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역사의 껍데기는 가라

문학-현대-운문 분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지음, 시요일 엮음, 미디어창비, 2017







역사의 껍데기는 가라


황규관 - 시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편집후기에는 “지난 75년에 우리는 자료상의 완벽을 기하지 못한 채로나마 『전집(全集)』을 꾸며 그의 문학을 일단 정리해보았다. 그러나 어쩐 까닭인지 이 『전집』의 공급이 불의에 중단되고, 신동엽이란 이름은 마치 기피의 대상인 듯이 되고 말았다”며 ‘선집’ 형태로나마 꾸릴 수밖에 없던 저간의 사정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선집을 발간해야만 했던 “어떤 까닭”은 박정희 유신 정권의 탄압 때문이었다. 1975년 6월에 간행된 『신동엽 전집』은 그해 7월에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판매가 금지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동엽은 “마치 기피의 대상인 듯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신동엽의 시는 박정희 유신정권에게 ‘불온시’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신동엽 전집』의 판매가 금지된 직접적인 이유는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기실 신동엽의 시 세계 자체가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과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동엽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껍데기는 가라」라든가, 이 선집에는 실리지 않은 「4월은 갈아엎는 달」 같은 경우 박정희 정권이 불편해했던 4·19혁명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을 먼저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문학과의 동행』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5·16 당초에 쿠데타 세력은 1970년대에 박정희가 강행한 유신체계와는 아주 다른 사회를 꿈꾼 것”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내내 4·19를 부정하고 등장한 5·16은 4·19의 의미와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투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 시간을 거친 후 1970년대에 들어서 5·16이 4·19를 확실하게 불온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신동엽 전집』의 판매 금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부에서는 1959~1963년에 창작·발표된 작품들을 배치했고, 2부는 1968년까지의 작품들, 3부는 유작 및 창작 연대가 미표기된 작품을 싣고 있다. 4부에는 서사시 「금강」의 ‘서장’과 신동엽의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실려 있다. 그의 데뷔작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서 느낄 수 있듯, 신동엽 시의 출발점은 문명과 역사와 국가에 구획되기 전의 생명의 세계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서는 그것이 “눈보라 쌓이는 밤”이나 “광막한 원시림”이란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런 생명의 세계에서 삶은 오로지 “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난다. 바로 여기가 신동엽이 말하는 “대지”이다. 하지만 “대지”는 문명과 국가에 의해 훼손되어 “보다 큰 집단은 보다 큰 체계를 건축하고,/ 보다 큰 세계는 보다 큰 악(惡)을 양조(釀造)”하며 “조직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위조품을 모집”하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香아」라는 작품에서 신동엽이 “미끈덩한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에 인이 배기기 전으로 눈빛 아침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은 젊음으로 찾아가자”라고 말한 것은 대지를 배신한 역사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동엽이 마치 상고의 시간을 그리워하듯 “후고구렷적”을 또는 “삼한(三韓)”과 “북부여(北扶餘)”를 호출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신동엽 특유의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바, 신동엽에게는 이 땅에 식민지를 불러들여 온 국가 체제와 이 땅에 식민지를 끌고 들어온 제국주의 양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동엽의 시에서는 조선이라는 근세 국가 이전의 시간에 대한 낭만이 표출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역사적 상상력에 구체성을 불어넣기 위해 사용된 일종의 양식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시로 펼칠 때 구체성을 불어넣는 방식을 쓰곤 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나 「산문시·1」은 생생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시적 특징에 대해 생전에 그를 아낀 김수영은 “쇼비니즘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위구감(危懼感)”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문명 비평에의 변증법을 완성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신동엽의 시가 추상적인 문명 비판 시라는 인상을 줄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신동엽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은 젊음”(「香아」)을 훼손한 역사적 세력에 맞서 싸웠던 투쟁의 시간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짧은 기간이지만 인민군 치하에서 민청 선전부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산으로” 간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진달래 山川」)에 대한 기억과 전쟁 때문에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魂)”(「빛나는 눈동자」)이었다. 이들 또한 신동엽에게는 대지를 배신한 문명과 국가의 희생자들이었다. 신동엽이 인식하고 있던 당대의 문명과 국가란 전쟁과 분단과 금융자본, 이를 테면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鐘路五街」)의 형태였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4·19혁명이 터진 것이며, 그는 이 사건에 뜨겁게 호응했다. 신동엽이 4·19혁명을 통해 느낀 것은 상고의 시간에서 발원한 강물과 대지를 배신한 문명과 국가에 대한 “찬란한 반항이었다”. 동시에 4·19혁명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꽃 사태와도 같은 것이었고 “충천하는 자유에의 의지”( 阿斯女」) 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5·16쿠데타 정권에 의해 획책 된 1964년의 한일회담 같은 사건은 당연히 역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신동엽이 남긴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라는 노래나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는 선언은 두고두고 ‘4월’을 두려워하던 세력에게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판매 금지된 『신동엽 전집』이나 선집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1970년대의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문학사의 흐름을 별도로 살펴봐야 그 의미가 분명해지지만, 유신독재 정권의 복판에서 그 심장을 겨눌 시인으로 신동엽이 선택되고 또 곧바로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는 것은 신동엽 시인이 4·19혁명의 가장 선명한 적자라는 뜻이기도 한다.


박정희는 1975년의 신동엽은 막을 수 있었지만 1979년의 신동엽은 막지 못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초판은 1979년 3월에 출간되었고 박정희는 그해 10월에 죽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신동엽 시전집』

신동엽 지음, 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2013


『김수영과 신동엽』

이승규 지음, 소명출판, 2008


『민족시인 신동엽』

강은교 외 지음, 소명출판, 1999







황규관 - 시인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리얼리스트 김수영』이 있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