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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삼국유사는 뻥이 아니다

문학-고전-산문 분야 『삼국유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8






삼국유사는 뻥이 아니다


김경집 - 인문학자



흔히 『삼국유사』 하면 정사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온갖 야사들을 모은 이야기책 혹은 수많은 황당한 이야기들의 묶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야사라고 가볍게 여기거나 신화나 설화가 많아 도저히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정작 왜 이 책에는 과학적 증거에 토대한 역사적 사실의 서술이 아니라 ‘뻥’인 듯 보일 수밖에 없는 신화나 설화를 담았는지 궁금하게 여기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신화나 설화는 정식으로 기록된 사실과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 보자면 단순히 떠도는 민담의 수집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전승하기에, 특히 구전하기에 좋은 방식이다. 특히 글을 모르는 민중들에게 구전은 무엇보다 일종의 메타스토리로서의 방식이 탁월하다. 『삼국유사』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딱딱한 정사와는 달리 마치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는 까닭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때로는 도대체 이성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이야기들도 상당히 많아서 사실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추기도 쉽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전승의 방식을 추적해보면 뜻밖에 많은 속살을 찾아낼 수 있다.


경문왕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 사례다.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그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여이설화(驢耳說話)’에 따르면 신라 시대 희강왕의 손자였지만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던 화랑 응렴(膺廉)은 헌안왕의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함으로써 사위가 되었고,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여 경문왕이 되었다.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갑자기 그의 귀가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복두장이(예전에 왕이나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던 복두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하던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왕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귀를 덮는 모자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경문왕이 실제로 당나귀 귀를 가졌다기보다는 왕위 계승의 정통 적자가 아니라는 열등감, 즉 정통성에 대한 불안을 상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연히 왕은 자신의 귀에 대해 발설하면 복두장이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는 평생 그 사실을 감히 발설하지 못하다가 죽을 때에 이르러 도림사라는 절의 대밭 속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향하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라고 소리쳤다. 그 뒤부터는 바람이 불면 대밭으로부터 ‘임금님 귀는 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 왕은 이것을 싫어하여 대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으나 그 소리는 여전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억눌러도 진실은 끝내 밝혀지는 법이다. 그런데도 듣기 고깝거나 불리하다고 여기는 말을 막으려고 하는 이들이 여전히 설친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특히 그게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의 문제와 관련되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추거나 왜곡하고 싶어진다. 그가 쥔 막강한 권력은 그런 수단을 제공해줄 수 있고, 그의 권력의 혜택을 받으면서 정통성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한 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똘똘 뭉쳐 방어한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설화 성이 매우 풍부하여 널리 구전되고 있고, 또한 그 분포 지역이 국내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이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거리가 되어 왔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경문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의 정통성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실정과 비리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신라 사람들이 이러한 경문왕의 허위의식을 당나귀 귀 설화로 표현한 것이다. 경문왕은 진솔하게 소통하고 화합하는 정신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구조를 잘 읽어보면 겉보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 맥락을 짚어내며 읽어가는 것이다. 그걸 찾지 못하고 그저 텍스트의 무게감에만 눌려서 혹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만 여겨서 대수롭지 않게 읽으면 그게 보이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크게 보면 ‘신-영웅-인간’이 주인공으로 진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 주인공의 위상은 다르지만 추구하거나 실현하는 가치나 담고 있는 의미는 보편적이다. 만약 경문왕이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인정하고 모자를 벗어 보였다면 그걸로 흉보거나 뒷말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귀가 상징하는 것이 왕의 허물, 즉 정통성의 결여와 탐욕, 그리고 비도덕성이지만, 비극의 중심에는 그걸 자꾸만 감추려 했다는 사실에 있다. 허물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려 했다면 그는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삼국유사』에서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임금으로 묘사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허물과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것만큼 용기 있는 일도 없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난 것도 아니고 모자란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일단 자신의 초라함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 보면 그것을 인정하고 고침으로써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청소년기는 이제 겨우 삶의 본격적인 시작의 시기일 뿐이다. 결코 완성된 시기가 아니다. 부족한 점이 많고 허물이 크다. 그걸 깨닫고 고치며 개선하는 사람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삼국유사』는 풍부한 이야기의 보물 창고이다. 이 책에는 많은 민속, 옛 어휘, 성씨, 지명의 기원, 사상과 신앙, 그리고 수많은 일화 등을 금석과 고적에서 찾아내 집대성해 놓았기 때문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보물처럼 담겨 있다. 거기에는 우리 고대의 정치, 사회, 문화생활의 원형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래서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시대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만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진수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극적인 이야기들이 『삼국유사』에는 보석처럼 박혀 있다. 신화나 설화는 그 자체로 이미 뛰어난 은유와 상징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풀어내는 해석과 재구성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변형 발전시키면 훨씬 더 큰 매력을 생산할 수 있다. 원재료가 풍부하고 신선하면 몇 가지 레시피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을 마련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바로 그런 재료이며 동시에 기본적 레시피이다.


이 책의 내용을 꼼꼼히 읽고 잘 다듬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풀어내거나 각색하기만 해도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 책을 해괴하고 비논리적인 전설이나 설화 모음집일 뿐이라거나 역사적 가치가 없는 야사라고만 여긴다면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신화란 무엇인가』

로버트 시걸 지음, 이용주 옮김, 아카넷, 2017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민음사, 2018


『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한겨레출판, 2003






김경집 - 인문학자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다. 25년 배우고 25년 대학에서 가르치고 다음 25년은 마음껏 읽고 쓰며 문화운동을 하면서 살고자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문화공동체운동의 소맷자락 귀퉁이를 짜고 있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엄마인문학』은 ‘한 도시 한 책’에 순천, 포항, 정읍에서 동시에 선정되었다.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은 ‘2018년 전라남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생각을 걷다』『생각의 융합』 『인문학은 밥이다』 등 30여 권의 책을 썼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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