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상상캠퍼스

동네장인 3 <솜틀집>

이 글은 생활 속 경험과 지혜로 자신만의 소소한 재능을 익힌

우리 주위의 사소한 장인들을 만나보는 장인 발굴 프로젝트의 본문 내용입니다. 


“저만큼이 다 작업 하셔야 하는 양이에요?”

“네.”

“(놀라며) 저걸 다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매일 해야죠.”




어머님과의 대화


연구원(이하 연) 이 자리에서 솜틀 일을 하게 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어머님(이하 어) 정확히 2000년 5월 20일에 정식 개업을 했고, 개업하기 40일 전에 기계를 들여와서 테스트를 했어요. 횟수로는 18년, 만 17년을 했죠.


2000년도에도 서둔동에서 시작하신 거예요?


이 자리에서 시작했어요.


처음에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애 아빠가 공직생활을 했어요. 30년 정도. 공무원이라기 보단 준공무원. 은행에서 근무를 했는데 퇴직 무렵에 매일 예금하시는 손님 한 분이 우연치 않게 이 일에 대해 알려줬대요. 그 얘길 듣고 해볼 마음이 생겼나 봐요. 이게 나의 만년직장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남편이 그런 생각을 미리 했다는 걸 몰랐어요. 어느 날 갑자기 무슨 견학을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솜틀방이잖아요. 엄청 충격을 받았죠. 옛날에는 무슨 쟁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남편이 퇴직하고 이걸 하겠다고 하니 우리 부모님도 충격이었죠. 고생 않게 대학 마치고 직장 버젓한 사위한테 시집을 보낸 건데. 더구나 손주들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이라 한창 학비도 보조받고 해야 하는데. 어른들이 못하게 말리셨어요. 근데 남편이 굳이 이걸 하겠다고 저보고 요만큼만 도와달래요. 나 아니면 지금도 일 못해요! 남자는 기계만 틀지 꿰매는 걸 못하잖아. 손님하고 부드럽게 말도 잘 못하고.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만 설명하다 보니까 여자들하고 상대를 할 때 좀 싫었나 봐요. 영업도 해야 하고 주문도 해야 하고 그렇거든요.


일은 아버님이 벌여 놓으시고, 어머님이 다 하시는 거네요? (웃음)


어휴… 그러니까.(웃음) 퇴직하고도 직장 동료들이나 동문들이 자기 사업하는 곳에 와서 관리해달라는 사람도 있고 그랬어요. 그래도 마다하고 이걸 꿋꿋이 했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써본 사람들이 “장인정신”이라고 말해줘요. 뭐 난 장인정신까진 아닌 것 같고, 고지식하게 사는 거예요. (웃음)


그 말이 되게 좋네요.


네, 고지식하게……. 사실 요즘 솜 튼다고 하는 곳들은 거의 다 제대로 하지 않아요. 그냥 큰 공장에서 아줌마들이 다 걷어간 다음에 주문 받은 사이즈대로만 가져다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실명을 써서 하나하나 관리해요. 예를 들어 순이네꺼 이불을 틀었는데 솜이 모자라잖아요? 그러면 새 솜을 보탤 때 돈이 추가 되는 것도 다 설명 드리고, 솜을 틀었는데 남았으면 잘라서 드려요. 저흰 되는 건 되는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정확히 알려줘요. 솜 하나 가져와서 두개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죠. 그게 된다면 나일론 솜을 섞는 거예요.


그런데 왜 솜을 튼다고 표현하나요?


다려진 솜에서 섬유질을 골라주는 것을 ‘솜을 튼다’고 표현해요. 우리 집은 우선 원형 복원을 기본으로 생각해요. 그게 솜 트는 것의 기본이에요. 그리고 새 솜을 담을 때는 이전 솜을 따라서 복원해줘요. 그런데 요즘은 ‘솜 튼다’라고 하면 통판선이라고 해서 솜을 분쇄해서 내려치는 거예요. 그건 섬유질을 골라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분쇄를 해서 하는 거죠. 일단 부숴놨으니까 공기층은 생길지 몰라도 섬유질이 짧고, 섬유질을 끊어놓기 때문에 빨리 주저앉아요. 요즘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솜이 자꾸 도태되고 있어요. 써보면 옛날 솜하고 달라요. 그래서 요새는 다들 극세사를 쓰는데 극세사는 쓰면 안 좋아요. 본래 침구는 잘 때 흘리는 땀을 흡수해서 발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면 밖에 없어요. 옷이 기능성이여도 그걸 입고 자진 않잖아요. 면을 입고 자죠.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솜의 중요성을 잊고 극세사로 써요. 아니면 폴리에스테르로 된 걸 쓰죠. 우리가 면 남방 입었을 때랑 혼방 남방 입었을 때, 나일론 추리닝 입었을 때, 느낌이 같던가요?


다르죠.




그거예요 바로. 그런데 극세사는 면이 아니거든요. 싸개 자체가 코팅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 땀을 흡수 못하고, 땀이 차니까 사람들이 이불을 자꾸 차는 거예요. 그래서 침구를 어떤 재질을 가지고 어떻게 쓰냐가 중요해요. 기능으로 나온 극세사 재질은 외출했을 때 잠깐 입을 순 있어요. 하지만 일고여덟 시간 수면할 때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로지 예부터 내려오는 목화 솜 밖에 없어요. 오리털, 양모도 흡수가 안 돼요.


보통 목화솜이 무겁다고 하잖아요. 무거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벼운 재질을 많이 찾게 되는데, 목화솜을 틀어서 가볍게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사실 나일론이나 목화나 들어가는 양은 똑같아요. 삼 킬로 정도 되죠. 무게의 개념은 똑같은데 목화는 얇아요. 다른 재질들은 같은 무게여도 붕하니까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요. 목화는 납작하고 단단한 느낌이 드니까 무거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부피와 질감의 차이로 같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거죠?


그렇죠. 풍선도 바람 빠진 풍선이랑 바람 넣은 풍선 중에 바람 넣은 게 더 가볍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런 원리예요. 어제 어르신 한 분이 이불을 구매하셨거든요? 폴리에스테르라는 것이, 붕~ 뜨는 것도 있지만 몸을 쪼이는 감도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그걸 덮으면 발끝이 저리다고 할 정도예요. 그러다보니 어르신들은 불편하다 하시죠. 비싸게 주고 이불을 샀는데 별로니까 다시 목화로 바꾸러 오세요. 덮어 본 사람만 목화를 알아요. 그래서 목화솜 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거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하나하나 집어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어디서 그런 걸 다 배우셨어요?


저요? 하면서 배웠죠. 십 수 년인데……. 내가 손이 이렇게 기형이 되도록, 하나하나 꿰매가면서. 솜의 성질을 보면서. 옛날에는 어머니들이 솜을 틀어서 하나하나 넣어 이불을 만들었거든요. 넣는 과정도 섬유질의 질에 따라서, 직선으로 넣는 것도 있고, 접어 넣는 것도 있고 교차로 넣는 것도 있어요.


좋은 침구를 고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글쎄요. 굉장히 광범위한데……. 제일 좋은 것은 면 그 자체예요. 아까도 말한 것처럼 폴리에스테르 같은걸 고르면 패딩점퍼를 깔고 자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좋은 숙면은 면에서 오는 거죠. 솜을 얘기해보자면 솜의 품질을 좌우하는 첫째는 목화솜의 비율이에요. 100% 가 가장 좋죠. 두 번째는 섬유질의 길이에요. 길어야 좋죠. 우리는 가능하면 분쇄 안하고 이어줘요. 그게 어려우니까 보통은 커팅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힘이 약해져요.




그럼 목화패드가 따로 있나요?


목화패드라고 하지 않고 목화요가 있어요. 바닥에 까는 거라고 해서 크게 더 두껍진 않아요. 왜냐면 솜은 거풍을 시켜야 하는데 두꺼우면 통풍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기준치가 있어요. 싱글베드에는 보통 4kg를 써요. 어떤 분은 그래도 나는 허리가 아프니까 두껍게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요 안에 솜을 아무리 많이 넣는다 하더라도 누비면 바로 허리 아프고 딱딱하다고 느끼게 될 거예요. 기준점을 지키는 게 가장 좋죠.


계속 말씀 들으면서 느꼈지만 목화솜에 대한 프라이드가 정말 강하신 것 같아요!


그럼요. 전문가로써 자부심을 가지지 않고 무슨 일을 하겠어요. 저희는 주문해주신 분들 거 하나하나 솜을 직접 구해다가 트는 거잖아요. 다르니까 자부심이 있죠. 그리고 솜을 틀 때 맡은 솜마다 일일이 섬유질을 보고, 주인 이름 다 적어가면서 해요. 손이 많이 가서 이불 당 시간이 꽤 걸려요. 그래서 일이 늘 쌓여 있는 거예요. 다른 곳 같으면 한나절 동안 할 분량을 우리는 열흘에 걸쳐서 해요.


아, 그래서 일이 쌓여 있었군요. 보통 이불 하나에 얼마나 걸리는 거예요?


마무리까지 하려면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걸려요. 애아빠가 틀고, 내가 넣어서 꿰매고.


그렇게 정성스레하시니 많이 힘드시겠어요.


물론 힘이야 들지요. 그래도 우리 솜씨를 믿고 오래도록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 좋아요. 새로운 분들도 소개받아 찾아오시고 그러지요.



아버님과의 대화


이 가게를 열기 위해 퇴직을 좀 일찍 하셨다고 들었어요.


아버님(이하 아) 맞아요. 쉰다섯에 했으니까.


아버님 그럼 지금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예순여덟.


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 동안이시네요!


속으론 늙었어. 나이 들면 다 아프거든.


아까 어머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남편이 벌인 사업인데 정작 일하고 있는 건 본인이시라고요.(웃음) 아버님이 이곳 서둔동에 가게를 차리게 된 까닭이 궁금해요.


우리 집이 구운동이에요. 내가 퇴직할 당시 앞으로 뭘 할까 하다가 퇴직금 안 까먹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봤지.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니까. 뭘 시작하려면 투자를 일이억 정도를 해야지만 시작할 수 있었는데 솜틀방은 퇴직금으로도 괜찮겠더라고. 돈이 안 들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을 해야 했어요. 망하면 큰일 나니까. 이 자리를 소개시켜준 사람이 집 가까운 곳이라고 여길 추천했어요. 그 당시에 이곳은 허허벌판이어서 집값이 싸고 하니까 여기다 했죠. 근데 지금은 집들이 들어차서 나름 번화가가 되었죠.


아, 예전엔 아무것도 없었나요?


아유, 소나무 밖에 없고 바람 불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버스도 없고, 큰길도 없고. 그래서 광고를 내서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광고를 안 해도 17년 경력이 되니까 사람들이 그냥 와요.


침구는 비싸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그렇지. 요즘엔 또 기능성으로 100만 원짜리 커버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진드기도 안 살고, 알레르기도 없다고 설명을 하고 팔더라고. 그런데 진드기가 못 사는 천이 과연 좋은 걸까요? 우린 원래 진드기나 박테리아 이런 것들과 같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들을 이겨내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평생 피해 다닐 생각을 하면 안 되죠. 그러려면 인큐베이터 에서 살아야지. 안 그래요? 그래서 목화솜 이불을 덮으면서 몸의 저항력을 기르는 게 좋죠. 그게 제일 건강한 거예요. 이런 기능성은 옷에나 쓰면 되는 거예요.


정말 공감이 되네요. 진드기도 살 수 없는 재질을 쓰면 사람한테도 좋을 리가 없겠어요. 뭔가 굉장한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에요.(웃음) 좀 전 어머님도 그렇고 지금 아버님 말씀을 들으니 ‘나는 이 장사를 하면서 이것만은 꼭 지키겠다.’라는 소신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첫째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주기. 지금까지 내가 얘기했던 부분을 꼭 알려주죠. 속이는 일은 절대 없어요. 둘째는 그대로 틀어주는 것. 이불 가져와서 무겁다고 두개로 만들어 달라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해요. 다른 집이면 큰 솜 몇 백 원하는 것 사다가 섞어서 만들어주거든요. 근데 나는 그렇게 절대 안 해요. 새로 사라고 해요. 우리한테 솜 때다주는 곳도 우릴 속여요. 그래서 이거 감정하는 거 배우는 것만 2년이 걸렸어요. 와이프랑 둘이서. 이젠 안 속죠. 명주, 양모, 목화 등등 좋은 솜 고르는 방법 알려고 배웠어요. 이젠 못 속이지.


목화솜은 한번 사면 얼마나 쓸 수 있어요?


대를 물려 쓸 수 있어요. 할머니가 썼던 거 손자가 써도 괜찮아요.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다르죠. 요즘엔 100년도 더 쓸 수 있을 거예요. 옛날엔 샤워도 요즘처럼 자주 안 하고, 세탁기도 없었으니까 관리가 더 힘들었죠. 개천 나가서 빨아야 하니까. 요즘엔 사람들이 더 깨끗하기도 하고, 더 깨끗이 관리할 수 있으니 100년도 더 쓰죠.


신념을 가지고 자부심 있게 일을 하시니 보람을 느낄 때도 많을 것 같아요.


보람 있죠. 목화솜으로 이불을 해 가신 분들이 가끔 다시 오셔서 말씀해주세요. 아이가 이불 바꾸고 나더니 ‘엄마, 이불이 마술을 부려’라고 했대요. 그만큼 잠자리가 편해졌다는 거죠. 또 어떤 어르신은 등이 시리다고 이불을 해 갔는데, 손자가 이불 속에 같이 누워보더니 ‘할머니 이불은 왜 내거랑 달라!’ 이러면서 뺏어갔대요. 그래서 하나 더 하러 오셨어요. 또 어떤 분은 관절이 아파서 고생했는데, 이불 바꾸고 나서 아픈 게 다 사라졌다고도 하시고요. 보온이 잘 되니까 냉한 게 없어져서 그런 거죠. 그런 얘기 들으면 뿌듯해요. 구매하셨던 분들이 지나가다 말고 ‘아이고, 이불 잘 쓰고 있어요!’라고 반가운 인사도 하고, ‘아직 하시죠?’ 라고 물어봐 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못 그만두고 있어요. 처음엔 10년만 하자고 했는데 벌써 17년 됐잖아요.



세부정보

  • 장인 발굴 프로젝트

    총괄/ 박희주

    PM/ 경기천년문화창작소 강유리

    기획‧진행/ 소한연구소 강우진, 이연우, 하석호, 오린지

    편집‧디자인/ 40000km 오린지

    사진/ 강우진, 이연우, 오린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