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씨가이드 1] 수원_Celebrity's Space : 은밀한 매혹

화양루 가는길

정수자 | 시인


문을 여는 순간, 화양연화가 스쳤다. 화양루라는 환한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숨겨둔 보 물상자처럼 펼쳐지던 화양루 가는 길. 그때의 첫인상이 눈부셨던 까닭인지, 화양루는 이 상하게 화양연화를 데려온다.


문을 잠가두던 때(2000년경)라 잘 자란 잔디가 초록 꽃밭 같았다. 잔디 사이의 조붓한 흙길이 날아갈 듯 서 있는 화양루를 아스라이 비췄다. 발을 들이기 미안할 만큼 고요한 길 위로 풍기던 솔향도 그곳을 각별하게 만들었다. 휘늘어지는 소나무 가지들과 함께 화 양루 가는 길은 그렇게 더할 나위 없는 풍광으로 남았다.


화양루華陽褸는 서남각루西南角樓의 별칭인데 별칭이 더 널리 쓰인다. 아름다운 이름에 포 개지는 여운 덕일까. 그럼에도 화성의 다른 곳들에 비하면 발길이 적은 편이다. 팔달산 남 쪽 능선의 조금 높은 서남포사로 들어가야 만나기 때문인데, 그래서 더 그윽한 품격을 유 지할 수 있었다. 방화수류정(동북각루)과 더불어 군사시설답지 않게 조선의 급 높은 정자 풍치를 지니고 있다.


화양루의 매력은 뜻밖의 구조에서 더 빛난다. 성곽 밖으로 2백여 미터쯤 내어 쌓은데다 서남포사와 암문으로 감춰놓은 것. 성곽 한쪽을 비죽이 내뻗는 발상도 독특한 멋이지만 그런 위치로 화성의 여느 시설물과 다른 매혹을 갖는다. 민가를 해치지 않으려다 버들잎 모양을 띤 성곽의 자연스러움도 조선 곡선미의 백미지만, 그 속에 잘 숨겨두어 또 다른 일 품이 된 것이 화양루라 하겠다. 밖에 은밀히 앉혀 놓은 루에서 멀리 널리 보는 눈맛이 당 시엔 더 좋았을 게다. 지금은 소나무가 울창해져 확 트인 맛을 누리기는 좀 어렵다.



화양루의 ‘華’는 화성을, ‘陽’은 남쪽을 뜻한다. 하지만 왠지 낯이 익은 느낌이다. 화양연 화는 ‘花樣年華’라 ‘華陽褸’와 같은 뜻이 아님에도 ‘꽃 같은 아름다움’이란 의미에서 묘하 게 겹쳐지곤 했듯이. 화양루에는 상량문도 있는데 축성의 의미를 크게 담아 우리의 호젓 한 감상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정조도 화양루에 올라 현륭원(융릉)이 있는 남쪽을 하염 없이 봤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며 눈썹을 깊이 적셨다던가.


수원에는 화성을 품어 유명한 명소가 많다. 팔경八景의 봄편과 가을편을 정해 즐기는 한 편 시와 그림으로 누빈 감탄도 꽤 있다. 특히 화성 제1경으로 꼽히는 방화수류정 주변에 는 연중 사람이 넘친다. 찾기 쉬운데다 화홍문과 용연 등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거느리고 있으니 당연하겠다. 그에 반해 화양루 가는 길은 높고 멀고 으늑해서 마음을 먹어야 찾아 들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한동안 암문을 잠가놔서 닫힌 길이었다(2013년부터 상시 개방). 화양루 달밤을 즐긴 월담의 무용담이 그저 부러웠을 뿐.


화양루 길은 영화 <왕의 남자>(2005년)에도 출연했다. 죽은 광대를 버리러 가는 장면의 미장센으로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아니 그래서 천시 당한 광대의 죽음을 더 역설적으로 각인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화양루 가는 길임을 알아본 사람끼리는 그 장면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나직한 탄성을 나누었다. 그때 새삼 다시 본 서남포사의 고졸한 격조에 수원 의 어깨들이 조금 더 으쓱했다. 화양루에서 나오다 한참씩 매료됐는데,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연인이 숨어들기 좋은 곳. 팔을 끼고 은밀히 소색이고 싶어지는 길이다. 그렇게 은미한 매혹에 이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