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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③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이승연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의 변화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Ⅳ. 맺음말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부터 많은 사원을 창건하거나 추인하면서 불교세력을 흡수ㆍ이용하여 사상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국가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고려태조는 훈요십조에서 밝혔듯이 불교를 통해 통치체제를 재정비하려 하였다. 919년(태조 2)에 개경에 도읍을 정한 후에 10寺를 위시하여 모두 26寺를 도성 내외에 창건하여 신라의 금성중심의 불교교단조직을 개경에 재편하였다. 이들 사원은 각 종파의 근거지이면서 각종 불교행사장소로 삼았으며, 일정한 범주와 격을 두어 통제하였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개경과 지방에 소재한 사원으로 대별될 수 있고, 중앙과 지방사원의 관계는 종파별, 지방행정구역과 그 체계를 통한 본말관계를 중심으로 사원의 구조적 측면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또한 고승들의 활동을 통해 王室과 宗團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韓基汶 1998: 48~49, 118).


『高麗圖經』 권17, 祠宇條에는 개경 일대 사원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나성 내에 위치한 사원으로는 광화문 동남쪽 길가에 위치한 興國寺, 王府의 동쪽 3~4리에 위치한 安和寺와 왕부의 남쪽 태안문 문 안 북쪽 100여 보에 위치한 廣通普濟寺이 있다. 이밖에 나성 밖에는 西郊亭에서 서쪽으로 3리 가량 떨어진 곳에 國淸寺가 있고, 장패문을 나가 2리 가량의 위치에 興王寺, 거기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서 洪圓寺, 숭인문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洪護寺, 동북쪽으로 안정문을 나가면 歸法寺와 靈通寺 있다. 이밖에 『新增東國輿地勝覽』 권5 開城府上 古蹟ㆍ驛院條와 開城府下 古跡條에 보면 도성 중앙에는 普濟寺, 정궁 동서편에는 補國寺, 보국사 옆에는 靑雲寺, 연경궁 동쪽에는 法王寺, 남부 환희방에는 崇敎寺, 삼현리에는 妙蓮寺, 부 동쪽 5리에는 開國寺, 부 남쪽 3리에는 地藏寺, 성 동쪽에는 天壽寺가 있었고, 탄현문 안에는 賢聖寺, 松岳山에는 王輪寺ㆍ廣明寺ㆍ龜山寺ㆍ金鐘寺ㆍ石房寺ㆍ乾聖寺ㆍ福靈寺, 龍首山에는 眞觀寺ㆍ松林寺, 안정문 밖에 있는 歸法寺 옆에는 龍興寺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고려시대 개경과 경기지역의 범위를 참고하여 사원의 종파와 기능을 살펴보고자 한다. 단, 시대에 따라 지명과 행정구역의 범위가 변화하였고, 사료만으로는 지역의 범위나 사원의 위치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려워 몇몇 주요 사원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음을 밝힌다. 또한 경기지역 사원은 개경의 배후지에 위치함으로써 갖는 특성이 있으므로 개경 사원도 일부 소개하였다.


우선 종파는 교종(화엄종ㆍ유가종[법상종ㆍ자은종]ㆍ천태종)과 선종(조계종)으로 나누어 정리하였고, 기능상으로는 願刹, 裨補寺社ㆍ資福寺, 院館寺院, 군사주둔ㆍ정치회합의 장소로 사용된 사원으로 구분하였다(표 1).



華嚴宗은 고려전기에 승통급 승려가 주지한 사원으로 개경에 靈通寺, 洪圓寺, 弘護寺, 興旺寺, 福興寺 등이 있고, 지방에는 開泰寺, 歸信寺가 있다. 수좌급이 주지한 개경사원은 歸法寺, 妙智寺, 興敎寺, 佛日寺 등이 있고, 지방에는 崇善寺, 浮石寺, 歸信寺, 國泰寺 등이 있다. 삼중대사급의 사원은 奉先寺, 松川寺, 歸信寺, 華嚴寺, 海印寺 등이다. 고려후기에는 화엄종 세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됨에 따라 고려전기의 개경중심의 체계를 유지하지 못하였으며, 지방사원 역시 타격이 컸다. 승통급의 사원으로 靈通寺가 그 사격을 유지하였고, 대사급의 開泰寺와 海印寺, 우왕대 삼중대사급의 盤龍寺, 중대사급의 金生寺의 사례가 보인다(韓基汶 1998: 169~170).


瑜伽宗 사원의 경우 승통급은 개경의 玄化寺, 수좌급은 개경의 弘圓寺와 崇敎寺, 修理寺 등이 있고, 원주의 法泉寺, 伊山의 伽倻寺가 있다. 삼중대사급은 海安寺, 金山寺, 天興寺, 毘鹿寺 등이 있다. 이 중에서 玄化寺는 유가종의 중심사원으로 현종 때 法鏡, 정종 때 鼎賢, 문종ㆍ선종 때 海麟, 예종 때 尙之, 인종 때 闡祥과 德謙, 명종 때 覺觀이 승통의 승계를 지닌 채 주지하였다. 고려후기에는 화엄종과 마찬가지로 종세가 떨어져 개경을 중심으로 한 사원의 체계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승통급의 사원에는 重興寺, 莊義寺, 桐華寺, 佛國寺, 金山寺, 法住寺, 瑜伽寺 등이 있다(韓基汶 1998: 170).


天台宗은 고려 중기에 종단으로 성립되었다. 대선사급의 사원으로는 國淸寺, 妙蓮寺, 塋原寺 등이 있고, 선사급 사원으로는 外帝釋院, 月峰寺, 郁錦寺 등이 있으며, 삼중대사급 사원으로는 華藏寺와 煥乘寺 등을 찾아볼 수 있다(韓基汶 1998: 172).


선종사원으로는 고려전기에 대선사급의 사원은 개경의 安和寺, 普濟寺, 廣明寺, 內帝釋院 등을 들 수 있고, 선사급은 報法寺, 佛恩寺, 外帝釋院, 內帝釋院, 普濟寺, 天和寺, 菩提淵寺 등이 있이 있다. 고려후기에는 대선사급의 사원으로 寶鏡寺, 斷俗寺, 萬淵寺, 禪月寺, 雲門寺, 修禪寺, 迦智寺, 太子山寺, 松廣寺, 檜巖寺, 塋原寺 등이 있으며, 선사급으로는 珍丘寺, 禪源寺, 定林寺 등이 있다. 고려전기와 비교해 보면 대선사급 사원이 지방에 나타나고 있어 고려후기 지방 불교시대를 반영하고 있다(韓基汶 1998: 171).


이상 정리한 것처럼 고려후기에는 무신의 난과 몽고의 침입으로 개경 사원이 타격을 받음에 따라 고려전기의 개경을 중심으로 한 사원 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지방사원이 상대적으로 중시되었다. 고려전기에는 승과에 합격한 후 낮은 승계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지방사원의 주지를 하다가 승계가 올라가면서 개경 사원의 주지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고려후기에는 고급승계를 가지고도 지방사원에 주지로 취임하는 예가 많아지는 것은 개경사원이 불교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며, 지방사원의 격이 상승되었음을 의미한다. 단, 不動寺院이나 개인 원당 등 법손관계로 주지하는 사원이나 혈족에 의한 친소관계에 의해 주지가 되는 사원은 승계를 기준으로 파견되는 사원과 차이가 있다(韓基汶 1998: 172).


이들 사원 가운데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으로는 화엄종에 속하는 三角山 靑潭寺, 유가종에 속하는 삼각산 三川寺와 莊義寺, 선종사원으로는 檜巖寺와 禪源寺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발굴 조사된 靑潭寺, 三川寺, 檜巖寺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三角山 靑潭寺址 (화엄종)


- 위치 :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429번지 일원


은평 뉴타운 3지구 A-2지점에서 발굴된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유적은 ‘三角山 靑潭寺 三宝草’명 암키와가 여러 점 출토됨에 따라 ‘華嚴十山’의 하나인 ‘靑潭寺’로 비정되었다. 조사지역은 유적의 위치나 배치, 평면구성, 규모, 지명 등을 고려해 볼 때 청담사의 중심사역으로 판단되었다. 유적의 운영시기가 사료와 일치하지 않는 점(유적의 중심시기인 고려시대 청담사에 대한 사료가 확인되지 않음)은 사원 중창에 따른 이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변 일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연후에라야 명확히 규명될 것으로 생각된다.1*


 

그림 2. 청담사지 배치도 및 ‘三角山 靑潭寺 三宝草’명 암키와 (한강문화재연구원 2010)


주교통로에 위치한 유구의 입지를 고려할 때 역원의 기능 및 명문와의 외부 유입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1045년에 혜소국사 정현(972- 1054)이 창건한 沙峴寺[弘濟院+棲仁館]2가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역원이 아닌 화엄종 사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청담사지는 고려시대 지방에서 경영된 화엄종 사원의 가람배치와 전각구성을 보여주는 드문 예로, 고대사원에서 출발하여 중세사원의 성장 및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② 三角山 三川寺 大智庵址 (법상종)


- 위치 :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산51


삼천사의 창건연대와 연혁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1021년(현종 12)에 창건된 현화사의 초대주지로 당시 三川寺主였던 法鏡이 임명되었다는 기록3*이 남아있어 11세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지국사비 귀부 옆에서 탑비전의 유구가 발견되었고, 명문을 가진 청동대발과 비편의 출토로 大智庵址로 밝혀졌다. 2005~2007년 발굴 조사된 삼천사 부도전지는 건축물 4동이 마당을 둘러싸고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마당에는 박설을 깔고 탑비와 부도의 지대석과 하대석으로 추정되는 장대석이 확인되었다(서울역사박물관 2011: 384~387). 조사 전 귀부와 이수가 노출되어 있었으며, 전면에는 석축이 있다. 중심건물인 영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좌우에는 건립시기가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 전각이 놓여있고, 전면 석축 위에는 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3칸씩 총7칸으로 구성된 행랑이 놓여 있다.


삼천사지에서 수습된 비편(A08)에는 법경의 수학과 관련하여 ‘용암사(龍嵒寺)’가 언급되고 있는데, 용암사는 태조의 선대가 順之에게 희사하였다는 바로 그 용암사로 추정된다. (남동신 2011: 34)


그림 3. 삼천사 대지암지


③ 天寶山 檜巖寺 (선종)


- 위치 : 양주시 회암동 산14


양주 회암사의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1174년(명종 4) 금나라의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고, 보우가 1313년(충선왕 5)에 회암사 광지선사에게 출가한 바 있어4* 12세기 이래로 존재하였던 사원임을 알 수 있다. 指空(?~1367)은 이곳을 돌아보고 자신이 수학하였던 인도의 아라난타와 유사하다고 점지하고, 후에 원나라 연도에 있을 때 5년간 곁에서 수학하고 보좌하던 懶翁(1320~1376)에게 중창을 부탁하였다. 나옹은 10년간 원에 머물렀고, 고려로 돌아와 단월과 조계종의 지원을 받아 회암사를 중창하여 1374~1376년(우왕 2)에 낙성하였다.



회암사지는 14세기에 이색이 찬한 「天寶山檜巖寺修造記」와 최근 발굴 조사된 유구를 통해 14~15세기 선종사원의 구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노출된 유구는 대부분 15세기 유구들이지만, 설법전지와 방장․영당지가 위치한 7ㆍ8단지의 건물 구성은 「천보산회암사수조기」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어(경기도박물관ㆍ기전문화재연구원 2004: 34, 378), 실제 유구의 전각명은 물론 평면구성ㆍ내부시설ㆍ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1. 이승연, 2017, 「청담사지 유구의 성격과 의의」, 『청담사지 보존ㆍ활용 기본계획 수립 학술연구보고서』, 덕성여자대학교 산학협

   력단, pp.212~213.

2. 金顯, 「七長寺慧炤國師碑」(1060년).

3. 周佇, 「玄化寺碑」(1021년).

4. 『新增東國輿地勝覽』 卷第11, 楊州牧 佛宇 檜巖寺.; 李穡, 「太古寺圓證國師塔碑」(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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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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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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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