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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이준경선생 묘 李浚慶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96호





삼정승을 역임한 이준경李浚慶(1499~1572)의 묘이다. 이준경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련거사紅蓮居士·연방노인蓮坊老人이다. 이준경은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연좌되어 6세의 어린 나이로 괴산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기묘사화 때 파직당하였다가, 1537년(중종32) 다시 등용되어 한성부판윤·대사헌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50년(명종5) 영의정 이기李芑의 모함으로 보은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지충추부사가 되었다. 이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65년(명종20)에 영의정에 올랐다. 저서로는 『동고유고東皐遺稿』, 『조선풍속朝鮮風俗』 등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이준경의 묘는 청계산 줄기가 서북으로 뻗은 구릉에 북서향하여 있다. 봉분은 단분으로 정경부인 풍산김씨豊山金氏와의 합장묘이다. 묘역은 크게 3계로 구분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봉분·호석·망주석 2기, 중계에는 장명등이 있고, 하계에는 석물이 없다. 석인·묘표·상석·고석·향로석 등은 현대에 새로 추가한 석물이다.



이준경선생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봉분 아래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호석護石을 둘렀다. 형태는 원형이며, 별도의 지대석을 두어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망주석은 봉분과 유독 근접하여 배치가 어색하다. 형태는 팔각형태이며, 대석은 별도로 제작하여 끼우는 방식이다. 원수圓首는 길고 뾰족하게 조성하였고, 운두雲頭에는 여의앙련을 조각하였다. 염의簾衣와 주신柱身에는 장식을 넣지 않았다.

봉분 앞의 묘표는 근래에 새로 세운 것으로, 원래의 묘표는 1585년(선조18)에 건립하였다. 비문은 노수신盧守愼(1515 ~1590)이 찬撰한 것인데, 마모가 심하여 현재는 수원대학교 박물관에 이관되어 있다.


이준경선생 묘 망주석(우), 망주석(좌),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장명등은 사각형이며 개석蓋石과 체석體石으로 분리되어 있다. 정자석頂子石은 2단의 원수圓首가 있으며 아래로는 연엽蓮葉을 장식하였다. 2단의 원수장식은 16세기 장명등의 특징이다. 지붕의 합각면이 4면에 있으며, 추녀마루는 완만하고 처마는 두껍게 조각하였다. 화사석火舍石과 대석臺石은 모두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화창은 중앙부에 작은 방형으로 뚫었다. 상대석에는 안상문을 음각하고, 중대와 하대에는 당초문을 얇게 양각하였으며 하단은 호족형으로 마감하였다. 화사석과 대석의 좌우너비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균형감이 다소 떨어지나 16세기 중반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였다.


이준경선생 묘 장명등,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신도비는 묘역 입구에 위치하는데, 1984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원래의 신도비는 1581년(선조14)에 노수신盧守愼이 찬하여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파손되어 1962년 후손들이 중건하였고, 지금의 비는 1984년에 다시 조성한 것이다. 비문은 1581년 처음 신도비가 세워질 때 노수신이 지은 것으로 이준경의 약력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석물의 위치변동 및 묘제의 변동이 있으며, 옛 석물과 현대에 추보한 석물이 함께 잔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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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묘비 1기, 혼유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주소/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산35-1

    지정일/ 1987.02.12

    소유자/ 광주이씨 좌의정공파 종중

    관리자 / 광주이씨 종친회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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