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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안성 죽주산성

단 한명으로도 길을 막을 수 있는 곳 : 한국의 마추픽추, 죽주산성


이 글은 경기도 내 수많은 성곽유적 중에서 '경기도 성곽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답사가 이루어진 산성의

역사와 관련 인물, 이야기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죽주산성은 조선시대 명재상 유성룡이 ‘단 한명의 군사로도 길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 했듯이 성을 쌓은 후 한 번도 점령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군사적 요새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죽주산성은 ‘3명의 병사로 10만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페루의 산상도시 마추픽추를 떠올리게 합니다. 


  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의 산물


죽산은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백제 때의 고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래 백제의 개차산(皆次山)이었는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따라 이 곳을 쌓은 뒤 개차산군(皆次山郡)으로 삼았습니다. 그 후 475년부터 501년까지 이곳은 고구려의 영토였습니다.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죽주산성은 안성의 망이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를 정복하기 위한 고구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준 대몽전쟁의 격전지


죽주산성은 고려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어 식수를 확보하기 쉬운 현재의 규모로 넓혀 외성을 쌓게 됩니다. 풍부한 식수원과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춤으로서 최고의 군사요새로 거듭납니다.

요새의 특징과 몽골군의 공격술을 익히 알고 있던 송문주 장군은 몽골의 3차 침입시 죽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송문주 장군                                                             송문주 장군 사당



죽주성 전투의 승장, 송문주 장군


몽골군은 용인 처인성에서 김윤후에 의해 사령관 살리타이가 전사하자 1236년 가을, 대군을 이끌고 죽주성 공격에 나섰다. 당시 죽주산성은 몽골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린 것으로 유명한 귀주대첩의 용장 송문주 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백성들은 송문주 장군의 지휘 아래 성밖에 진을 치고 있던 몽골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여 수시로 기습반격을 감행하였다. 결국 몽골군은 많은 살상자를 내고 죽주성을 뒤로 한 채 경상도 지역으로 남진할 수 밖에 없었다.



 



왜란을 거쳐 방어형 산성으로 보완


조선시대에도 죽주산성을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성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왜성의 견고함을 알게 되면서, 방어가 취약한 내성 북벽 구간을 보하기 위해 다시 중성을 추가함에 따라 다른 산성에서 보기 어려운 3중 구획을 갖춘 견고한 산성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붕괴되었던 성곽은 2002년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으며, 단계적으로 보수하고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송문주 장군에 얽힌 오누이 힘내기 전설*


송문주 장군은 평소 도량이 크고 힘과 지혜가 뛰어나 홀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요. 질투와 시기가 심했던 누이 송희는 동생에게 무시무시한 내기를 제안하지요.

“나는 내일 아침까지 저 아래에 성을 다 쌓아 놓을테니, 너는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서 송아지를 끌고 개성에 갔다가 아침밥 먹기 전에 돌아오는 거야. 내기의 벌로 지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는 거지.”


송문주는 개성을 향하여 떠났어요. 다음날 새벽, 송희는 벌써 성을 다 쌓고 남문을 달 떄인데, 개성에 간 송문주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만일 송문주가 내기에 지는 때에는 죽음으로써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송희는 죽지는 못하리라 생각했지요.


결국 어머니는 뜨거운 팥죽으로 송희를 방해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밤새워 성을 쌓느라 시장할테니 팥죽이라도 먹고 쉬엄쉬엄 하렴. 문주는 아직 오려면 멀었을 것 아니니?”

이를 어머니의 사랑이라 여긴 송희는 뜨거운 팥죽을 호호 불어가며 다 먹었지요. 송희가 부랴부랴 남쪽의 성문을 달려고 할 즈음 벌써 송문주가 돌아와 눈 앞에 서 있는 거예요. 송희는 그제서야 어머니에게 속은 것을 알았으나, 여장부로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어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하였어요. 그때 송희의 목에서는 선혈과 함께 푸른 새 한 쌍이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날아갔어요.




그 후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송문주 장군이 몽골병에게 패하기 전에도 푸른 새 한 쌍이 누이가 죽을 당시와 같은 비명을 내며 날아갔다고 전해지지요.


* 오누이 힘내기 전설


대표적인 오누이 서사인 <오누이 힘내기 전설>은 죽음을 건 내기를 여성이 제안하면서 대립이 일어나고, 주변의 도움으로 오빠나 남동생, 즉 남성이 모두 승리하여 집단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남성이 집단의 중심이 되는 전통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패자로서 여성은 죽음으로 기존질서에 항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파랑새의 출현으로 승자가 아닌 패자를 기리는 민중들의 정서도 엿볼 수 있다.



2018 경기도 성곽투어 현장

○ 성곽투어 일시 : 2018.04.14.(토) 오전 9시

○ 성곽투어 코스 : 안성 죽주산성 → 봉업사지(봉업사지 5층 석탑 및 당간지주) → 죽산리 3층 석탑

                             → 죽산리 석불입상 → 매산리 석불입상

○ 성곽투어 소감

     - 비가 왔지만 설명이 좋아서 기억이 오래 갈 것 같아요. (참가자1)

     - 날씨가 좋았으면, 투어가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또 오고 싶어요. (참가자2)












죽주산성 주변 문화유산

봉업사지 전경(출처 : 문화재청)

안성 봉업사지

(安城 奉業寺址 / 경기도기념물 제189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일원

면적 : 지정구역 43.314㎡

지정일 : 2003.04.21.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5

봉업사지 오층석탑(출처 : 문화재청)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安城 奉業寺址 五層石塔 / 보물 제435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1기

크기 : 높이 600㎝

재질 : 석재(화강암)

지정일 : 1966.02.28.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죽산리 당간지주(출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

(安城 竹山里 幢竿支株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89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1기

크기 : 470×80×50㎝

재질 : 석재(화강암)

지정일 : 1979.09.03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728

죽산리 삼층석탐(출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안성 죽산리 삼층석탑

(安城 竹山里 三層石塔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8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1기

크기 : 높이 320㎝

재질 : 석재(화강암)

지정일 : 1978.10.10.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240-2

죽산리 석불입상(출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

(安城 竹山里 石佛立像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97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1구

크기 : 400×100㎝

재질 : 석재(화강암)

지정일 : 1980.06.02.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산 6-1

매산리 석불입상 및 미륵당 석탑(출처 : 문화재청)

매산리 석불입상

(梅山里 石佛立像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7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 1구

면적 : 290×250㎝

재질 : 석재(화강암)

지정일 : 1973.07.10.

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32-2



information

  • 2018 경기도 성곽투어 <산성에 오르자!>

    일자/ 2018.04.14.(토)

    장소/ 안성 죽주산성

글쓴이
경기문화재연구원
자기소개
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