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는 그 길 위에서

2018-03-21 ~ 2018-03-21 / 다산 종부 이유정

Q. 다산 종가에 시집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제 30년이다 되어가네요.


Q. 종가집 종부로서 가장 힘드셨던 건 무엇이었어요?

아무래도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죠. 25년 전 홀로되신 시아버지를 위해서 하루 세 번 매 끼니마다 솥 밥을 했습니다. 처음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것이 날 지켜주는 힘이었다는 걸 이젠 알아요.


Q 종가 음식을 복원하셨어요.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원작업을 좀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2006년 한 신문사에서 종가음식 취재가 있었어요. 그때 기자 분이 저희 집 음식을 궁금해 하셔서 한 상 차려 낸 적이 있었죠. 나중에 보니 그 음식이 모두 다산할아버지 일기나 시에 남아있던 것들이더군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연결해서 만들었어요. 대단한 복원 과정이랄 것은 없어요. 그저 제가 직접 보고 배웠던 집안의 문화를 기록에서 찾아내고, 그것을 정리한 것이죠.


저희는 김치가 특히 유명해요. 김치 담글 때 물을 쓰지 않고 종가비법 육수를 쓰거든요. 직접 간수를 뺀 2년 묵은 소금으로 배추를 절여요. 김장은 꼭 입동이 지나고 하고요. 종가음식은 1년 스케줄이 있는데, 그 기록도 정학유(다산의 차남) ‘농가월령가’에 있죠.


다산 할아버지 시문집에 술 이야기도 많아요. 저의 조부님이 목석비망(木石備望)이라는 일기를 쓰셨는데 거기도 술 이야기가 많죠. 그 당시 할머니께서는 직접 술을 담가 손님을 접대하고 애주가이신 할아버지께 드렸어요. 제사 때는 제주를 만드셨죠. 우리 집 술의 특징은 이배양주입니다.


Q 다산종가음식의 특징은?

손에 꼽아보라면 ‘어탕’, ‘두부’, ‘호박’ 정도요. 제사 음식에서 조율이시(제사 때 쓰이는 대추, 밤, 배 등의 과실)와 함께 호박전과 붕어탕을 올리는 것이 다산가의 전통이에요. 이 음식들은 다산 할아버지의 시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붕어탕 관련한 내용은 <다산시문집>(7권) ‘천진소요집’에 나옵니다. 마재에서 집안이 대대로 한강을 끼고 살았고, 1930년에는 영등포 여의나루 근방에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도 어른들이 붕어를 낚았다고 해요. 지금 바깥양반도 한강변에서 낚시하던 할아버지 옆에서 붕어 낚던 추억이 있죠. 호박은 항상 풍족했던 채소에요. 이것으로 만두나 국을 만들어서 넉넉하게 먹게 하셨죠. 글을 보면 애민사상이 깃든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호박이 광해군 때 보급된 이래로 정약용은 실제로 마재의 채마밭에서 호박을 재배했고, 늙은 호박으로 죽과 전, 떡 등을 만들었던 기록이 있다. 편집자 주). 저희 제사상에는 아직도 애호박전을 올리죠.



호박을 훔쳐 왔다고!(南瓜歎)


열흘 내내 장마비 내려 길이란 길 다 끊어지고

성안에도 마을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어라.

성균관에서 글 읽다가 돌아와 보니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한 소리 들려라.

들어보니 쌀독 빈 지가 벌써 며칠 되었다고

호박으로 죽을 쑤어 겨우겨우 때웠다고.

어린 호박까지 다 따먹고 어쩔 수가 없었다네.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새 호박은 안 열렸었다네.

옆집 채마밭 넘겨다봤더니 항아리처럼 살찐 호박

계집종이 남모르게 훔쳐다가 바쳤다네.

"뉘가 너에게 도둑질하라 가르쳤더냐."

충성을 바치고는 도리어 매를 맞네.

아서라, 그 애는 죄 없으니 꾸짖지 말라.

내가 이 호박 먹을 테니 다시는 따지지 말라.

채마밭 늙은이에게 떳떳하게 말하리라.

오릉중자 작은 청렴 따윈 마음에 없어라.

이 몸도 때맞게 바람만 만나면 날개 돋쳐 날을 테고

그렇지 못하다면 금광이라도 파 보리라.

만 권 책을 읽었다고, 가족들이 어찌 배 부르랴.

밭 두 마지기만 있었더라도 계집종 도둑질 안 했을 텐데.


-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중에서




남양주의 여포나루 부근에 있는 신륵사에서는 왕실에 올릴 두부를 만들기도 했어요. 조선시대 두부는 쇠고기보다 비싸서 일반백성은 먹기 힘들었죠. 지금은 상가에 서 육개장을 먹지만 조선시대에는 연포탕을 대접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요즘 연포탕이라고 하면 다들 낙지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연포탕(軟泡湯)의 연포는 ‘연한 포’로 두부를 뜻해요. 특히 다산집안에서는 황태를 포함해 약 10가지 재료로 탕의 다싯물을 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두부먹는 모임이 있을 정도로 연포회가 최고의 음식이었어요. 또한 초상집에 문상을 가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널리 퍼지면서 사대부가에 널리 퍼진 것이에요.


Q 장수 집안이신데 특별한 장수 음식이 있나요?
한마디로 소박한 음식이에요. 된장, 나물, 생선, 장국 같이 기름지지 않은 음식이 아무래도 비결인 듯합니다.

Q 종택 종부는 힘들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로 어떠세요?
제가 지금 종부님 보다는 10살 정도 어리고 차종부 보다는 10살 정도 위라서 세대를 잇는 변화의 중심에 있어요. 종택을 지키지 못하고 살았지만 현재 종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나름대로 많았습니다. 아마도 저는 전통(종부)과 현대(차종부)를 잇는 앞으로의 종부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본래 우리 경기도 종부는 실학자 선조들처럼 전통에 매여 있는 종부라기보다 전통과 생활을 잇는 보다 현실적인 종부이기도 해요.

Q 실학박물관과는 어떤 인연을 맺고 계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2006년 중앙일보 종가 특집기사를 통해 세상에 나온 셈이죠. 2011년부터 2015년 약 5년 동안 실학박물관에서 문화해설 자원봉사와 공렴교육을 하며 지냈는데 그 시절에 많이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실학박물관 김시업 관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유형의 종가는 없어졌으나, 실학박물관은 여러 실학자 후손들의 집이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실학박물관이 생기면서 실학자 후손들에게는 일종의 놀이터가 된 셈이에요.

Q 실학자 후손들과도 계속 교류를 하고 계신가요?
다산 할아버지가 강진 제자들과 맺은 인연이 다산계인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다신계(茶信契, 다산이 강진 유배 당시 제자들과 함께 만들었던 모임)의 절목(규칙)들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죠. ‘종택이 없어졌다’ 느꼈을 때에도 다신계 후손들은 종가를 찾아주고 지켜주었어요. 실학박물관에서 후손들이 모이는 실학훼밀리가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지금은 자체적으로 매년 총회도 하고 좀 더 뜻깊은 일을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다신계 절목

 매년 청명과 한식일에 계원들은
 다산에서 모여 우의를 다지고
 운을 내어 시와 부를 연명으로
 지어 유산酉山 마재에 보낸다.
 4월 곡우날 어린 찻잎을 따서
 1근을 만들고, 입하에 늦차를
 따서 떡차 2근을 만든다.
 이 엽차 1근과 떡차 2근과
 시와 편지를 같이 부친다.




Q 요즘은 어떤 부분이 관심사에요?
이번 봄부터 민화를 배워 보려고요 4년 과정이라고 하는데 한번 도전해 봐야죠. 민화를 활용해서 집안 대대로 내릴 수 있는 민화장을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예요. 집안에서 쓸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될 수 있다면 나중에 제가 없더라도 그 민화장이 마치 저인 것처럼 집안을 지켜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세부정보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 81호

    실학가족/ 다산 종부 이유정

    / 안진희 학예연구사(실학박물관 학예팀)

    편집/ 김수미(실학박물관 기획운영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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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