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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갇힌 땅에서 솟아난 사랑

문학-고전-산문 분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창비, 2009






갇힌 땅에서 솟아난 사랑


김경집 - 인문학자



“우리는 폐족임을 명심하라!” 이 말이 한때 회자되었다. 이 말은 바로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별하게 당부했던 그 대목의 문장을 옮겨 쓴 것이었다. 두 아들의 편지에 답하면서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는 당부로 혹여 흐트러지거나 자포자기하거나 또는 권세의 눈치에 민감할까 염려되어 오금을 박았던 말이었다.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는 늘 아들들이 겪을 아픔에 마음이 쓰였다. “폐족이면서 글도 못 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 집안의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은 질책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아들을 보살필 수 없는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담긴 애정의 말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조선 후기의 뛰어난 정치인이자 최고의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의 사적인 풍모를 엿보기에 모자람이 없는 책이다. 『목민심서』나 『경세유표』 등의 탁월한 저서에서 날카롭고 깊은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반면 이 책에는 다산의 또 다른 측면, 특히 가족에 대한 자애롭고 섬세한 사랑이 담뿍 담겼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거인이었다. 개혁가였으며 실학의 실천가였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안타까운 유배 생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등은 지금 읽어도 그 생동감이나 현실감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공감과 정의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글에는 인품과 철학사상 그리고 문학사상이 담뿍 담겼다. 그러나 그의 속살은 편지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인간 다산의 면모와 세상과 학문에 대한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데에 그의 편지만큼 잘 나타난 것도 드물다.


그는 극한적이며 막막한 유배 생활에서도 좌절의 분위기를 나타내지 않고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등에 대해 늘 성찰했다. 또한 어떤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거듭했다. 그런 결과물들이 그의 뛰어난 저작들로 나타났다. 그러나 진솔한 다산의 모습은 바로 이 서간문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둘째 형 약전과 오간 편지들을 읽노라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일찍이 천재 형제들이라 칭송되었지만 정조가 승하한 뒤 한꺼번에 몰락해가는 과정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셋째 형 약종은 참수되고 둘째 형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며 약용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한순간에 몰락한 가문과 형제들이 겪었을 고통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냥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우리 자신이 다산처럼 먼 곳에 떨어져서 만날 수도 없는 자식들과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상상하며 읽어보면 그 애틋함과 허전함, 그리고 그것을 넘는 살가운 가르침이 머리와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참 많은 편지를 썼다. 챙기고 보살피며 가르쳐야 할 아들들을 두고 멀리 유배지에 격리된 아버지의 삶도 고달프지만 부모의 정은 더 살갑고 깊어진 날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귀양살이 고생이 아무리 커도 아들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고 당부한다. 혹여 자신의 부재중에 자식들이 엇나가거나 과도하게 주눅 들지 않기를 신신당부하는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면서도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요점을 추려낼 때도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 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라는 충고는 지금의 후학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학문을 하면서 권위자에 의존하여 정작 자신의 주견은 마련하지 못하는 학자들이 곡학아세를 일삼는 것을 볼 때마다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이보다 더 섬세하면서도 단호한 편지를 주고받는 부자가 부럽기도 하다. 아들에 대한 당부와 책망조차 깊은 사랑과 안쓰러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자식들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게 자신을 경계하고 학문에 정진했을 것이다. 이런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부자 관계가 지금 얼마나 있을까. 편지란 그때그때 필요한 말이 중심이겠지만 곳곳에 마음과 정신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언제든 다시 꺼내 읽으며 그것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학동들을 거둬 가르쳤다. 다산의 외가가 해남 윤씨 가문이었고 윤두수가 외증조부 즉 어머니의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강진의 세력가였던 윤씨 가문의 덕을 본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가 제자를 키운 건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학을 제대로 가르쳐야 나라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에 기인했다. 길고 긴 유배 생활을 마감하고 마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 제자들은 스승의 해배에 기쁘면서도 작별이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틈틈이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스승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어떻게 학문할 것인지 등에 대해 세심하게 가르치고 흐트러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으로 새겨둘 두 글자가 있으니, 첫째는 근(勤) 자요, 둘째는 검(儉) 자이다. 하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복을 주지 않으며 하늘은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도움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유익한 일은 일각도 멈추지 말고 무익한 꾸밈은 일호(一毫)도 도모하지 말라.”


과거 공부에 매진하되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달리지 말 것을 당부하는 스승 다산은 제자들의 현실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오히려 배우고 실천하는 실학의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품고 격려한다. 성호 이익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 등은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남 이야기하듯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건 다산의 면목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발견하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실천의 덕목을 꼼꼼하게 챙긴다. 다음의 글은 그런 면모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목화는 많이 갈 필요가 없이 오직 하루갈이 정도에서 그치고 별도로 삼과 모시를 심어, 아내에게 봄과 여름에는 명주를 짜고 가을과 겨울에는 베를 짜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하면 명주와 베가 궤에 가득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일하는 재미를 갖게 되어 게으른 사람도 저절로 부지런해질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제자들에게 대접이나 받으려는 스승이 넘치고 심지어 유능한 제자들 등쳐 먹는 교수들이 흔하다. 물론 제자를 살갑게 챙기고 격려하는 스승도 없지 않지만, 갈수록 양아치 같은 자들이 교단을 쥐고 흔드는 꼴을 볼 때마다 다산의 학문뿐 아니라 제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상기하게 된다.


다산의 편지는 읽을 때마다 감동적이다. 그가 관계를 맺은 모든 이들에게 도타운 마음과 깊은 통찰을 나눈 편지는 그 사람의 면목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의 나의 삶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투 더 레터』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아날로그(글담), 2018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지음, 시인생각, 2013


『동주에게서 온 편지』

윤동주 지음, 더스토리, 2018




김경집 - 인문학자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다. 25년 배우고 25년 대학에서 가르치고 다음 25년은 마음껏 읽고 쓰며 문화운동을 하면서 살고자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문화공동체운동의 소맷자락 귀퉁이를 짜고 있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엄마인문학』은 ‘한 도시 한 책’에 순천, 포항, 정읍에서 동시에 선정되었다.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은 ‘2018년 전라남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생각을 걷다』『생각의 융합』 『인문학은 밥이다』 등 30여 권의 책을 썼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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