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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강화 강화산성

왕실의 피난처이자, 천혜의 요새 : 강화산성


이 글은 경기도 내 수많은 성곽유적 중에서 '경기도 성곽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답사가 이루어진 산성의 역사와 관련 인물, 이야기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강화산성 남장대

강화산성 성벽


강화산성 전경 / 경기문화재연구원 제공


대몽 장기항전을 준비하다


고려는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1232년(고종 19) 강화도로 천도합니다. 그리고 송악산이라 불리던 북산 밑에 궁궐을 짓고 도성을 내성·중성·외성의 3중으로 쌓았습니다. 도성 가운데 약 1.2㎞의 내성이 지금의 강화산성으로 1234년부터 축조되었습니다. 이 내성을 방어하기 위한 중성이 축조된 것은 1250년으로 둘레가 약 9㎞에 달하는 토성이었습니다.


중성을 둘러싸는 외성은 강화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축조한 것으로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 시설이자,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으로 1237년에 1차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1270년(원종 11)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골과의 강화조약 조건으로 성과 궁궐은 모두 헐리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쌓고 눈물을 쏟으며 허물다


흙으로 쌓은 성이라지만 당시 몽골의 지나친 독촉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성벽을 쌓는 것보다 더 컸다고 합니다. <고려사>에는 당시 성곽을 허물던 백성들이 눈물을 뿌리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성을 쌓지 말지하며 통탄하였다고 전합니다.


고려의 멸망과 함께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산성은 조선 초에 내성을 축소하여 다시 석성으로 축성하였습니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으로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1677년(숙종 3) 고려 때의 내성 규모로 고쳐 쌓아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고려시대 가요 <청산별곡>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


☞ <청산별곡>은 몽골지배시기 고려의 임시수도인 강화도에서 만들어져 구전되어 온 갈등과 저항을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강화도 조약, 그리고 연무당 옛터


첨화루 옆에 연무당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적비가 있습니다. 1876년 2월 27일, 강화도 조약*이 최종 조인된 장소로, 이곳에서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로써 조선은 부산, 인천, 원산을 일본에게 개항하게 됩니다. 윤요호 사건 후 일본과의 회담은 지금 강화읍 사무소가 있는 중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중영 옆 연무당에 기관총 4정을 가져다 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회담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 조인식을 연무당에서 했던 것입니다. 열무당은 본래 강화 읍내에 있었으나 당시 훈련을 하던 교장 주위로 민가가 늘어나자 1870년 서문 쪽에 훈련장을 새로 짓고 연무당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 군사훈련 장소에서 조약을 체결한 이유는 국력의 상징인 군사력의 무력화를 시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 명성황후 시해 일본인들, 무죄인 이유?


강화도 조약 때문! 1876년 고종의 개화노선과 일본의 무력시위로 강화도에서 최초의 근대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 체결된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과 일본의 청나라 정복의 야욕을 알지 못한 채 받아들인 이 조약은 근대적이라는 말이 부끄러울만큼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그 중 일본인 범법자는 일본법에 따른다는 치외법권은 1895년 을미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의 일본인 범죄자들을 본국인 일본으로 소환, 전원 무죄판결을 내리는 근거가 되었다.



뱃사공 손돌의 넋이 깃든 덕포진의 찬 바람


1232년 몽골의 2차 침략 때 강화도로 천도*하게 된 고종은 뱃사공 손돌의 배를 타고 강화도로 가게 되었어요. 가는 도중 김포의 덕포진과 강화도 광성진 사이의 협소하고 급류가 흐르는 목에 닿게 되었지요. 


이곳은 앞에 여러 개의 검은 바위가 있어 마치 막힌 듯이 보이는 지형으로 처음 가는 사람은 뱃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곳이었어요. 파천하는 고종은 뱃길도 없는 곳을 향하여 배를 젓는 역적으로 의심하며 여러 차례 뱃길을 바로잡도록 명하였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손돌은 “보기에는 앞이 막힌 듯하오나 좀 더 나아가면 길이 트이오니 폐하께서는 괘념치 마옵소서.”라고 아뢰었어요.


그러나 이곳의 지형적 특성을 알지 못한 왕은 ‘저 놈이 험한 곳으로 나를 끌어가 물에 빠뜨려 죽이려는 속셈이구나’하고는 신하들에게 손돌을 죽이라고 명하였지요.


손돌은 죽음 앞에서도 임금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 “제가 띄어놓은 이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섬에 무사히 당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끝내 죽임을 당했어요.


이 좁은 물길은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이 날이 바로 음력 10월 20일로, 이 날 부는 바람은 손돌풍이라 부르고, 이 날의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해요. 얼굴하게 죽은 손돌의 넋이 바람과 추위를 몰고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 무신정권의 강화도 천도


1232년 여름, 고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몽골의 침략에 대비해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40여 년간의 항몽 전쟁에 들어갔다.


* 손돌목의 위치 : 김포와 강화가 나란히 있는 강화 해협에 있다.



강화산성 주변 둘러볼 만한 곳


덕포진 전경(출처 : 문화재청)

김포 덕포진

(金浦 德浦鎭 / 사적 제292호)


유형 : 성곽

면적 : 48,829㎡

시대 : 조선시대

지정일 : 1981.09.25.

주소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3-1

손돌 묘(출처 : 문화재청)

덕포진 손돌 묘

(德浦鎭 孫乭墓)


유형 : 무덤

수량 : 1기

설명 : 고려시대 뱃사공 손돌의 무덤.  본래 사당이 있어서 제를 지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사당이 헐렸음.  현재 무덤은 1970년에 복원됨

주소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3-1

강화역사박물관(출처 : 강화군청)

강화역사박물관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강화대로 994-19

관람시간 : 09:00 ~ 18:00

관람료 : 어린이,청소년,군인-2,000원 / 어른-3,000원 / 유아,노인-무료

홈페이지 : http://www.ganghwa.go.kr

문의전화 : 032-934-7887



2018 경기도 성곽투어 현장

○ 성곽투어 일시 : 2018.05.12.(토) 오전 9시

○ 성곽투어 코스 : 강화 강화산성 → 덕포진(손돌묘 포함)

○ 성곽투어 소감

     - 비가 오는데도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참가자1)

     - 날씨에 맞춰 적절히 코스를 변경해 가며, 빠르게 대처해 주셔서 알찬 시간 보냈습니다.(참가자2)

     - 초등학생이 듣기에 설명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춰주세요.(참가자3)












information

  • 2018 경기도 성곽투어 <산성에 오르자!>

    일자/ 2018.05.12.(토)

    장소/ 강화 강화산성, 덕포진, 손돌묘

글쓴이
경기문화재연구원
자기소개
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