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그들에게는 마지막 식사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문학-현대-산문 분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 2000







그들에게는 마지막 식사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김유진 -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난장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무릎을 탁 치거나 눈을 질끈 감았을 이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거나 들어봤을 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두다. 1978년 출간된 조세희 작가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표제작인 이 작품은 당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샅샅이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개발 지구에서 밀려난 철거민의 아픔, 도시 노동자와 빈민의 비참한 생활, 재벌 등 자본가의 폭력적 행태…. 이 모든 게 난장이 가족의 삶의 이야기로 사실적이고도 우화적으로 그려진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인 난장이로 묘사된다. 아버지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난장이가 간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단지 신체적 특성만을 들어 아버지가 난장이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는 가지지 못한 자, 배우지 못한 자 모두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최하층의 천인’ 배경을 지닌 어머니의 가족도 대대로 험한 삶을 살았다. “마음 편할 날 없고,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은 같았다. 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


소설은 ‘난장이 가족’, 즉 아버지의 세 자녀 영수, 영호, 영희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대물림한 가난으로 이들은 지옥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간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주머니 달린 옷’을 입지 못했던 세 자녀는 일찌감치 학교를 떠나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은 철거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고깃국 끓는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며 식사를 하고 있는 사이, 철거반원들이 찾아와 집을 부순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식사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작가는 가족의 식사와 철거반의 행위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영희가 이 시간에 어디서 어떤 식탁을 대하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밥상에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앉았다. (중략) 대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이 집을 싸고돌았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 담을 쳐부수었다. 먼저 구멍이 뚫리더니 담은 내려앉았다.”


접속어 하나 없이 서술된 이 장면은 소설 전체에 흐르는 정서를 만들어낸다. 삶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 앞에서 가족은 너무도 무력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의연하다. 끝까지 식사를 하고야 마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담을, 지붕을, 벽을 내리칠 때 그들의 심장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었을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라고 분노를 쏟아냈던 자녀들은 이 때 가만히 주먹을 불끈 쥐지 않았을까.


소설은 거의 대부분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접속어만큼이나 수식어 사용을 멀리하고, 주관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최대한 배제하며 글을 썼다. ‘스타가토 문체’라고까지 명명된 조세희표 문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짧고 간결한 문장들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리듬은 이 소설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르포 문학’을 넘어서, 문학적으로도 완성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조세희 작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특징은 뚜렷한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철거 계고장을 받아든 아버지는 “그들 옆엔 법이 있다”고 말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면, 같은 법에 적용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지만, 법의 보호는 받지 못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 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는 서술 또한 지나친 단순화법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출간된 지 2018년으로 꼭 40년이 됐다. 이 책은 그러나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되묻게 한다. 난장이 가족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낙원구 행복동에서 속절없이 밀려났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재개발은 자본은 배불리고 원주민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연작소설의 다른 작품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하층민의 열악한 삶(「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산업도시와 환경오염(「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은 ‘지금 여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칼날」)라는 중산층 신애가 던지는 말조차 낯설게 들리는 각박한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작가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10년 동안 아무런 작품도 발표하지 않고 회사에 다녔다. 그러다가 1975년 〈문학사상〉에 「칼날」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난장이 연작」을 발표한 후, 다시 오랜 침묵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있는 한, 조세희라는 작가가 쓴 글은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출간 당시, 엄혹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6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린 이 책은 1996년 100쇄, 2005년 200쇄를 돌파했다. 2007년에는 통산 판매부수 100만 부를 달성했고, 2017년 300쇄를 넘겼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한 지금의 상황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2009


『사당동 더하기 25』

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2012


『열세살 여공의 삶』

신순애 지음, 한겨레출판, 2014






김유진 -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출판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매주 쏟아지는 신간 중에서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하는 책,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들을 찾아 소개한다. 때로는 책보다 작가, 학자, 편집자 등 책을 만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크로스북리뷰’라는 동영상 콘텐츠도 만든다. 학부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대학원에서는 정책학을 공부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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