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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함께할 희망으로 나아가다

인문쟁이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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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함께할 희망으로 나아가다


수원 다시서기 노숙인 지원센터 인문학 과정



금, 인문학은 대체 무엇일까


인문학이 어느새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 학교와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기업 경영이나 실용 기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인문학이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인문학이 그저 하나의 ‘유행’처럼 여겨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인문학 공부는, 역사나 철학 지식을 늘어놓으며 소위 ‘교양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 도서는, 요즘 ‘대세’인 책을 읽는다는 ‘트렌디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인문학의 의미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고민해나가는 진지한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 본질은 자꾸만 뒤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떤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허세’로, 혹은 평가 대상으로서의 ‘스펙’으로까지도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우리 삶에서 인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본질이 흐려지는 응용으로 변질되기도 하며 범람하는 인문학 콘텐츠 속에서 고민하던 중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거창한 지식이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노숙인 쉼터에서였다.



▲ 다양한 인문학 서적들


노숙인 인문학 교육 -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성찰의 시도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어려운 이들에게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활도 힘든 상황에서 문학이며 철학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깊이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해답은 인문학에서 찾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노숙인들은 여러 사연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때는 이들에게도 가정과 일터에서의 평범한 생활이 있었다. 이 ‘평범함’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상황에서, 이들이 잃은 것은 물질적 풍요나 안락한 환경만이 아니다. 일상이었던 모든 관계들이 끊어지고, 추구해온 가치들을 놓치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용기도, 계속해나갈 힘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단순한 물질적 도움만으로 노숙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노숙인의 자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바꿔나갈 의지와, 자신을 믿고 노력을 계속해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이 의지와 용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성찰은 인문학을 통해서 가능하다.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니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Earl Shorris, 1936~2012)는, 빈곤에 대해 연구하던 중에,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적인 지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힘을 되찾아줄 도움이 필요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5년 뉴욕에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 <클레멘트 코스(The Clemente Course)>를 시작한다. 그의 저서 《희망의 인문학(원제 Riches for the Poor: The Clemente Course in the Humanities)》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는 클레멘트 코스는, 노숙인과 빈민, 마약중독자들이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다. 인문학 교육은 당장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지만,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와 계속해서 시도할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실제로 클레멘트 코스 이후 많은 이들이 취업과 진학 등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 얼 쇼리스 ⓒ 클레멘트 코스 웹사이트

https://www.clementecourse.org/


‘삶을 바꾸는 희망의 수업’이라 불리는 클레멘트 코스는 미국뿐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5년 광명시 평생학습원, 성프란시스대학을 시작으로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수원 다시서기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이하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는 2013년 인문학 교육이 시작된 이래 백여 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참여했고, 수료 이후 자활 성공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인문학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시서기 꿈터 임시보호소(이하 꿈터)를 찾아갔다. 수원역 근처의 작은 건물, 입구 주변에는 노숙인들의 크고 작은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물건들도 추위에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꿈터는 거리생활 중 위기상황에 처한 노숙인들의 임시보호를 위한 곳이다. 노숙인들은 이곳에서 잠자리와 휴식을 얻지만, 물리적인 형태의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고 다시 걸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루 쉴 곳만이 아니라, 용기를 되찾기 위한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이 용기를 함께 찾아가기 위해 시작되었다.


수원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인문학 교육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다시서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봄으로써, 어려움을 딛고 나아갈 용기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숙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연 단위로 진행되며, 올해는 3월에 새로운 과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 한신대학교 인문학 강의


교육과정은 강의뿐 아니라 집단상담, 캠프와 예술치료 등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경기도와 수원시가 지원하고, 경기대학교 및 한신대학교와의 협약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강의 주제는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의 주요 영역을 두루 아우른다. 일회성 특강 형식이 아니라 7개 과목이 총 56회에 걸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참여자들은 직접 대학 캠퍼스로 가서,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주의 깊게 경청하며 진지하게 참여한다.


4년차를 맞이한 2016년부터는 기존의 학문영역 중심 강의뿐 아니라 ‘영화로 보는 나의 삶’, ‘고사성어 인간학’ 등 인문학을 좀 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과정들이 운영되고 있다. 수업에 관련된 역사적·문화적 공간을 방문하는 현장 학습도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현장 학습은 단순히 수업 내용을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힘겨운 매일을 반복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나들이가 되기도 하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고 용기를 채워주는 격려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지식 자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 한신대학교 인문학 캠프


지난해 진행되었던 미술 관련 수업에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미술을 공부하는 지역사회의 청소년들이, 인문학 교육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전시한 것이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그려진 작품이 걸린 전시를 보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특히나 노숙인들에게는, 소외되고 외면 받는 거리의 삶 속에서 잊혔던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는 경험은,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나갈 용기와 힘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 예술치료 프로그램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문학 교육을 진행하면서 담당자가 느끼는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는 ‘동기부여’를 들었다.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매일의 삶 자체가 힘겨운 노숙인들이 인문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회의감과 싸워야 했을까. 이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며 용기를 북돋우는 것은 정말 힘겨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정 담당자는, 이렇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강조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 위한 성찰은 인문학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고, 잃었던 자존감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면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시도는 자립을 향한 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의지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꿈터를 나서다가, 차가운 바람 속에 쌓여있는 노숙인들의 물건들을 한참동안 다시 바라보았다. 매일이 겨울과도 같은 힘겨운 삶 속에서, 다시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시에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그래서 이 용기를 되찾기 위한 인문학과의 만남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렇기에 모든 어려움과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20여 년 전 얼 쇼리스가 시작했던 클레멘트 코스의 수료생들은, 디자이너와 교수, 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노숙인 교육도 더 많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고, 우리 사회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낼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 2016 인문학 과정 졸업식


지금,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노숙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노숙인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다만 좀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의 풍랑 속에서 누구나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미로와도 같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누구나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결국,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해나갈 용기와 의지는, 노숙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이 용기와 의지는,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갈 길을 찾는 것. 글을 시작하며 고민했던,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우리 삶에서 인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침체와 정치적 혼란 속에 잠겨있는 지금, 소위 ‘실용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인문학의 어떤 다양한 변주에서도 아닌, 인간을 위한 진지한 탐구라는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인문학은 ‘교양’이나 ‘트렌디함’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삶을 이해하며 공존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노력의 과정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부디 인문학을 통해 더 많은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나갈 희망을 찾고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수원 다시서기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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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링크

http://swhomeless.wixsite.com/swhomeless


2017.03.13



경기 엄소연

[인문쟁이 1,2기]


엄소연은 경기 고양시에 살고,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춤과 음악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있으며, 이를 무대에서 사람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더 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like_ball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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