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메신저가 메시지다 (1)

지지봄봄 18호 좌담회


'지지봄봄'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에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으로 경기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도민들과 공유합니다.


고영직 / 18호 편집장, 문학평론가

정은균 / 군산영광중 교사

송인현 / 극단 민들레 대표

박영길 /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대표

안태호 / 문화평론가

전지영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박아롬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원

한상은 / 녹취록 작성자



교육은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가


고영직 안녕하세요? 지지봄봄 18호 편집장을 맡은 고영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_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주제로 지지봄봄 18호 좌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네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공부해서 용 되자)의 박영길 선생님은 올해『 요리활동』을 출간하셨는데요. 저는 책에서‘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해 잘 먹고 잘 싸우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반대를 ‘평화’라고 말하지만, 어느 시인은 “전쟁의 반대는 / 평화가 아니고 일상”(김정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는 ‘일상(日常)’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활동) 에서도 일상의 한 부분인 요리를 많이 접목시키지만, 대부분 프로그램화된 형식으로 ‘요리하기’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영길 선생님은 활동가 중심 네트워크를 지향하며 요리활동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과 만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분은 ‘화성 민들레 연극마을’ 대표를 맡고 계신 송인현 선생 님입니다. 선생님의 생활이 예술과 어우러지는 일상을 꿈꾸며, 선생님의 고향인 화성시 우정읍의 한 마을에 연극마을을 꾸리시고 국내외 연극팀을 초청해 연극 축제를 기획·운영하고 계십니다.


그 옆에 앉으신 정은균 선생님은 올초 출간한 『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이며, 현재 군산 영광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 책을 보며 존 듀이의 철학에 견주어 ‘학교는 작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것에 입각해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는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태호 선생님은 문화행정가로서 얼마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서 일하셨고요. 지금은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신 분들 중에서는 공공기관과 행정 시스템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 맺으셨던 분이시니, 그런 시각에서 ‘삶으로서 문화예술 교육’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2016년《 지지봄봄》의 대주제인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결국 “좋은 삶(good life)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근대 사회의 가장 큰 저주는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의 ‘뿌리 뽑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살 것인지가 이번 좌담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먼저 한 분 한 분 자기소개를 겸해서 어떤 (교육)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요즘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한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은균 저는 올해로 교직생활 17년차이고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을 통해 글쓰기와 글읽기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수업 방법과 제가 재구성하여 진행하는 수업을 비교하자면 아이들의 반응과 교실 분 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교과서에 ‘OO을 소재로 글쓰기를 해보자’라는 학습 활동이 제시되면 저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체험이나 주변의 상황을 소재로 글을 써보게 합니다. 작은 변화지만 아이들의 참여는 훨씬 활발해지지요. 저는 늘 “삶과 일상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하며 수업 을 디자인하고 설계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교과별로 교육 과정 성취 기준이 있습니다. 학습 목표 하나하나를 도달해야 할 기준으로 잡은 것입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습 목표가 전부 ‘성취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습 기준을 살짝 다르게 해석해서 삶과 수업을 연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입장도 일부 동조하면서도 과연 이러한 해석이 올바른 방법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삶과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대다수 선생님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규정한 교육 과정의 성취 기준이나 목표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재구성하는 것은 교사들의 부담감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교육 과정의 ‘편성권’과 ‘평가권’을 교사 또는 학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혁신 학교나 자율 학교에서는 20~30% 범위 내에서 교과 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데요. 그 폭이 넓어졌으면 합니다. 독일의 경우 교사들이 교과서와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활용합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형태를 지향하고 싶은데요. 저도 나름대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삶과 연결되는 글쓰기’ 수업 등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고영직 박영길 선생님의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좀 자유롭지 않나요? 7년 전부터 마을카페 ‘이따’와 ‘공룡’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하고,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영길 저는 <공룡> 활동 전에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습 니다. 공부방에는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학업에 관심이 없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서 공부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활동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수업이 미디어 수업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영상을 찍어, 편집했는데,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아이들이 착해지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긴 하는데, 그들의 삶이 변화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의 일상과 생활에 부딪혀 보고자 같이 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들과 공부방에서 나와 ‘공룡’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공간이 사회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기가 살아갈 삶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입학한 지 1년이 채 안돼서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니까 학교 선생님이 ‘공룡’에 가보라고 보내주셔서 같이 지내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저는 ‘공룡’의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보 지 않았으면 좋겠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흡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삶을 사는 다양한 방식을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과연 교육제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여러 지역에서 학교 를 향하여 일방적으로 마을 자원을 쏟아붓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 다. 하지만 학교는 마을에게 작은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더라고요.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룡’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나니, 지금은 마을학교처럼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청년 노동권과 철학 등을 같이 공부하고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수업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영직 말씀 중에서“ 교육제도 안에서 아이들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말씀이 가장 와 닿네요.


송인현 저는 사실 문화와 예술에 ‘교육’이 함께하는 순간, 문화예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하지만 단어의 한계 때문인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예술강사지원사업 관련 공청회할 때도 반대를 했지요. 그때 국회에서 제가 발언했던 내용은 “학생들에게 좋은 문화예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가 아니고, 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느냐”였어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마련을 목적으로 삼 고 있으니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해결점이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문화예술’과‘ 교육’이 만날 때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창의교육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저는“ ‘창의’에 ‘교육’이 어떻게 접목되느냐, 창의는 교육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어야 생긴다.”라고 했어요. 아이들의 창의력은 선입견을 없앨 때 생깁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아빠와 요리했을 때 가장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해요. 엄마는 집에서 밥하고 아빠는 나가서 일한다는 선입견을 없애는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틀이 생긴다는 거지요. 그동안 저의 큰 고민은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예술가가 ‘이기적일 때’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커뮤니티아트(community art)’ 라는 용어를 쓰기 전부터 동네 할머니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소위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커뮤니티아트의 결과물을 바라지요. 예술을 통해 꼭 뭐가 이루어져야 하나요? 그냥 해보는 거지요. 더하여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동아일보에서 해외의 유명한 과학자를 모시고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지식콘서트를 하더라고요. 거기서 한 고등학생이 "과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 질문에 그 해에 노벨상을 받 은 과학자가 하는 말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술가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은 매우 창의적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답변이 저의 생각을 바꿔 놨습니다. “예술은 공익을 위해 해야 한다던데,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예술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창의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었고요. 얼마 전까지도 세금(지원금)을 받아서 사회와 공공을 위해 활동하는 것에 당당했는데 지금은 ‘예술가라는 그 자체로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 당당한 위치에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세 분 말씀을 다 들어보니 송인현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의 현장에서 예술가의 결과물만 기대하는 풍토를 비판하셨고 박영길 선생님께서는 정책 사업과의 거리를 두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까지 기초문화재단에 계시다가‘ 백수’가 된 안태호 선생님께서 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태호 저는 세 달 전까지 부천문화재단에서 문화진흥 팀장을 맡았었고, 그 전에는 생활문화사업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송인현 선생님께서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에서는 결과물을 바란다”고 이야기 하셨는데요, 정책 사업을 진행하는 어느 기관도 결과물에 창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 대한 압박으로 현장의 불만은 크거든요.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재단에 있을 때는 현장 컨설팅 제도를 불신 했습니다. 컨설턴트가 A프로그램에서 B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C프로그램에 가면 B프로그램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러한 컨설팅은 무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요. 지금은 하나의 프로그램 현장에 오롯이 몰입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다른 현장을 찾아가서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교류시켜줄 수 있는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으로는 컨설턴트와 활동가가 대화 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좌표를 인식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요. 조금 전 박영길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담는 문제를 넘어서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을까?”가 오늘 좌담의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나 문화예 술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인현 하버드에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활동 자금을 지원해요. 그 결과 노벨상에 준하는 엄청난 결과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예술 활동이 ‘결과물 없음’을 전제로 할 때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나라 제도의 ‘엄격함 지수’가 세계에서 5위라고 합니다. 엄격함 지수가 높으면,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특허출원이 적다고 하죠.


전지영 전략보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경기문화재단에 들어와서야 단체나 예술가들이 공모사업을 지원하는데 제한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는 공모사업을 진행하며 결과물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더하여 지원사업의 절차가 바뀌었으면 해요. 선정 과정은 치열하게 하되 선정된 후에는 결과물에 대한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단체와 예술가의 전문성을 존중하여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만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것이죠.


- 메신저가 메시지다 (2)에 계속 -

세부정보

  •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 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글쓴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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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며 성장하는 ‘사람과 지역, 예술과 생활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러분의 삶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