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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행간에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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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행간에 눕다

수원, 문학인의 집


삶에는 쉼표가 없었다. 마음도 쉬어갈 줄을 몰랐다. 일상은 항상 달음박질쳤고 시를 읽어낼 가슴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 아주 오랜만에 시의 행간 사이에 고달팠던 정서를 뉘여 본다. 깎이고 닳아져버렸던 심상을 깨워내고 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낸다.


문학인에 의한 ‘문학으로 소통하는 공간’


수원시 장안동에 위치한 수원 문학인의 집을 방문했다. 이곳은 수원시가 도시문제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인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14년 개관했다. 수원 문학인의 집은 수원 문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자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져 있다. 1,2층은 사무공간과 전시실, 북카페로 3층은 문학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창작공간과 회의실로 쓰인다.



▲ 수원문학인의 집 외부, 내부


수원 문학인의 집을 운영하는 박병두 수원문인협회장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문인들과 시민들이 소통하고 정서를 나누며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시낭송, 시창작, 시조, 독서토론 등 매일 다양한 문학 아카데미가 마련돼 있다. 수원 문학인의 집 1층을 둘러보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창간호부터 전시된 문예지 ‘수원문학’이었다. 수원문학은 수원문인협회가 발간하는 문예지로 연2회 발행하며 수원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작품이 빼곡히 들어있다. 올해로 창립 51주년을 맞이했으니 지역문학을 활성화하려는 수원문인협회의 노력도 꽤나 역사가 깊다.



▲ 수원문인협회가 발간하는 문예지 수원문학


작가와 문학을 고민하다


작가와 소통하는 목요 문학광장이 매달 마지막 주에 개최된다.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있다. 지난 8월 31일에 정끝별 시인이 ‘모국어의 시적 가능성에 대해’ 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가졌다. 강연에 앞서 시인을 반기는 수원 문인들의 환영인사가 재치 있다. 정끝별 시인의 시 여러 편을 패러디하고 특별히 작가의 이름을 넣어 언어유희를 선사한다.


“(중략) 칼레의 바다에 밤이 되면 달이 될까, 별이 될까 고민하던 시인이/ 마

침내 정 그렇다면 끝별에서 오겠다고 말했다. 정 끝 별에서. (중략)”


시 <칼레의 바다>로 등단한 정끝별 시인에게 문인들만이 건넬 수 있는 살뜰한 환영식인 셈이다.



▲ 목요문학광장 / 패러디 시로 정끝별 시인을 맞이하는 윤형돈 시인


삼십 여 년째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시에 관한 고민의 깊이는 참 한량없어서, 그에게는 깊은 시름과 연구의 결과물일 작품이 청중에게는 새로운 흥미를 품게 한다. 시인은 “종결어미가 한정적이라 라임(rhyme)의 운용이 다양하지 않고, 교칙어인데다 받침은 물론 이중자음과 복모음들이 있어서 애너그램(anagrams) 자체가 불가능하다 배웠던 정설을 깨고 음소 차원의 가능성을 모색”해냈다. 시인이 들려주는 우리말의 가능성은 놀랍다. <과일의 일과-애너그램을 위한 변주>란 자신의 시에서 단어를 해체하고 다시 잇댄 애너그램을 선보인다. ‘지구’를 음소 단위로 쪼개 ‘주기’라는 단어로 변형하는 식이다.


❝…지구의 주기를 좇아/다른 채도로 초대된 자연의 잔여/혹은 서정의 정서...❞


시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이다. 시가 써지지 않아 초조하고 공허했다던 작가가 맞닥뜨린(‘깊이 고민해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새로운 발견의 순간을 활기 넘치게 복기한다. 시인의 시선에서 그 새로움이 청중에게도 옮아온다. 강연의 형식을 빌렸지만 더불어 모색하고 문학에 새로움을 덧대어나가는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했다.



▲ 정끝별 시인


이들이 시를 사랑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문학을 사랑해야 할 사유(事由)


문학 장르, 그 중에서도 ‘시’를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력은 생각보다 생동감 넘치고 반짝이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다지도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너무나 흐릿하고 어쩌면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이 질문에 선명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이는 ‘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 했다. 자신의 마음의 이야기를 드러내되 수필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은밀히 숨겨두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그 함축성에 매력이 있다 했다. 어떤 시인은 쉽게 쓰이지 않는 ‘시’가 웬수라고도 했다. 그래도 그 즐거운 감옥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했다. ‘시’가 시인의 세계관이기에 시인이 나이를 먹어가며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다르다고도 말했다. 그것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다 성장하여 세상을 알아버린 듯 했던 학창시절, 아무리 젠체해도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그 나이에 바라보던 세상은 지금과는 달랐다. 그 때 읽었던 시와 지금 읽어낼 수 있는 시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대양이 놓여 있었다. 더 진정한 어른이 되면 그 때 가슴으로 밀려오는 시어와 심상은 또 다른 것이리라.



▲ 목요문학광장


문학인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꽤 오래 잊고 살았던, 문학에의 열망이 가득했던 시절의 향수가 되살아났다. 감수성 예민한 그 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문학소녀는 일렁이는 햇무리 같아,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작가의 찬연한 문장이 무던히도 갖고 싶었다.

인생은 저마다의 소설책 한 권이라 하지 않던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누군가 그 소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문학’이란 우리 인생의 닮은꼴에 그토록 끌어당겨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문학의 토양에 포획되어야만 하는 사유가 아니었을지…….

문학인의 집의 대기가 다른 것인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내뿜는 공기가 밖의 것과는 다른 것인지 이날따라 감성의 파도를 몇 번이나 타고 넘는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유일한 작가라는 따뜻한 자부심에 사로잡히면서.



▲ 원문학인의 집


각자 세상의 자전주기가 너무나 빨라 어쩌면 때로 행간을 쉬어가기도 하고, 오래 음미해야만 하는 문학작품을 더러는 멀리하고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행간에 잠시 누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전보다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앞으로 가야할 길에 꼭 함께하는 것이 마땅한 것들이 다시 보였다. 거창한 논거일 필요는 없었다. 다시 보이고, 또 잊고 새로 찾게 되더라도 가끔은 마음을 뉘이고 더러는 토닥거림을 받고, 더러는 웃어줄 수 있는 문학이란 벗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은 아닐까? ‘문학’으로 소통하는 문학인의 집에서 다시금 얻은 인생 잠언이었다.




사진=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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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 241-2321

2017.09.25




경기 진윤지

[인문쟁이 3기]


진윤지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고, 커다란 통창 너머 햇살이 품어주는 동네 도서관을 사랑한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것에 깊은 열의을 갖고 있다. 세상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열정 가득한 휴머니스트를 꿈꾼다. 인문학을 벗삼아 인생에서 성찰의 거울을 게으름부리지 않고 말갛게 닦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대한 생각 한 조각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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