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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다산해배200주년기념사업_이환영 작가의 다산 시의도

다산의 꿈, 함께 그리다

이환영 작가의 다산 시의도

다산의 꿈, 함께 그리다






‘다산무진도’(연작 8폭 병풍), 100x38x8폭, 한지 수묵담채



올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를 저술하고 18년간의 오랜 유배 생활이 풀린 지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실학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고자 오천 이환영 화백과 함께 다산의 생애와 애민사상에 대한 주제를 ‘시의도’로 풀어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의도(詩意圖)는 중국 당나라의 소식(蘇軾)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고 정의했듯 문학과 회화를 아우르는 표현 방식이다.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시와 그림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예술로서 다산이 지은 시에 담긴 추상적인 심상을 시의도의 연출을 통해 박물관의 전시로 재해석해 보았다. 총 21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지난 9월 13일부터 시작되었고, 10월 1일까지 이어진다. 다산이 거닐었던 삶의 공간-고향 마재와 두물머리, 유배지 강진-과 시대를 아파했던 다산의 애민정신을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Part 1. 두물머리와 강진

다산 정약용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마재(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 마재의 다산 생가 여유당을 중심으로 한 두물머리와 열수 일대는 산과 강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으로 특히 운길산과 수종사는 두물머리의 백미다.

다산은 스스로를 가리켜 ‘한강가에 사는 정약용’이라 할 정도로 고향을 잊지 않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유배 길에 올랐던 다산은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강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참한 유배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는 만덕산에 위치한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방대한 저술을 완성했다, 해배되어 18년 만에 고향집에 돌아 온 정약용은 1836년 2월 22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다산의 회혼일(回婚日)이었다. 1776년 2월 22일에 풍산 홍씨와 결혼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회근시(回巹詩)’는 다산이 운명하기 3일 전에 회혼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쓴 시이며, 이 시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시가 되었다.

Prat1 ‘두물머리와 강진’은 「회근시」를 비롯하여 강진의 문물과 농어민들의 생활상을 노래한 ‘탐진촌요’, 강진으로 유배된 다음해(1802년) 봄에 고향에서 온 편지를 읽고 쓴 ‘고향편지’, 1808년 다산초당으로 옮기기 직전에 슨 장편 고시 ‘솔 뽑는 중’과 다산이 1796년 35세에 쓴 20수의 연작시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즉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등의 시를 주제로 하였다.




‘여유당과 예봉산’(두물머리 연작), 73x91cm, 진경 수묵 한지



Part 2. “적성촌에서 – 굶주린 백성들”

Part 2에서는 다산의 대표적인 사회시이자 농민시인 ‘적성촌에서’와 ‘굶주린 백성들’을 테마로 했다.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조선은 그의 말대로 “털끝 하나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사회였다. 다산은 이 병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농민들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이 양심적인 지식인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적성촌에서’와 ‘굶주린 백성들’로 대표되는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사회시와 농민시를 대량으로 창작한 것은 이러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적성촌에서’의 원 제목은 ‘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즉 ‘교지를 받들고 순찰하던 중 적성의 시골집에 이르러 짓다’이다. 다산은 1794년(33세) 경기도 암행어사의 명을 받아 연천 지방을 순찰했는데 순찰 도중, 적성촌에 있는 한 피폐한 농가의 모습을 보고 쓴 시이다. 적성촌에서 목격한 농민의 참상은 그의 의식을 크게 각성시켰고 이후 그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민중 지향적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다.

‘굶주린 백성들’의 원 제목은 ‘기민시(饑民詩)’인데, 96구 480자에 이르는 5언 장편고시이다. 1795년(34세)에 쓴 시인데 그 전 해 적성촌에서의 경험 이후 농민들의 생활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다산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큰 흉년을 만나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유랑민들의 참상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굶주린 백성들'(연작)-72x62cm 혼합재료 한지 (1)



Part 3 다산과 하피첩

Part 3의 테마는 ‘하피첩’과 ‘자찬묘지명’, 그리고 다산의 시 ‘혼자서 웃다’이다. 1810년 가을, 부인 풍산 홍씨가 강진에 있는 다산에게 낡은 치마 한 폭을 보냈는데 다산이 이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을 써서 첩(帖)으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었다.

‘하피첩(霞帔帖)’이라 한 것은 ‘붉은 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지금 남아있는 3권의 서첩에는 두 아들에게 써준 훈계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와는 별도로 1813년에는 하피첩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에 매조(梅鳥)를 그리고 시를 써서 막 시집간 딸에게 주었다고 한다. 한편, 다산 정약용은 해배된 지 4년째 되는 1822년 자신의 회갑을 맞아 스스로 묘지명을 썼는데 그것이 자찬묘지명이다. 자서전 성격의 자찬묘지명에는 유년 시절부터 당시까지의 다산의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혼자서 웃다’는 원 제목이 ‘독소(獨笑)’이다. 1804년(43세) 유배지 강진에서 쓴 작품으로, 정치적 부침을 겪고 유배된 자신을 돌아보며 체념에 가까운 탄식을 담은 시이다. “달이 차면 구름을 자주 만나며 꽃이 피면 바람이 불어 날린다”고 말함으로써 세상 이치를 통달한 심정으로 체념과 함께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 다산을 볼 수 있다.



* 작가 약력 오천吾泉 이환영李桓英_ 194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1990년대부터 향토실경전 발표와 함께 역사문화전통유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수원화성과 정조반차도(원행을묘정리의궤)를 주제로 한 발표전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세 차례 가졌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일관된 역사주제화의 한축으로서 다산의 시세계를 조형화한 새로운 도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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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7호

    / 정성희 수석학예연구사(실학박물관 학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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