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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놀라운 기억력이 돋보이는 궁중 문학의 정수

문학-고전-산문 분야 『한중록』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중록』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문학동네, 2010







놀라운 기억력이 돋보이는 궁중 문학의 정수


신병주 - 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남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쓴 비망록 형식의 글로, 궁중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혜경궁은 1735년(영조 11) 풍산 홍씨 홍봉한의 둘째 딸로 태어나 1815년(순조 15)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열 살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으나, 스물여덟 살에 남편을 잃었다. 친정 가문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큰 탄압을 받았다. 자신의 한 많은 인생 역정을 담은 『한중록』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을까? 혜경궁은 81세까지 장수하면서 회고록 형식으로 어린 시절 궁궐에 들어와 겪은 일부터 시작하여, 영조, 정조 시대 격동의 정치 현장에 서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제까지 『한중록』은 고전의 대표적 작품으로 인식되면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비롯하여, 각종 교양서적에서 소개됐는데, 한글 필사본인 원문을 알기 쉽게 번역하고 주석한 책들이 나왔다. 국문학 1세대 학자인 이병기 선생이 1947년 처음 주석본을 출간한 이래, 1961년 김동욱 선생이 모범적인 교감 주석본을 간행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한중록』이 나왔다.


그중 2010년 정병설 교수가 옮긴 『한중록』은 미국 버클리 대학 소장 『한중록』 등 이전까지 다루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다룬 『한중록』의 이본(異本)들을 포괄하여, 더욱 자세한 『한중록』 주석본이 담겨 출간됐다. 정병설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은 이른바 완전 주석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토대로 현대어로 쉽게 풀이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한중록』에서는 ‘한중록 깊이 읽기’를 곳곳에 배치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본 서평에서 다루는 역주본 『한중록』은 기존의 『한중록』에 달린 세 편의 글을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방향으로 배열했다. 1부는 남편 사도세자 이야기로 사도세자 이야기, 2부는 자신의 이야기, 3부는 친정 이야기로 구성했다. 혜경궁은 영조와 사도세자 비극의 원인을 크게 영조와 세자의 불화에서 찾았다. 세자는 영조의 기대와 달리 무예나 잡기(雜技)에만 관심을 쏟았고, 급기야 기행을 일삼았다.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1762년 세자가 뒤주에 유폐되어 죽임을 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혜경궁은 영조가 세자를 처분한 것을 부득이한 일이라 강조하며, 세간에 유포되었던 친정아버지 홍봉한의 개입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정조에게도 “나는 네 아버님이 이 지경이 되고, 너는 아들로 이 지경을 만났으니, 다만 운명을 서러워할 뿐이지,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리오. 우리 모자가 목숨을 보전함도 성은이며, 우러러 의지하여 명을 받듦도 성상(聖上)이니, 너에게 바라는 것은 성상의 뜻을 받들어 힘쓰고 가다듬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그래야 성은도 갚고 네 아버님께도 효자가 되리니, 이밖에 더 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조에게 영조에 대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받고 있는 내용도 나타난다.


주로 혜경궁 자신의 일생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 2부의 내용은 혜경궁이 궁궐에 들어가 왕실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개인사를 다루고 있다. ‘한가롭게 쓴 기록’이란 뜻의 ‘한중록(閑中錄)’이란 제목과도 가장 어울리는 부분이다. 혜경궁이 9세 때인 1743년 세자빈으로 간택을 받을 때의 정황, 간택 시 집안의 분위기, 왕실의 혼례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이 부분에는 “계해년 9월 28일 첫 번째 간택 날, 왕께서는 못 생기고 재주가 남보다 못한 나를 과하게 칭찬하시며 귀여워하셨다. 정성왕후께서는 나를 가지런히 보셨고, 선희궁께서는 간택을 하는 자리에는 없으셨지만, 먼저 나를 불러 보시고 화평한 기운으로 사랑하셨다. 내 곁에 궁인들이 다투어 앉아 나는 심히 괴로웠다. 선희궁과 화평옹주는 물건을 내려주셨다”는 기록에서 보듯 혜경궁의 놀라운 기억력이 돋보인다. “신미년(1751) 10월에 경모궁(사도세자)께서 용이 침실에 들어와 여의주를 희롱하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깬 후 이상한 징조라고 말씀하셨다. 경모궁께서는 그 밤에 즉시 흰 비단 한 폭에 꿈에 보았던 용을 그려 벽상에 붙였다”는 기록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조를 낳을 때 용꿈을 꾸었음이 나타난다.


3부는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 때인 1802년(순조 2) 7월에 쓴 기록으로, 친정을 위한 변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목도 아예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으로, ‘읍혈록(泣血錄)’으로 하고 있다. “여염집 부녀라 해도 칠십 노인이 외동아들을 잃었으면 동네 사람이 서로 조문하고 위로하며 슬피 여길 일인데 정조를 여읜 지 몇 달 되지 않아 내 아버지께 혹독한 욕이 끝이 없느니라. 이에 내가 차라리 의를 지켜 죽자 하고 칠순 늙은 몸이 내의원의 문안을 거부하며 죽으려 누웠더니, 이 일이 셋째 동생이 충동한 것이라 하며 동생에게 죄를 씌우느라. 이후 일고여덟 달에 걸쳐 당치도 않는 헛말을 꾸며 동생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 가시 울타리에 쳐 가두고 죽이기에 이르니, 이는 결국 내 일로 인하여 동생에게 죄를 옮긴 것이니, 실은 동생을 죽인 게 아니라 나를 죽인 것이다”라고 격하게 쓴 부분에는 순조 대에 친정 가문에게 가해진 정치적 압박에 대한 분노가 나타난다.


『한중록』은 세자빈이자 왕의 생모라는 최고 신분의 여성이 집필한 실명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실록과 같은 정사(正史)의 기록에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정치 관련 기록 이외에 궁중의 생활상이나 인간의 심리 상태까지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나이 60세가 넘은 후부터 쓴 저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과 세밀한 관찰력은 작품의 가치를 한껏 높이고 있다. 또한 궁중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 궁중용어 등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궁중 생활사 복원에도 필수적인 자료가 된다.


궁중 문화의 보고(寶庫)와도 같은 저술 『한중록』은 문장이 소설만큼 사실적이면서도 박진감이 넘친다. 등장인물들 또한 파란만장한 정치사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라 조선 후기 정치사의 구체적인 흐름도 알 수 있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궁중 문화의 다양한 모습과 영조, 사도세자, 혜경궁, 정조 등 18세기 정치사를 이끌어간 주역들의 섬세한 모습까지 찾아보기 바란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혜경궁 홍씨와 왕실 사람들』

정은임 지음, 채륜, 2010


『조선의 역사를 지켜 온 왕실 여성』

신명호 외 지음,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글항아리, 2014


『조선의 왕후』

변원림 지음, 일지사, 2006 





신병주 - 건국대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재 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KBS 1 TV에서 「역사저널 그날」과 KBS 1 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KBS 1 라디오 「신병주 교수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산책』, 『책으로 보는 조선의 역사』『왕으로 산다는 것』『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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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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