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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이경석선생 묘 李景奭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84호





삼정승을 지낸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묘이다. 이경석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白軒이다. 종실 덕천군 이후생德泉君李厚生의 6대손이다. 162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몽진하자 승문원주서로 왕을 호종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해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홍문관·예문관의 대제학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한 뒤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총괄하였다. 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고 1668년(현종9)에는 궤장廓杖을 하사받았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 등 유집 50여 권이 간행되었고, 글로는 ‘삼전도비문’이 있는데 사후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경석의 묘는 성남시 석운동 청계산 대감능골에 남향으로 위치하며, 부인 전주류씨全州柳氏와 합장한 단분이다. 묘역은 크게 2계階로 구분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봉분, 묘표를 배치하였고 하계에는 망주석 2기, 문인석 2기를 배치하였다. 그 외에 배치된 혼유석·상석·고석·향로석 2기·장명등은 현대에 제작한 것이다.

묘역 입구에는 1754년(영조30)에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짓고, 현손 원교 이광사李匡師(1705~1777) 가 썼다. 이광사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와 원교체를 완성한 서예의 대가로 조선 서예사적 위치가 매우 크다. 전액은 ‘영의정시문충이공신도비명領議政諡文忠李公神道碑銘’이다. 형태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으로, 개석은 팔작지붕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좁고 처마의 선도 거의 직선화되었다. 18세기 중엽의 단순화된 개석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경석선생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표는 1751년(영조27)에 건립한 것이다. 상계 봉분의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형태는 윗면이 둥근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이다. 비제는 ‘유명조선국문충 공백헌선생경석묘 정경부인전주유씨 부좌有明朝鮮國文忠 公白軒先生景奭墓 貞敬夫人全州柳氏 祔左’이다. 묘표의 비문은 현손 이광회李匡會가 짓고 원교 이광사李匡師가 썼다. 특히 묘표의 4면에 가득한 이광사의 글씨는 정갈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경석 신도비와 함께 독특한 이광사의 서예를 볼 수 있는 18세기의 대표적인 묘비이다.


이경석선생 묘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망주석은 하계에 2기를 배치하였다. 동쪽 망주석의 운두雲頭에는 여의앙련을 장식하고, 염의簾衣는 상단에 세줄 띠를 둘렀으며 주신柱身의 세호細虎는 올라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약간 비틀어 조각하여 운동감이 있다. 운두와 염의 등에 장식이 없는 서쪽 망주석은 후대에 놓여진 것으로 보인다.

문인석은 망주석 아래 하계에 2기를 배치하였다. 형태는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으로 얼굴은 평면적이고 눈은 선각화하였으나 미소를 짓고 있다. 금관 뒷면의 폐슬蔽膝과 후수後綬는 내부장식 없이 선단형태만 양각한 간략한 형태이고, 옆면의 옷주름은 등간격으로 선각하였다. 금관을 포함한 얼굴부분이 매우 크고 높게 강조되었고, 안면이 앞으로 많이 돌출된 형태로 17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이경석선생 묘 망주석, 문인석(좌),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전체적으로 현대에 추가된 석물을 제외한다면, 17세기의 묘제와 석물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경석의 신도비와 묘표는 17~18세기 문인들의 교유관계와 당시 서예사를 살필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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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묘비 1기, 상석 1기,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주소/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7

    지정일/ 1985.09.20

    소유자/ 사유

    관리자/ 전주이씨 백헌상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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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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