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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역사문화유산원

수원에서 만난 여성 인권의 신호탄, 정월 나혜석

2018-02-27 ~ 2018-06-24 /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여성 특별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

어느덧 3월입니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추위에 웅크렸던 몸을 피고 따스한 햇살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은 짧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올해의 봄은 어떤 향기를 풍길지 더욱 기대됩니다.


곧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1975년 UN에서 지정한 기념일로, 매년 3월 8일에 제정되어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일까요? 최근 국내에서 여성들의 용기 있는 발언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인권과 여성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던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겸 작가로 잘 알려진 나혜석입니다. 오늘은 정월 나혜석의 생애와 수원에서 만날 수 있는 나혜석의 자취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정월(晶月) 나혜석


                                           <그림 1> 나혜석 자화상(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나혜석(1896~1948)은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나 17세에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서양화를 배우게 됩니다. 유학시절 그녀는 여자 유학생 학우회 기관지 ‘여자계’ 발행을 주도하였고, 여성도 인간임을 알리는 [경희], [정순] 등의 단편소설을 몇 차례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신여성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경성에서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나혜석은 소설가로서, 서양화가로서 그리고 신여성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이처럼 여성으로서 예술에 선구자적 면모를 보였던 불꽃같던 젊은 시절에 비해 나혜석의 말로는 다소 어두웠습니다.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고, 애인 최린으로부터 버림받으며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하였죠. 또한 사랑하는 자녀들을 만나고자 몇 차례 김우영에게 요청했으나, 만남을 금지당해 괴로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했던 글이 바로 ‘이혼 고백장’입니다.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조선 당시의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혼은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으나, 여성에게만 정조 관념을 요구하는 관습에 정면으로 마주한 나혜석의 도전은 경성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마리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이혼 고백장>, 《삼천리》 1934년 8월호 중 일부


남성 중심 사회의 관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나혜석에게 사회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혜석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일본의 침략 전쟁과 불황 등의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은 그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 후 쇠약해진 몸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가족에게 외면당하며 절과 양로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결국 1948년 12월 10일, 추운 겨울의 길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시체는 화장 후 산에 뿌려져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였죠. 조선 최초의 여성화가, 여성인권 운동자였던 인물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수원 문화의 중심, 나혜석 거리


                                                  <그림 2> 나혜석 거리(출처: 직접 촬영)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가 있습니다. 나혜석의 출생지 수원시에서는 1999년을 시작으로 ‘제1회 나혜석 바로 알기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그 후 나혜석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하며 2000년 나혜석 거리 조성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나혜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팔달구 인계동 효원 공원부터 600m의 문화 거리를 조성하고, ‘나혜석 거리’라 명명했습니다.

수원의 번화가에 자리 잡은 ‘나혜석 거리’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서 거리 공연, 야외 음악당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채워져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었고, ‘음식문화촌’으로서 수원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림 3 ~ 4> 나혜석 거리(출처: 직접 촬영)

나혜석 거리의 입구에는 ‘정월 나혜석’ 일생에 대한 설명과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뒤편으로는 수원 성곽의 모습을 본뜬 분수대와 알록달록한 가로등이 활기 띤 거리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림 5 ~ 6> 나혜석 거리(출처: 직접 촬영)

초입의 안내석을 지나 조금 걸으면 동쪽을 응시하며 미술용품을 들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나혜석의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련된 복장과 진중한 표정은 그녀가 신여성으로서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나혜석 거리를 걷다 보면 사회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여성해방이라는 무모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던 그녀를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성 특별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

올해는 정월 나혜석 타계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나혜석 타계 70주년을 맞아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여성미술 특별기획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를 소개합니다.

                                   <그림 7> 금하는 것을 금하라(출처: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특별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여성’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의미들에 주목합니다. 여성과 관련된 금기와 고정관념에 대한 작품들을 보며 ‘만들어지는 인형’이 되기를 거부했던 나혜석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겠습니다.

                         <그림 8> 조덕현, '프렐루드'(출처 :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8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기획전은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뉩니다. 1층의 3전시실에서는 금기에 저항했던 나혜석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돌아보며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2층의 4,5 전시실에서는 나혜석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여성의 역할과 금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전시는 2월 27일부터 6월 24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4천 원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올해로 11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회 전반에 뜨겁게 솟아오르는 여러 목소리와 함께 여성인권을 위해 운동하고 저항했던 서양화가 나혜석을 되새기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녀의 여성해방 사상이 잘 드러난 작품 ‘인형의 가(家)’의 일부를 끝으로 기사를 마칩니다.


 인형의 가(家)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후렴>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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