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실학박물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금, 여기 실학이 숨쉬는 곳

실학박물관 관장 장덕호


‘실학’이라는 발음이 어지간히 어려운 모양이다. 수화기에 대고 실학이라고 말하면, 열 명 중 대여섯 명은 영 엉뚱한 소리를 한다. ‘시락?’ ‘시...뭐?’ ‘실, 악?’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니 ‘실학’이 요즘 자주 쓰이는 단어도 아니고 현재와의 맥락을 찾기도 쉽지 않으니 일반인들에게는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이렇게 어려운(?) 실학박물관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사람을 통해서 공간의 감각을 이해하는 것만큼 빠른 것이 없다. 실학박물관에는 관장 장덕호가 있다.


1. 다산 정약용 생가 옆에 위치한 실학박물관의 지리적 의미는 많은 것을 내포한다. 눈에 보이는 적합성 외에 이 곳 박물관 관장으로서 느끼는 면은 무엇인가

박물관 설립을 궁리할 당시에는 여러 곳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다가 결국 이곳으로 결정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리적 위치로 이곳이 최적합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실은 더욱 아쉽다. 이 최적의 의미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주변 환경이 한계를 안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 외국 가면, 박물관에서 밥 먹는다. 관람객의 이런 소소한 감각적인 만족도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실학박물관 주변은 상수원보호지역으로 음식점이 상주하기 어려운 구조다. 경치 좋고 지리적 의미가 있는 이곳에 짓는 최적의 박물관이었다면, 보다 융통성 있는 문화행정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2. 현대 한국 사회가 부작용처럼 안고 있는 문제는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에서 시작되는 일이 많다. 이런 점에서 다산의 남다른 애민이 강조된 목민관은 시대적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실학의 목민관을 배태한 실학박물관은 시민(관람객)과의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

실학을 너무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박물관은 언제나 놀러가고 싶고, 오면 즐기고 싶은 곳이어야 하는데 너무 공부를 시킨다. 나도 공부 안 좋아 한다.(웃음) 텍스트가 너무 많고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형태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인문학적인 차원으로 풀어가는 실학 여행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훨씬 편안하고 쉬워졌지만, 아직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곳이 일반 시민들의 쉼터나 놀이터처럼 자주 오고, 또 오고 싶고, 자꾸 오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3. 실학박물관은 어떤 박물관이고, 어떤 박물관이어야 하는가

‘박물관’은 현장과 호흡하며 살아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연구를 하더라도 그 궁극의 목적은 일반 시민에게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박물관에는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물관은 모두의 공간이다. 함께 누리고 공유하기 위한 공유의 재산으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 최근의 한강연구사업도 그 중에 하나다. 한강 주변에 퍼져있던 경기도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의 학자들을 기록하고 발굴해나가는 사업인데, 유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박제된 연구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복합문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원들의 깊이 있는 안목으로 찾아낸 지식이 보다 실생활에 적합한 콘텐츠로 적용될만한 지점을 찾아내는 것, 실학의 정신은 결국 여기에 있고, 그것이 다른 박물관과 다르게 특히 실학물관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4. 경기도박물관에서 20년이 넘는 동안 학예사, 학예관을 거쳐 학예실장과 관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실학박물관의 건립 초기에서부터 그 방향과 흐름을 지켜보아왔던 학예사 출신의 관장으로서 실학박물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실학’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도처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IT나 교통수단에서부터 인간에게 도움 주고자 하는 건 모두 실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당연히 미래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학은 세상이 변하는 물결 중 하나다.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려는 학문인 것이다. 성리학의 유교는 생활 철학이었다. 주자학이 지나치게 관념적인 공리공담의 철학으로 흐르니까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생겼고, 그것이 실학의 싹을 틔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학문이 실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실학박물관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기가 좀 더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 장덕호를 만나다


1. 30년 가까이 될 만큼 박물관과의 인연이 깊다. 그렇게 오랫동안 박물관 생활을 하다보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것도 많이 보일 것 같다

대학교 때부터 박물관이 좋았고, 박물관 활동을 하다가 박물관 조교부터 시작을 했다. 이후로도 평생 다른 직업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박물관에 관계된 일만 했다. 박물관은 내게 아주 친숙한 공간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박물관의 현상이나 기능을 경험하다보니, 국내 박물관이 대부분 완성형 건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5년만 지나면 박물관은 포화상태가 된다. 박물관을 완전하게 다 짓고 나서야 점점 불어나는 아카이브를 걱정하는 일은 매번 반복된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행정처럼 문화 인프라도 멀고 길게 보는 시선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아빠, 남편, 중년남성으로서의 장덕호와 관장으로서의 장덕호는 어떻게 다른가

개인 장덕호는 관리가 안 된다. ‘신독(愼獨)’이란 게 난 참 어렵다. 홀로 있어도 행실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데, 나는 말로는 실컷 담배 끊는다 해놓고 숨어서 피운다. 내 자세도 한 번 봐라. 나는 꼿꼿하거나 바르게 등 세워 앉는 일이 없다. 여하튼 불편한 걸 어지간히도 못 참아 한다. 그러니 기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기관장으로서의 나는 내가 얼마나 어렵겠나.(웃음)


3. 다산 정약용의 면모나 업적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

다산은 참 넓다. 나도 ‘박(博)’스럽기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게 한 ‘박’하는 데, 내 ‘박’은 얇다(薄)는 게 문제다.(웃음) 다산은 한 가지를 알아도 깊이 알고 관찰력이나 사유하는 방법이 참 많이 달랐다.


4.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관, 세계관은 무엇인가

최근 어렵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화합을 의미하는 ‘화(和)’는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한다. 근데 그게 되게 어렵다.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을 존중하고, 관심과 배려하는 태도를 갖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걸 깨닫는 데까지 난 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5.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바꾸고 싶은가

그때를 돌아보면, 난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해외여행을 40세가 넘어 처음으로 2004년에 나가봤다. 그것도 미국으로, 10일 정도 갔다. 물론 특정 용무를 갖고 간 출장이었지만, 그것이 기억에 특별하게 남을 만큼이나 나는 인생에서 별다른 모험을 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사고도 크게 난 적이 없었고, 아파서 크게 입원을 한 적도 없었다. 바꿔볼 수 있다면, 좀 더 일찍 내가 나를 활짝 열어젖히는 일. 그걸, 해보고 싶다.


6. 오늘,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가장 칭찬할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치 빈껍데기처럼 살아와서 자랑할 것도 특별히 없고, 이렇다 할 만큼 가진 것도 자랑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 그저 누군가와 크게 척지고 살지 않았다는 거, 그거 하나는 내가 나한테 칭찬해줄만한 일인 것 같다.

information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 80호

    스페셜 토크토크/ 실학박물관 관장 장덕호인터뷰

    / 김수미(실학박물관 기획운영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