적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이주와 생활이 통제된 그곳은 사실 공포와 우울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모든 사회, 정치적 정황들에 대한 사전 지식을 내려두고 오로지 투시경을 통해 보았을 때 그곳은 지극히 아름다울 뿐이었다. 사람이 볼 수는 있지만, 사람이 살 수는 없는, 이 아름다운 곳은 정녕 현실인가? 그때 그 붉은색은,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땅의 모순된 실정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죽음과 같은 공포감을 유발하기도 하며, ‘빨갱이’와 같은 정치적 개념을 포함하기도 한다.(실제로 영국에서 명성을 크게 얻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의 붉은 산수는 ‘빨갱이 그림’이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나 가능한 반응이었겠지만 말이다.) 지역이나 문화, 혹은 개인에 따라 붉은색은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지금까지 이세현에게 붉은색은 실재하는 풍경과 실재하지 않는 풍경을 동시에 담아내는 양면적인 풍경을 가장 강렬하게 전달해주는 가장 전략적인 아이템이 되고 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사이 어딘가에 완결되지 않은 채 놓인 그의 붉은 산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회화는 형식적으로는 선대의 산수화를 차용했지만, 전통 산수화가 온전한 유토피아를 포착하는 데에 매달렸던 것과 달리, 이세현의 산수화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어딘가를 배회하는 중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작가는 예술이 그러한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그는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모순된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몫임을 강조한다. 그러한 신념은 그의 붉은 화면에 오롯이 녹아있다. 캔버스 위에 굽이굽이 펼쳐진 (가상의) 산등성이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그의 화면이 단순히 강렬하고 아름다운 것을 지향하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화면 곳곳에 여행 중에 혹은 일상 속에서 포착한 실존하는 장면들을 묘사했다. 그의 붉은 화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군함, 포탄, 쓰러져가는 건물 등의 풍광은 분단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구석들을 속속들이 후벼 판다. 화면 속에는 군대에서 보았던 DMZ의 풍경이나, 작가의 작업실에서 자전거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임진강에서 보이는 풍경도 섞여 있고, 최근의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들, 작가의 기억 속에 들어차 있던 심상들, 인터넷에서 찾아낸 세상의 이모저모도 담겨있다. 우리네 세상에서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폐가나 폐허들을 양산한 인간의 욕망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내 얼굴도 덩달아 붉어진다. 심장이 떨리며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오랜 시간 우리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땅은 점점 그들의 땅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씨앗이라고 하면 새싹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씨앗이라고 하면 뿌리를 떠올려요.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해 싹을 틔운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싹트기 시작한 한 씨앗의 의미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싹이 트기 이전에 뿌리내린 ‘땅’을 가장 먼저 살펴야죠.”

-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거제도의 고향 마을은 개발논리에 밀려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고향 섬마을마저도 작가가 영국 유학을 떠난 사이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심리적 뿌리를 잃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하루가 다르게 개발에 목소리를 높여가는 이 땅에서 자신이 뿌리내린 고향 땅을 잃은 이가 비단 자신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작가는 더는 우리의 땅이 사라지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기억 속에서라도 이 땅을 붙잡아둘 수 있게끔 서둘러 화폭에 담아냈다.




〈Between Red-84〉, 200×600㎝, Oil on Linen, 2009


지금 여기, 개꿈


이세현 작가는 여전히 분주하다. 국내 전시 외에도 런던, 홍콩, 상하이 등 해외 전시 일정까지 빡빡하게 잡혀 있지만, 최대한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2015년 가을, 작가의 작업실과 이웃한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그는 《레드-개꿈》이라는 제하에 대규모의 개인전을 가졌다. 《레드-개꿈》은 도가적 의미의 ‘일장춘몽’의 의미를 포함한다. 부귀영화는 덧없고 세상살이는 한바탕 봄날 꿈과 같으니, 야심을 가진 이들의 현실 바깥에서 초연하게 인생을 보내겠노라는 작가의 의지 혹은 바람을 담은 제목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화면은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해졌다.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했던 2년 사이에 이 땅에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 일어난 탓이다. 세월호 참사였다. 비무장지대와 바닷가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이 땅의 모순을 시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현실적 모순의 위험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붉은 산수 속에 바위산으로 혹은 바위섬으로 둔갑하고 있던 해골 뼈가 직접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아름답고 고요한 삶의 풍경 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죽음과 전쟁의 그림자를 한층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최근 붉은 산수에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시작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등장인물은 안중근 의사, 함석헌, 윤이상, 백남준 등 역사적 위인들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등과 같은 현대 정치인들까지 다양하다. 그들과 함께 작가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자신의 주변인들이 함께 있다. 연기처럼 솟은 구름이 걸린 산등성이로 빼곡한, 그런 불안정한 구도의 풍경 속에 선 인물들은 위태롭다. 그의 기존 작업에 비해 복잡하고 어지러워진 최근 화면들은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의 모습을 참 많이도 닮아있다.


〈Between Red-200〉, 372.5×932㎝, Oil on Linen, 2014



세상에 너무나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이세현 작가의 커다란 눈망울이 그의 작품처럼 붉어진다.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애처롭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계속되어야 하기에, 그는 계속 이 붉게 물든 붓을 쥐고 붉은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한때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회화의 죽음, 반예술, 무예술의 위기로 떠들썩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이세현 작가는 오늘도 태연하게 캔버스를 매만지며 여전히 회화의 힘을 믿는다.



글_ 김나리 (독립기획자,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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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창작공간이자 때로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창조적인 장소,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옆집에 사는 예술가》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