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하피첩의 귀향

2016-10-17 ~ 2017-03-26 / 실학박물관


□ 프롤로그


<하피첩의 귀향, 노을빛 치마에 새긴 다산 정약용의 가족사랑>


이번 특별전은 다산 정약용 선생 서거 18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친필 서첩인 <하피첩>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하피첩霞帔帖>은 정약용이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고향인 경기도 마현에 있는 두 아들을 위해 쓴 편지첩을 말합니다. 1810년 유배 온 지 어느덧 십년 세월 정약용은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를 유배지에 보내오자 이를 잘라 고향에 있는 두 아들에게 부정父情을 담은 당부의 글을 쓰고 이것을 ‘하피첩’이라는 이름의 서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보家寶로 전해지던 하피첩은 한국전쟁 때 분실하여 행방이 묘연하다가 2006년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국가에 귀속되었습니다.


<하피첩>이 만들어 진 지 206년이 지난 오늘, 다산 정약용의 유산인 <하피첩>을 고향인 이곳에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전시 내용


2016년 실학박물관(관장 장덕호)에서는‘하피첩의 귀향’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 전시 일정은 2016.10.17(월)∼2017.3.26(일)이며 관련 유물 20점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대표유물은 <하피첩霞帔帖>(보물 1683-2호)과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이다.


이날 행사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하피첩>을 다산의 영전에 고하는 환안還安 고유제가 다산의 사당인 문도사文度祠에서 우선 진행된다. 이어 개막식 행사에는 <하피첩> 창작 가곡의 최초 공연 등이 이루어진다.


< 1부 > 다산 가족이야기


- 풍산홍씨와 60년 해로

다산 정약용은 15세 되던 해 홍화보의 딸인 홍혜완洪惠婉과 혼인하였다. 서울 출신의 부인 홍씨는 다산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다산이 유배지에 있었던 18년의 긴 세월 동안 부인 홍씨는 마재의 전장을 가꾸며 집안 살림을 돌보았다. 이후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났어도 벼슬길이 열리지 않던 남편을 격려하며 남편의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묵고 갈 때면 정성스레 만둣국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다산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오늘의 다산을 있게 한 것은 홍씨 부인의 보이지 않는 내조였을 것이다. 홍씨는 시문에도 능하여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간 지 6년(1806년)이 되던 해의 겨울, 시집올 때 가져와 분홍빛이 담황색으로 바랜 치마와 함께 사언四言의 시를 지어 보냈다. 천리 밖에서 찬 겨울을 나고 있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하다.


또한 다산 선생은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서 회혼을 맞이한다. 회혼례回婚禮는 해로한 부부가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사람이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옛날에 보기 드문 일로 많은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다산은 회혼례가 있기 3일 전 회혼의 애틋한 마음을 담아 '회근시(回巹詩)'를 썼으나, 잔치날 아침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생애 마지막 시가 되었다.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해 같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을 재촉했으나          

슬픔 짧고 즐거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오늘 밤 목란사(木蘭詞)는 소리 더욱 다정하고        

그 옛날 붉은 치마에 유묵(遺墨) 아직 남아있네      

쪼개졌다 다시 합한 것 그게 바로 우리 운명        

한 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넘겨주노라  


- 죽은 자식이 산 자식의 두배

다산과 부인 홍씨는 슬하에 9남매를 두었으나 6남매를 일찍 가슴에 묻었다. 1780년에 첫아이를 유산을 하고, 1781년 학질을 앓은 끝에 팔삭동이 딸을 낳았으나 나흘 만에 잃었다. 그 뒤 무장(학연)과 문장을 낳았고, 다음에 구장과 효순을 보았지만 그 둘 역시 일찍 잃었다. 그 아래로 또 딸(뒷날 윤씨부인)을 낳았다. 이후 1796년에는 삼동을 낳아 마마로 잃고, 그때 배고 있던 아이도 태어나 열흘 남짓 만에 역시 마마로 잃었으며, 1799년에 얻은 아들인 농장도 1802년에 잃었다. 여섯 아이를 잃은 부부의 괴로움과 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산은 세 살 때 마마로 죽은 농장이란 아들을 위해, 유배지 강진에서 광지壙志(무덤에 시신과 함께 묻는 글)를 적어 고향 마재로 부치면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연민의 정을 내비쳤다. 다산은 요절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구장이와 효순이는 산등성이에다 묻었고, 삼동이와 그 다음 애는 산발치에다 묻었다. 농아도 필시 산발치에 묻었을 거다”라고 적고는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배구나.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그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라며 비통해 했다.


<2부> 노을빛 치마에 그리움을 담다


정약용은 열다섯 살 때 풍산 홍씨1761~1838와 결혼하여 6남 3녀를 낳았으나 불행히도 4남 2녀는 요절하고 2남 1녀만 장성하였다. 어린 자식들이 죽는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유배와 함께 두 아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이른바 ‘폐족廢族’의 신세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1801년 신유사옥으로 셋째 형 정약종이 참수되고, 정약용과 둘째 형 정약전은 유배에 처해졌다. 당시 정약용은 40세였고, 장남 정학연은 18세, 차남 정학유는 15세, 어린 딸은 당시 8세의 나이였다. 정약용은 귀양지 강진에서 편지와 가계家戒를 보내 자칫 공부를 포기하고 나쁜 길로 빠질 위험이 있는 두 아들을 다독이고 공부시켰다. 다산은 1810년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를 보내오자 이를 재단하여 두 아들들과 후손들이 간직할 당부의 말을 쓴 서첩을 만들고 이를 ‘하피첩霞帔帖’이라 하였다. ‘하피첩’은 자신으로 인해 폐족廢族이 된 두 아들에게 멀리서나마 당부하는 아버지의 글이다.


<3부> 하피첩의 귀향 연보


1921년    현손 정규영, <사암선생연보> 편찬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다산생가인 ‘여유당’이 유실됨. <하피첩>과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간신히                    보존함

1927년    현손 규영奎英(1872~1927) 사망

1929년    다산 6대손 정해경(1929~현재) 출생

1934년    다산학을 개척한 위당 정인보가 <동아일보>에 다산에 대해 연재

1934년    신조선사에서 다산기념강연회 개최

1938년    신조선사에서 154권 76책에 달하는 <여유당전서> 간행

                  최익한이 <동아일보>에 ‘여유당전서를 독함’이란 주제로 연재기사를 쓰면서 <하피첩>을 소개함

1950년    피난길에 종가에서 보관하던『하피첩』을 수원역에서 잃어버림

1968년    다산 5대손 정향진(1905~1968) 사망

2004년    수원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 손수레에서 <하피첩>을 발견함

2006년   잃어버린 <하피첩>이 56년 만에 KBS 2TV ‘진품명품’을 통해 세상에 나옴. 다시 행방이 묘연해짐 2010년    문화재청 옛글씨 일괄공모를 통한 조사·지정 사업의 일환으로 보물 1683-2호로 지정

2011년    부산저축은행 전대표의 파산으로 예금보험공사에서 <하피첩>을 압류함

2015년    국립민속박물관이 서울 옥션 경매에 나온 󰡔하피첩」을 구입하고 언론에 공개

2016년    실학박물관 <하피첩> 특별전 개최


□ 고유제 일정


○ 환안고유제는 다산 선생의 서거 180년으로 하피첩이 선생의 고향인 실학박물관에서 국민들에게 전시되는 것을 기념하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도사文度祠에서 잔을 올리는 추모 고유제 형식으로 거행함 ○ 일 시 : 2016. 10. 17(월) 14:00~15:00

○ 장 소 : 실학박물관 로비 및 다산유적지 문도사


시간내용안내장소
14:00~14:15환복제복 환복다산문화관
14:15~14:20기념사진제관, 집사, 내빈 사진촬영동상 앞
14:20~14:50고유제 및 봉헌고유 및 봉헌문도사
14:50~15:00환복평상복으로 환복다산문화관


□ 개막식 일정


○ 일 시 : 2016. 10. 17(월) 15:00~16:00

○ 장 소 : 실학박물관 로비

○ 참석대상 : 유관단체, 실학자 후손 등 100명 내외


시간내용안내장소
15:00~15:20공연창작 가곡 '하피첩'

박물관 로비

15:20~15:40개막식내빈소개박물관 로비

인사말실학박물관장박물관 로비

격려사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박물관 로비

축사경기도의회 의원박물관 로비
15:40~15:50테잎 커팅내빈전시실
15:50~16:10특별전 관람정성희(전시담당 학예사)전시실
16:10~17:00리셉션참석자 모두열수홀(강당)


※ 창작 가곡 소개


– 창작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가곡’의 전통연주방식임

– 조선 선비문화의 한 형태로 관현반주와 함께 긴 가락의 노래로 불리는 ‘시창詩唱’ 형식임

– 노래 : 강숙현(풍류단 시가인詩歌人 대표)

– 피리 : 박영기(경기도립국악단 수석, 중요무형문화재 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

– 공연 : ‘<하피첩> 서시序詩’, ‘쓰러진 나무에 싹이 나고’, ‘매화병제도’ 3곡



□ 주요 유물 자료



<하피첩> 3첩 서시부분-국립민속박물관 협조


▶ 하피첩 霞帔帖

1810년(순조 10) | 필사본 | 24.8×15.6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807년 봄, 홍씨 부인은 유배 생활중인 남편 다산선생에게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비단치마를 보냈다. 다산 선생은 그 오래된 비단 치마를 말라서 1807년부터 1809년까지 두 아들에게 경계의 말을 적어 보내면서, 이것을 《하피첩》이라 명명하였다. 《하피첩》은 원래 4첩으로 이루어졌는데, 현재 3첩만 남아 전한다.




<매화병제도> 고려대학교 박물관


▶ 매화병제도 梅花倂題圖

1813년(순조 13) | 필사본 | 38.5×17 |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1813년 7월 유배기에서 다산 정약용은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와 새를 그린 그림을 보내준다. 두 마리의 새처럼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세부정보

  • 하피첩의 귀향

    진행기간/ 2016. 10. 17~2017. 03. 26

    장소/ 실학박물관

    주최.주관/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협력/ 국립민속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 관람안내/ 10시~18시(7~8월은 19시까지) 무료관람

    홈페이지/ silhak.ggcf.kr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747번길 16

    문의/ 031-579-6000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