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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천년 경기문화의 개방성과 포용성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과의 인터뷰


『문화정책』은 경기문화재단이 국내외 문화정책의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다양한 문화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2017년 여름부터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입니다. 본문은 『문화정책』 4권 논단 내용입니다.


대담자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

리포터 김성환, 경기문화재단 정책실장



김성환 실장 (이하 김) 2018년은 918년, 고려가 건국한지 천백년이며, 1018년, 우리나라에서 경기제도가 시행된지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 고려 건국 천백년과 경기 천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병우 교수(이하 안) 2018년은 고려시대 ‘경기’라는 제도가 시행된 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또 우리 역사에서 한반도의 첫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통일을 달성한 고려가 건국한 지 천백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뜻이 깊다. 1018년(현종 9년)에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었으므로, 경상도, 전라도 같은 도제(道制)가 만들어진지도 역시 천년이 되었다. 그 때 경기는 도(道)는 아니었고, 수도 개경을 둘러싸고 있는 특수한 지역으로서 경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 경기도에 속해 있는 양주·광주·수원을 비롯하여 많은 큰 고을들의 이름도 대체로 이때 정해졌다.


지금 시점에서 경기 천년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라는 이름이 생겨난 지 천년이나 되었으므로 기념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른 바 ‘정명론’이라 할 수 있겠다. 경기라는 이름은 왕경과 그 주변지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기(畿)지역은 왕경을 보익하는 곳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행정적으로는 도읍도 아니고 지방도 아닌 중간지대에 속하였지만, 실제로는 왕경의 외연지역으로서 왕경에서 필요한 각종 물자를 일차적으로 조달하는 지역이었고, 왕경에 거주하는 지배층의 경제기반과 생활기반이 집중된 곳이었다. 그 때문에 지배층의 농장이나 별장, 거주지, 무덤 등이 많이 분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경기가 ‘도’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 최말기였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제(京畿制)를 시행하였다. 오늘날 경기도에 속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조선 초기에 ‘경기’로 편성된 고을들이며, 과전 지급 때문에 경기의 규모는 고려에 비해 대폭 확대되었다.


경기도는 서울을 보위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서울에서 지방을 오갈 때 경기도를 거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물산이나 인원이 경기도를 거쳐 서울을 오갔다. 자연스레 경기도의 여러 고을은 교통의 중심지, 교역의 중심지, 물산의 집적지로 자리 잡았고 그에 따라 학문과 상업이 발달하였다. 기호학파 같은 학파가 형성되고, 율곡이나, 다산, 성호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이렇게 하여 경기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경기도는 여러 개의 오래된 고을들로 구성되었다. 이 고을들은 각기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고려가 건국되던 무렵 신라의 변방에 있던 작은 고을들이 개경이 수도가 되면서 중심지의 고을로 성장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본래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면서 수도 근처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쉽게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는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볼 때 경기천년은 정명 기념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경기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천년이라는 점에 좀 더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천년 동안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경기문화를 총체적으로 정리해 보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천년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바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화적인 특성 중에 하나가 국제성입니다. 경기천년과 관련한 경기문화의 국제성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1. 경기 지역 역사와 문화의 국제성과 개방성

2. 고려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재조명

‘경기 지역 역사문화의 국제성과 개방성’과 관련해 고려시대를 주목할 수 있다. 고려가 건국되고 도읍을 개성으로 정하면서 문화의 축은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중서부 지역으로 대이동하였다. 개성을 중심으로 고려만의 정체성을 가진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후백제와 신라의 문화를 계승하고 포용한 것이었고, 동아시아를 넘어 아라비아의 것까지 수용한 것이었다. 이들 다양한 문화를 종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개방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것이 고려의 경기문화였다. 현재 경기문화의 원류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크게 보면, 경기의 문화 중심은 천년 동안 불교에서 유학으로, 그리고 근대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그 중심에 수도와 경기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경 시내와 그 인근에 대규모의 사찰이 건립되고 대부분의 고려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지만, 그러면서도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지배층의 자제들은 유학을 공부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자 불교는 쇠퇴하고 유교문화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근대 이후 서양의 문화가 들어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중심으로 확산될 때 ‘경기’는 쉽게 그 문화를 접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다.


고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였지만, 지방에는 유력한 세력이 존재하는 지방 분권적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고, 지역에 따라 고유한 문화가 존재하였다. 고려는 지방사회가 가진 원심력을 극복하고 통합하려는 타협과 공존의 포용정책을 시행하였으며, 경기가 그 중간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점에서도 천년 경기문화의 특징이 형성될 수 있었다.


고려시기 무역항구인 벽란도가 예성강 하구에 있었으므로, 경기는 대외교류를 통한 문화의 흡수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고려는 개방적인 입장에서 중국 당나라의 귀족 문화와 송나라의 사대부 문화를 수용하여 융합하는 자세를 가졌다. 특히 송나라 사대부문화는 학술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재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학술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고려의 대외 무역과 상업 측면에서 국제항구 벽란도와 개성 상인’,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서 또 하나의 중심을 지향한 고려의 팔관회’, ‘유물로 본 고려 문화의 국제성과 개방성’, ‘한강-임진강-예성강 지역 문화권의 성격과 역할’ 과 같은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고려건국 이후 개성을 포함한 현재의 경기도는 천백년동안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천년을 맞아 남북관계협력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경기도형 남북 문화재 교류 정책방향 설정

개성은 한반도 중세 통일왕조인 고려가 건국된 다음 해인 919년부터 조선이 건국된 후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까지 수도로 기능하였다. 당시 개경·송도·송경 등으로 불렸던 개성은 고려의 모든 문물이 모여들었던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을 개성과 그 일원의 다양한 유적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개성지역의 문화유산은 북한 정권에서도 체계적으로 보존해 왔다. 특히 고조선-고구려-고려로 역사계승관계를 설정하여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북한에서 개성 일원에 위치하는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은 평양에 집중되어 있는 고조선과 고구려 문화유산과 함께 큰 관심 속에서 보존되고 있다.


2013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개성역사유적지구’는 12곳의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은 개성 성곽, 개성 남대문, 만월대, 개성 첨성대,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비, 왕건릉, 7릉군, 명릉군, 공민왕릉이며,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ICOMOS 평가보고서에는 이 유적들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북한의 제안과 ICOMOS 차원의 권고가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다.


특히 ‘개성역사유적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령의 정비와 문화유적의 정비와 보수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향후 남북 관계 개선되었을 때 개성 지역의 문화재에 관한 남북협력사업의 방향 설정에 참고할 점이 많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북한문화재와 관련된 교류와 사업 수요는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재 교류에 있어서는 먼저,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검토해야 할 것이다. 흔히 민족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삼지만, 요즈음 젊은 세대에게 통일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동질성이라는 매력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70년 가까이 분단되어 있다가 다시 통합될 때, 동질성도 갖고 있지만 이질성도 많아진 두 사회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 한 단계 수준이 높아진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바탕으로 문화재 교류의 목표를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화재 교류는 상호 이익의 원칙에 따라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교류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여러 사업 주체간의 영역과 역할을 적절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관련 부처들과 민간(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 지방자치단체를 아우르는 ‘남북민관협력위원회’(가칭) 같은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구에서 남북 문화재 교류의 방향을 설정하고, 교류 사업 대상의 선정과 예산 편성, 그리고 세부 시행계획 수립과 추진 성과의 평가 등을 논의하여, 교류와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근래 경기도가 추진한 개성 한옥 보존과 연구 같은 중장기 프로젝트는 남북교류에서 좋은 아이템으로 보인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기도 차원의 교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개성 고려궁궐 만월대’ 관련 특별전시회 개최와 남북역사연구 교류를 위해 ‘고려건국 천백 년’, ‘경기천년’ 기념 학술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현재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 중인 옛길 중 하나인 ‘의주길’의 일부 구간을 북한측과 협의하여 걷게 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해 봄직하다. 강원도에 속해 있지만,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태봉국의 궁궐은 궁예가 905년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겨 918년 폐위될 때까지 사용했던 곳으로,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이 궁궐터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기천년 관련하여 평화를 논할 수 있겠는지요?


1. DMZ 세계평화공원

2.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안 DMZ는 248km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각 2km 씩 한계선을 설정한 중간 지역으로, 60여 년 동안 유지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 공간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대결장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과 전쟁에 가담했던 미국, 중국 등이 상호신뢰를 회복하고 이곳을 교류·협력하는 평화의 상징 무대로 만들 수 있다면, 남과 북의 긴장 완화는 물론 전 세계의 평화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DMZ 세계평화공원’에서 평화는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의 평화도 포함하는 평화여야 하며, DMZ 안에서 남북한 당국과 세계 그리고 사람과 자연환경이 공생하는 평화가 정착시켜 진정한 평화 지대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DMZ가 생태와 평화의 공간으로 재탄생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환경자본인 DMZ 가치에 부합하는 일관된 생태적 기준이 관철되어야 한다. 생태보전은 평화의 중요한 부분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DMZ는 우리 세대에게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적 자산이지만, 미래세대에게는 평화를 상징하는 자유로운 유산이 되어야 한다. 새천년 경기도에 관한 구상은 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이 한반도 평화 정책, 통일 기반 구축, 동북아시아 평화 협력,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국가 성장과 통일준비·촉진의 디딤돌로 삼는 데서 출발하였으면 한다.


DMZ는 생태적 가치와 더불어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전쟁 유산으로 전 세계가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므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대단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기천년의 위상과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주신다면?


1. 4차 산업혁명은 전자, 정보, 통신기술의 발전

2. 경기천년 아카이브 구축, 빅데이터 분석, 맞춤형 문화예술 콘텐츠 제공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용어 사용 자체를 기피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정보의 발굴, 생산, 저장, 공유, 활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급속히 변화할 것은 예견할 수 있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확실하다.


현재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기천년 아카이브와 빅데이터 구축 사업은 4차 산업혁명에서 문화 분야가 나아갈 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무궁무진한 기록정보 데이터는 지식정보기술사회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기록정보는 크게 공공기록과 민간기록으로 구분할 수 있는 데, 공공기록의 관리와 활용을 위해서는 경기도청이 기록관을 건립하여 본격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고, 민간 기록은 재단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양하게 생산되는 SNS 등 소셜미디어 기록과 각종 행정정보 데이터의 관리방안도 고민해야 할 일이다.


다양한 기록정보를 문화 향유자의 수요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서비스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기대한다. 또한 다국어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고, 국내외 네트워킹을 강화하여 보다 가치 있는 정보를 정선하여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일을 경기문화재단에서 담당하면 좋을 것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사회에서 직면하게 될 문제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출현, 즉 인간 노동의 가치와 효용 문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로봇 혹은 AI의 관계, 도전받는 창의성과 직업 문제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제기될 때, 경기의 문화를 담당하는 경기문화재단은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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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정책』은 경기문화재단이 국내외 문화정책의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다양한 문화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2017년 여름부터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입니다. 본문은 『문화정책』 4권 특별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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