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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木造三世佛坐像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14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은 본존상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아미타여래, 좌측에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여래상을 양측의 협시와 격을 달리하여 크게 조성하는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세 존상은 표현은 대동소이하나 『본사제반서화조작등제인방함寺諸般書畵造作等諸人芳啣』에 적힌 바와 같이 석가여래는 계초戒初, 아미타상은 봉현奉玹, 약사상은 상식尙植이 맡아 조성하여 얼굴, 신체 비례 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삼존상은 넓은 어깨에 다리 너비와 무릎 높이 등 신체비례는 안정감이 있다. 석가여래는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결가부좌의 자세에 왼손은 다리 위에 두고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우협시인 아미타상은 양손을 다리 위에 살짝 들어 올려놓았는데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인을 하고 있다. 좌협시인 약사여래는 손의 위치를 반대로 하여 오른손에 약함을 들었다. 육계는 높은 편이며, 머리와의 경계에 중간계주, 정상에는 정상계주를 각각 두었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석가여래상은 방형의 얼굴에 가늘고 긴 눈, 콧망울이 둥글고 긴 코를 가지고 있으며, 양 입술 끝이 올라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미타상은 턱을 수평으로 깎아 석가여래보다 네모지게 보이고, 약사상의 얼굴은 다른 두 존상에 비해 둥글고, 눈은 수평적이며, 삼각형의 코와 살포시 다문 입술로 인상이 차분하다.

석가여래상의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을 입고 있고, 양 협시는 오른쪽에 걸친 복견의 위에 대의를 돌려 입은 모습이다. 오른쪽 어깨의 대의는 가장 안쪽의 옷주름이 뾰족하게 강조되어 있으며, 배 앞의 승각기僧脚崎와 대의가 서로 대칭되게 교차되어 있다. 가슴아래 입은 승각기는 연잎형으로 접어 모양을 내었으며, 다리 앞의 옷주름은 두껍고 가운데 자락의 끝단은 S자형을 이룬다. 약사상의 배 앞 옷자락은 작고 여러 개의 옷주름이 잡혀 있으며, 가슴아래 입은 승각기는 가운데 넓은 주름을 중심으로 작은 주름을 잡아 포개 놓은 듯하다. 또한 다리 앞 옷주름도 크게 잡아 다른 석가여래상과 아미타상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석가여래상을 조성한 계초는 1754년(영조30) 곡성 오관음사 무진암 목조관음보살상 조성, 1757년(영조33)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존상을 개금했으며, 아미타상을 조성한 봉현은 1780년(정조4)에 장흥 보림사 천왕·금강·문수보살상은 중수, 1787년(정조11) 정읍 선운사 대웅전 장륙전·팔상전 불상을 개금하였다. 1790년(정조14)에 이르러 두 조각승이 용주사 대웅보전 불상을 함께 조성하였다.

이전에 공동으로 작업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상정尙淨·계심戒心 등과 함께 작업하여 서로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약사상을 조성한 상식尙植은 강원도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활동영역이 다르고 다른 조각승과의 관련 사례도 없어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 짐작된다. 이 들 세 조각승은 왕실후원 불사에 참여한 것을 보면, 18세기 후반에 상당히 명성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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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1790년)

    규모/ 3구

    / 석가불 106.5cm

    / 약사불(좌) 103.5cm

    / 아미타불(우) 103.3cm

    재질/ 목재

    주소/ 화성시 용주로 136

    지정일/ 2009.03.11

    소유자/ 용주사

    관리자/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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