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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한음이덕형선생 묘 및 신도비 漢陰李德馨先生 墓 및 神道碑

경기도기념물 제89호




조선시대 광해군 대의 문신인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묘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한음漢陰이다. 지중추부사 이민성李民聖의 아들이며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이다. 1580년(선조13) 별시문과에 급제해 승문원承文院의 관원이 되었다. 1588년 이조정랑으로서 일본 사신을 접대하였고 1590년에는 대사간과 대사성을 지냈으며,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어 대제학을 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단독으로 일본의 겐소와 회담하여 그들의 침략을 공박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명나라 장군 양호楊鎬를 설복해 서울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1606년 영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영의정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5)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자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이를 적극 반대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뒤 용진龍津으로 물러가 국사를 걱정하다 병으로 죽었다. 어렸을 때 절친한 이항복과 기발한 장난을 잘해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저서로 『한음문고漢陰文稿』가 있으며,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한음 이덕형선생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덕형의 묘는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와의 합장묘이며 봉분은 단분單墳으로 조성하였다. 봉분 아랫부분에는 최근에 화강암으로 만든 호석護石을 설치하였다. 봉분 바로 앞에는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엣 묘표가 세워져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동자석·상석·향로석·망주석 등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하고 묘역의 좌우에서 시립侍立하고 있다. 신체 비례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으며 조각 솜씨 또한 뛰어나다. 묘역은 1984년에 새로 단장하였다.


한음 이덕형선생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한편 묘역 아래의 비각에는 방부이수형方趺螭首形의 신도비가 안치되어 있다. 이수의 조각이 매우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1653년(효종4)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용주 조경龍洲趙絅(1586~1669)이 지었고 글씨는 휴곡 오시복休谷吳始復(1637~?)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정규상鄭奎祥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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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묘비 1기, 혼유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1쌍, 동자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 신도비 높이 360cm

    재질/ 석재(화강암)

    주소/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82-1

    지정일 / 1985.09.20

    소유자/ 광주이씨 좌의정공파 종중

    관리자 / 광주이씨 좌의정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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