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나의 애정 공간 - 따뜻하고 이상한 이 동네의 ‘법칙’

용인 고기동 ‘그냥.. 가게’,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이 글은 《우리동네 펍》본문 글입니다.


은정아 | ebs 지식채널e 방송작가



용인시 고기동은 언제부턴가 주말이면 진입이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고급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고,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해졌다. 자연히 땅값이 치솟았고, 고즈넉하던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이처럼 갑자기 ‘뜬’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면 마을에서 오랫동안 쌓아 온 문화는 무너지기 쉽다. 상업의 논리가 지배하는 삶의 터전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원주민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동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고기동에는 이 마을이 ‘뜨기 전’부터 이어온 지역의 삶과 문화가 있다. 그들은 여전히 소박한 공간에서 만나고, 나누고, 함께한다. 재활용품을 판매하고, 커피를 그냥 마실 수 있는 ‘그냥... 가게’,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함께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ㅇ.래목공방’ 등이 그 공간들이다. 이 소박하고 작은 공간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법칙이 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문턱낮이은 공간이라는 점, 자본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마을 주민들 스스로 중심이 되어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같은 마을의 자생 문화 공동체가 가능했던 것일까. 비밀은 바로 이 공간들의 운영 주체에 있다. 공간이 들어선 땅의 소유주는 ‘고기 교회’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떤 종교적 강요도 없다. 실제로 공간을 이용하는 대다수는 교인이 아닌 ‘그냥’ 주민이다. 고기 교회는 운영 주체로서의 책임은 지지만 주민들에게 종교를 비롯한 어떤 의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 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 및 주거 지역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래의 거주자들은 지역 으로 내몰리게 되는 현상.


그냥 가게.. 카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



경계 없고 차별 없는 사랑의 실천


그냥.. 가게,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ㅇ.래목공방 등을 둘러보니 무척 자유롭고 따뜻한 공동체란 생각이 드는데요. 운영 주체가 고기 교회입니다. 정말 ‘종교적인 색채’는 없는 건가요?


(김준표 고기 교회 부목사, 이하 김준표 부목사) 일단은 이곳이 교회 공간이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운영의 주체인 것이 사실이고요. 종교적인 색이 많이 보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죠. 그러나 조금만 다녀 보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고기 교회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당은 예배를 위한 공간이고, 나머지 카페나 도서관 같은 다른 공간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사실 이것을 신학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만 사랑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경계 없고 차별 없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이 공간들을 주체적으로 내놓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냥 와서 그냥 쉬는 ‘그냥.. 가게’


안홍택 목사는 27년 전, 고기 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고기동은 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이었고, 교인들은 20~30명 정도에 불과했다. 시골 목사는 난초를 직접 재배했다. 교회는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난을 키운 수익으로 교회도 운영하고, 아이들 성경 학교도 열고, 지역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도 도왔다 . 난초 재배를 약 10년 정도 해오다가, 중국에서 난이 대량 수 입되면서 수익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비닐하우스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모였다. 처음부터 카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늘 생태적인 삶을 지향해 오던 안홍택 목사는 자원의 순환적 측면에서 ‘재활용 장터’를 기획했다. 그러다가 재활용 가게 왔다가 커피도 마시면 좋겠다 싶 어 가게 한쪽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난을 재배할 때나 지금이나 이곳의 기본 성격은 동일하다. ‘지역 주민을 위한 곳, 돈 이나 종교로 턱을 만들지 않는 곳’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게 이름 그대로 ‘그냥’ 이용한다. ‘그냥.. 가게’를 취재하는 동안 주민들은 ‘그냥’ 와서 ‘그냥’ 커피를 마시고, ‘그냥’ 재활용품들을 사갔다. 자신의 공간처럼 부담 없이 가게를 들락날락거리며 쉬다 놀다 가는 동네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당당했다. 무엇보다 ‘그냥. . 가게’에는 다른 가게와는 다른 아주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커피가 ‘그냥’(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그냥.. 가게’의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재활용 가게의 이용이 매우 활발한 듯 보입니다. 무엇보다 커피가 무료로 제공되는 점 이 인상적입니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길들여진 저에게는 좀 생소한데요.



그냥.. 가게’ 벽면에 걸린 시와 재활용품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김준표 부목사) 저도 처음에는 ‘커피 무료 제공’이 납득이 잘 안 됐어요. 제가 2015년에 이곳으로 부임해 왔는데 그전에 2년 동안 인도에서 NGO 활동을 하다 왔거든요. 그곳에서 인도 현지인들 자립을 돕는 일을 하다 왔는데요. 그때 공짜로 뭘 해주는 것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일정 정도 부담을 줘야 책임감과 주체의식이 생긴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 교회에 오게 됐어요. 부목사로 오기 전에 한번 둘러보러 왔죠. 그리고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데, ‘얼마예요?’ 했더니, ‘그냥 드세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천원 씩이라도 내야죠. 당연히.’ 그러니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모든 관계가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고 있지 않느냐. 뭘 하더라도 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주면 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예전 공동체 문화는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이웃과 관계를 맺어 왔다. 내가 가진 걸 나누고. 대가없이 줄 수 있는 선물이 많이 오갈 때. 그 마을이 건강하게 살아나는 게 아니겠는가.’ 그 말씀을 듣는데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 원리가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그냥.. 카페’와 ‘재활용 센터’라는 이 공간이 활성화되는데는 커피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큰 것 같아요. 대접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선물’을 받는 거죠. 그리고 그냥 커피가 아니라, 정말 좋은 커피거든요. 여기서 먹다 보니 제가 다른 데 가서 커피를 잘 못 마셔요. 여기 원두가 고급이라, 커피가 정말 맛있거든요. 그렇게 ‘그냥.. 카페’와 지역 주민들은 서로 계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로 설정되었죠. 그게 참 놀랄 만큼 건강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대가 없는 선물 경제’의 기반은 공짜 커피만이 아니다. ‘수,목,일’ 일주일에 3일 문을 여는 ‘그냥.. 카페’의 운영진은 모두 다섯 명이다. 이들은 모두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내서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재활용 가게에서 팔리는 물품들도 같은 맥락이다. 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러 올 때 기부할 물건들을 한 아름 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아낌없이 가져오는 기부 물품이 넘치기 때문에 자연히 좋은 물건이 많고, 상품의 회전율도 높다. 일요일처럼 쉬는 날에는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문을 열지 않는 평일에도 ‘그냥.. 가게’의 ‘대가 없는 선물 경제의 원리’는 작동된다. 상업적이지 않은 마을 모임이나 행사가 있으면 기꺼이 장소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냥.. 가게’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가 기분 좋고 넉넉하게 이익을 나눠 가진다. 이 같은 마법은 단순히 ‘그냥.. 가게’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도 퍼져 나간다. 연말이면 ‘그냥.. 가게’는 수익을 사회에 기부한다. NGO 단체나 어려운 이웃,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 등 수많은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눠왔다. 마법의 선순환인 것이다.


‘그냥.. 가게’ 입구 풍경



주민들의 삶이 토실토실 살찌는 공간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그냥.. 가게’에서 예배당 방향으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오래된 양옥이 하나 보인다.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이다. 안홍택 목사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 이곳은 문화 불모지에 가까웠다. 동네에 고기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학교 안에조차 도서관이 없었다. 안홍택 목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았다. 동네 아이들이 갈 곳이 있고,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그래서 안홍택 목사는 자신의 사택을 내놓아 ‘도서관’을 만들었다. 300여 권의 기증받은 책으로 시작했던 작은 도서관은 이제 1만 권이 넘는 책으로 가득 찼다. 도서관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1시에서 6시까지 운영되고 주말에도 운영한다. 20여 명의 자원 활동가들 중 교인은 서너 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순수한 지역 주민들이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도서관에 온다. 책을 읽기도 하고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놀기도 한다. 도서관은 곳곳에 숨을 곳이 많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아이들은 구석에 자리 잡고 지친 하루의 숨고르기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방을 던져 놓고 나가서 논다. 자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곳은 사방이 놀잇감이고 놀이터다. 여기저기 뛰어놀다가 심심해지거나 너무 지치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미술 도구를 찾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의 진정한 매력은 도서관의 중심이 책이 아 니라는 ‘이상한 법칙’에 있다.


‘그냥.. 가게’와 마찬가지로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역시 그 누구도 이 공간이 교회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은 언제나 역동적으로 살아 있다.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 혹은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도서관을 중심으로 금방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노래 부르고 좋은 노래를 찾아 듣다 보니 음악회가 되었다. 또 함께 글을 읽고 쓰고 나누다 보니 백일장이 열렸다.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연을 하다보니 인형극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때그때 지역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도서관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또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사라진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와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열린 공간인 것이다.




책과 책 사이를 지나다 보면 작은 공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인형극을 위한 소품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도서관을 즐긴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데요.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현경,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자원봉사자, 고기초 학부모) 이곳은 아이들 수만큼 엄마들이 와요. 그래서 다른 도서관보다 많이 시끄럽죠.(웃음) 아파트촌에 살다가 고기동에 2013년에 이사 왔어요.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은 고기 교회가 공간을 내주고, 책임 운영을 하지만 절대 관여하지 않아요. 그래서 거의 고기초 학부모들이 운영하고 있죠. 사실 고기동에 이런 공간이 잘 없어요. 학교에서도 놀 곳이 없거든요. 무엇보다 요즘 고기동이 계속 개발이 되어서 차도 많아지다 보니 걱정이 많아요. 그래도 교회 도서관의 주위 환경은 그대로잖아요. 사방어디나 나무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물론 예전보다 휑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 도서관에서 는 차가 안 보이고, 나무만 보여요. 교회가 이곳을 지켜 주니까, 이곳에서 내 아이가 와서 놀면 너무 안심이 돼요. 정말 안전한 공간이에요. 더불어 책이 있으니 좋죠. 사실 이 도서관은 책이 주가 아니에요.(웃음) 놀다가 정 심심하면 와서. ‘한번 볼까.’ 이러고 읽는 게 책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떠드는 것도 당연시하죠. 편안하 게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당하지 않으니까. 정말 편안하고 좋아요.”


어스름이 질 무렵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의 모습.


1.                                                                                                                 2.


1.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은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다. 함께 어울릴 수 있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든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숨어들어 갈 수도 있다.

2. 거실에서 왁자지껄 함께 장난치던 아이들은 어느덧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낸다. 책과 책 사이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넓은 우주를 만난다.



자연과 주민과 더불어 꽃피는 마을 문화


고기 교회를 둘러싼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예배당 뒤 겨울의 습지에는 눈이 내려서 자연스럽게 미끄럼틀이 된다. 볼 빨간 아이들은 종이 박스를 들고 나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썰매를 신나게 탄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처음자리 생태교실’도 문을 연다. ‘처음자리’는 고기(古基)의 순수 우리말이다. 고기 교회에서는 예배당 뒤를 생태 습지로 남겨 뒀다. 그곳에서 매년 7 세부터 3학년까지 30~40명 아이들의 신청을 받아서 자연의 사계절을 함께한다. 아이들은 생태교 실에서 도롱뇽 알도 만나고 수생식물도 관찰한다. 또 직접 벼농사를 짓고, 텃밭도 가꾼다. 가을이면 수확을 해서 그것으로 찹쌀떡도 해 먹고 고구마도 쪄 먹으며 논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계절 의 변화와 생명이 커 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배운다.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곳의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주민들에게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김준표 부목사) 네. 저희는 이 자연 공간들을 굳이 더 개발하거나 교회를 위해 건물을 짓거나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예배당은 70~80명이 들어오면 꽉 찹니다. 에어컨도 없고, 예배 의자도 없어요. 그래서 한여름 2, 3주 정도는 정말 버겁긴 합니다. 땀 냄새 발 냄새에 다들 바닥에 앉아 있으니, 어휴 힘들긴 하죠.(웃음) 그래서 저희는 농담처럼 절대 교인을 늘리지 말자고 서로 이야기합니다.(웃음) 어떤 분들은 뒤에 빈 터가 많은데 그곳에 새로운 예배당을 왜 짓지 않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큰 예배당을 짓는 것이 아니라, 처음자리 동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고 잘 지켜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는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서 함께 살아갑니다. 모두가 이 자연을, 우리 마을을 지켜 내기 위해서 함께하고 있어요. 여기는 고기 주민들을 위해 그대로 보존되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겨울이 내린 습지 풍경과 소박한 예배당의 모습이 조화롭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예배당 내부는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이 느껴진다.


2. 예배당 내부 모습, 그리고 예배당 뒤 습지 풍경


고기 교회를 둘러싼 고기동에는 이상한 ‘법칙’이 지배한다. 들어오는 이 누구나 ‘그냥’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마을 주민 누구나 나서서 품을 판다. 도서관은 ‘책’보다는 ‘노는 게’ 주가 된다. 습지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도롱뇽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한없이 이상한 이곳의 법칙은 이곳에서는 ‘상식’이고 ‘문화’다.


우리는 흔히 세상의 법칙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그러 나 우리의 문화라는 건 각자 디디고 서 있는 위에서 각자가 꽃피우는 것이다. 삶의 가치를 어떻게 두고, 누구와 만나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문화는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고기동의 상황 역시 좋지 않다. 당장 예배당 뒷산은 개발 위험에 직면해 있고, 공유 공간을 조금만 벗어나도 각종 상업 시설들이 즐비하다. 우리를 지배해 온 ‘세상의 법칙’은 지금까지 지켜 온 고기동의 문화를 위협한다. 그럼에도 고기동이 오랫동안 품어 오고 발전시켜 온 지역 문화는 여전히 단단하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민들 각자는 서로서로를 보듬으며,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터전 위에서 지역 문화를 하나씩 꽃피워 왔다. 설사 고기동의 외부 환경이 변한다 하더라도 단단한 뿌리를 가진 고기동의 ‘남다른 동네 문화’는 또 새로운 꽃을 피워 낼 것이다.


고기동에는 다시 봄이 올 것이고, 아이들은 다시 생태교실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놀다 지쳐 쉬고 싶을 때는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갈 것이다. 어른들은 ‘그냥..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눌 것이다. ‘ㅇ.래목공방’에서는 내 손으로 만드는 꼭 필요하지만 자연 친화적인 물품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동안 자연은 언제나 고기동을 따뜻하게 품어 줄 것이다. 그렇게 고기동의 사계는 제 속도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따뜻하고 이상한 이 동네의 법칙’은 앞으로 도 지금처럼 묵묵히 계속될 것이다.


세부정보

  • 고기동 ‘그냥.. 가게’ & 밤토실 어린이 도서관

    주소/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홈페이지/ http://www.gogi.or.kr

  • 우라동네 펍/ 펍에 실린 12팀의 인터뷰이는 2016년 9월부터 조사한 문화재생 활동단체 중에 선별 추천되었다. 문화재생 활동단체 조사는 문화재생팀 신설 이후, 도내 문화재생 활동에 대한 모집단 규모와 수요 파악을 위해 실시되었다. 조사원은 각 지역에 활동 기반을 둔 청년 중심으로 구성하여 같은 지역 내에서 활동 하고 있는 단체를 심층 조사하였다. 조사 대상은 공동체 철학이 반영된 문화재생 기획과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와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지역을 거점 삼아 활동하게 된 계기와 계획, 지역 관계 정도, 재원 확보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수집하였다. 조사 결과는 재단문화재생 사업에 반영하여 활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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