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인류는 언제부터 서로를 도왔을까

과학 분야 『인류의 기원』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5





인류는 언제부터 서로를 도왔을까


우아영 - 동아사이언스 기자




20세기 초 프랑스의 라샤펠오생에서 이상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발견됐다. 뼈가 심하게 구부러져 있었는데, 처음엔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인 줄 알았던 이 모습이 이후 연구 결과 관절염을 앓은 흔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인은 노령. 입도 쑥 들어가 있었는데 이 역시 노환으로 이가 모두 빠진 흔적이었다. 특히 어금니 부분이 흥미로웠다. 죽은 뒤 이가 빠지면 그 자리가 그대로 구멍으로 남는데, 이 화석은 빠진 자리가 메워지고 잇몸뼈가 닳아 반들반들했다. 이가 빠진 다음에도 계속 살았다는 뜻이다.


이도 빠지고 관절염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라샤펠의 늙은이’가 어떻게 빙하기의 눈 덮인 골짜기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인류학자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화석의 주인공이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안데르탈인이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180만 년 전 초기 인류 역시 다치고 늙고 병든 사람을 도우며 살았다는 사실이 화석 연구 결과 드러났다.


이 이야기는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는 인류의 특이한 행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古)인류학이 내놓은 답이다. 사실 ‘인류의 진화’라고 하면 유일하게 보통 구부정한 모습에서 똑바로 직립 보행 하는 인류까지 순차적으로 그린 그림을 대표적으로 떠올린다. 한마디로 우리는 고인류학에 대해 무지하다. 화석으로 기껏 생김새나 걷는 모습의 변화만 알 수 있을 거라는 선입견마저 품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석 연구를 통해 ‘협력의 기원’을 알아낸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인 1호 고인류학 박사’로 직접 발굴 현장을 누비며 인류의 화석을 연구하는 저자가 과학 전문 기자와 함께 최신 고인류학이 이뤄낸 성과 22가지를 뽑아 친절하게 풀어 쓴 교양서다. 과학 전문지 〈과학동아〉에 인기리에 연재된 ‘인류의 탄생’(2012년 2월~2013년 12월)을 다듬어 엮었다.


처음 연재를 구상할 때부터 연대기식 구성을 피했다. 대신 일상적인 소재를 주제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방식을 택했다. 협력의 기원을 알아냈듯, 원시인은 식인종이었는지(1장), 인류는 언제부터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됐는지(6장), 농사가 과연 인류를 부자로 만들었는지(9장), 70억 인류는 정말 한 가족인지(21장) 등 도무지 화석 연구로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질문들에 대해 고인류 학계가 고심한 여정을 담았다.


제각각인 것 같지만, 스물두 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가 있다. 바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이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은 곧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는 특징을 찾는 과정이었다. 고인류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흔히 직립보행과 큰 두뇌, 도구 사용 능력 정도는 떠올릴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보다 참신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컨대 독특한 출산 과정이 있다(4장). 산도를 갓 빠져나온 영장류 새끼의 얼굴은 엄마의 몸 앞쪽(얼굴)을 향하고 있어서 어미가 새끼를 직접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출산은 말 그대로 ‘180도’ 다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는 커진 반면, 직립보행하기 위해 골반은 넓어지지 않아 산도가 좁다. 태아는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몸을 비튼다. 이렇게 나온 아기의 얼굴은 엄마의 뒤쪽을 향해 있다. 이 경우, 엄마는 아기를 손으로 꺼낼 수 없다. 잘못하면 아기의 목이 꺾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출산 현장엔 아기를 받아줄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한다. ‘사회적 출산’인 셈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에 속한다”는 점을 인류의 특징 리스트에 넣는다면, 약 200만 년 전 큰 머리를 가진 신생아를 낳기 시작한 호모 에렉투스를 진정한 최초의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고인류학이 낯선 사람에게도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에 쉽게 동참하도록 만든다. 먼저 독특한 구성 방식 덕분에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독자를 소위 “들었다 놨다” 한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인류학자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이 맞는지를 화석 증거를 통해 검증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설들이 폐기되기 일쑤다. 일단 펼치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내달을 수 있게 하는 비결이다.


저자가 한국인인 국내 과학 서적이라는 사실도 큰 장점이다. 기초과학 분야는 보통 번역서가 주를 이룬다. 독자는 익숙지 않은 소재와 비유를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 마련이다. 백인 남성 위주로 연구가 이뤄져 온 고인류학 분야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들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 책은 고인류학 본산인 미국에 수출됐는데, 저자가 영문판을 직접 쓰면서 이런 소재들을 어떻게 번역할지 역으로 고심했다.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출간 4년째, 10쇄를 찍으면서 표지와 본문 속 그림 일부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다. “인간의 진화를 표현한 그림에는 남자만 주로 등장하고 여성은 배제돼 있다”는 저자의 비판을 출판사가 받아들이면서 일러스트를 수정한 것. 진화는 남자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막상 가슴 달린 여성 선사인이 사냥을 하는 그림을 보면 몹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드는 감정은 역설적이게도 ‘겸손함’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탄생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진화했다. 생물의 일종으로서 진화의 거대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만든 문명으로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특이한 존재이기도 하다. 예컨대 농경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 곡물을 주로 먹게 되면서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부족한 비타민D를 합성하기 위해 피부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이제 자외선을 통과시켜 비타민D를 만들 수 있는 흰 피부가 검은 피부보다 유리해졌고, 이 사람들의 피부는 하얘졌다. 문화가 진화를 대체한 게 아니라, 반대로 진화를 촉진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당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무서운 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이제 우리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 있는 사라져 가는 세상에 대해 좀 더 큰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고인류학이 준 선물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부키, 2015


『뼈가 들려준 이야기』

진주현 지음, 푸른숲, 2015


『스킨: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니나 자블론스키 지음, 진선미 옮김, 양문, 2012






우아영 - 동아사이언스 기자


뉴턴 역학에 빠져 기계 공학을, 그중에서도 연료 전지를 공부했다. 동아사이언스에서 5년간 과학 전문 월간지 〈과학동아〉를 만들었다. 발화 원인을 과학으로 밝히는 소방관들의 노고를 담은 기사로 2017년 1월 한국 과학 기자 협회 ‘이달의 과학기자상’을 받았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