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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철부지의 사랑과 그 이면

문학-현대-산문 분야 『동백꽃』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백꽃』

김유정 지음, 유인순 엮음, 문학과지성사, 2005







철부지의 사랑과 그 이면


정영훈 -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유정의 작품 활동 기간은 짧다. 개벽사의 문예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를 발표한 때부터 계산하면 3년여, 조선일보에 「소낙비」가 당선되어 공식적으로 문단에 나온 때부터 계산하면 2년 정도의 시간만 허락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상당히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다. 사후에 발간된 작품집 『동백꽃』에 실린 작품만 해도 스물한 편에 이를 정도이니 그만큼 열정적으로 썼고 그 수준 또한 고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유정 소설에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 농촌사회의 궁핍한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런 부류의 소설로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우리 문단의 주류가 된 카프 소설을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농촌을 식민지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으로, 지주 또는 그를 대리하는 마름과 소작인 사이의 갈등과 대결을 주로 그리고 있다. 김유정 소설은 이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흔히 김유정 소설은 해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극도로 궁핍한 상황 가운데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 아내를 앞세워 비루한 삶을 이어가지만 화를 내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이들의 우둔하고 악의 없는 행동은 독자들에게 의외의 웃음을 안겨 준다. 사람들은 한때 김유정 소설이 당대 식민지 현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편견이다. 김유정 소설 속 인물들은 농사를 지어 봐야 이것저것 떼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농사짓기를 포기하고(「만무방」), 그렇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사업에 뛰어든다(「금 따는 콩밭」). 이들은 때로 우둔해 보이고 때로 무모하고 때로 파렴치해 보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도록 만든 모순적인 시대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동백꽃』의 표제작인 「동백꽃」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동백꽃」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며칠 전부터 마름 집 딸인 점순이 자기네 닭을 데리고 와 우리 집 닭을 못살게 군다. 그 며칠 전에 ‘나’에게 수작을 걸어왔지만 반응을 하지 않았고, 또 하루는 ‘내’가 일을 하고 있는데 구운 감자를 꺼내 먹으라고 하는 걸 거절했더니, 이렇게 닭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우리 집 닭이 맥을 못 추고 늘 당하기만 하자 ‘나’는 홧김에 고추장을 먹여 싸움을 붙여 보기도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일 나갔다 돌아온 그 날도 어김없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홧김에 점순네 닭을 패대기쳐 죽이고 만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놀라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점순은 이르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밭으로 ‘나’를 넘어뜨린다. ‘나’는 동백꽃 냄새에 취해 아찔해 하고, 잠시 후 점순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점순과 ‘나’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아난다.


소설은 닭싸움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 후 이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들려준 다음 그 이후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닭싸움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점순 편에서 볼 때 닭싸움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구애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데 대한 분풀이이기도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한 술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닭싸움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은 점순과 나 사이의 관계가 발전해 가는 과정과 맥이 같다. 흥미로운 것은 ‘나’의 반응이다. ‘나’는 점순이가 무슨 뜻에서 그렇게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내’가 어리숙한 탓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소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닭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두 놈이 또 얼리었다”고 말하는데, 얼린다는 말에는 한데 어울려 싸운다는 뜻 외에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다. ‘나’는 싸움 뒤에 숨은 점순의 의도를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내’가 점순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으려 한 것은 점순과 ‘나’ 사이의 신분 차이 때문이다. 점순은 마름 집 딸이고, ‘나’는 그 집의 호의로 밭을 붙여먹고 사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경고조로 이야기한 것처럼 둘이 어울리다 사람들 눈에 띄고 그 사실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필시 우리 집은 밭을 떼이고 말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런 데 생각이 미친다는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철이 들었다는 뜻이다. 점순에게는 사랑 놀음일 수 있는 이 일이 ‘나’에게는 식구들의 생존 문제가 달려 있는 심각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점순의 구애는 일시적인 감정에서 오는 불장난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에게는 덩치가 큰 점순네 닭이 우리 집 닭을 쪼는 모습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았을 성싶다. 점순의 구애 표시는 마치 그 집 닭이 우리 닭을 못살게 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법도 하다. 신분의 차이는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마저 불가능하게 한다.


이 점에서 ‘나’의 무지는 가장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려는 것이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정말 어리숙한 것은 점순이다. 점순은 좋아하는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고, 말을 할 때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여 행동하는 것이 성숙의 척도가 될 수 있다면 점순은 아직 철모르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나’는 조숙하다. ‘내’가 조숙한 이유는 우리 집이 처해 있는 상황 때문이다. 점순이 아이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이유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 책임질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점순네 닭이 죽고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는 이제까지 어른처럼 행동하기 위해 유지해 오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점순에게 떠밀려 넘어진다. 팽팽하게 유지되어 오던 긴장이 풀리자 관계가 급진전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소설은 점순의 어머니가 점순을 찾는 소리가 들리고 둘이 놀라서 달아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작가가 여기서 소설을 끝맺고 있으니 그 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상상해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봄‧봄」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유정의 사랑

전상국 지음, 새움, 2018


태평천하

채만식 지음, 이주형 엮음, 문학과지성사, 2005


김유정과의 만남

김유정학회 편, 소명출판, 2013






정영훈 -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최인훈 소설의 주체성과 글쓰기』 『윤리의 표정』 『한평생의 지식』(공편)이 있고, 논문으로 「최인훈 소설의 여성 인식」 「최인훈 소설에서의 반복의 의미」 「1970년대 구보 잇기의 문학사적 맥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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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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