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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이순몽장군 묘 李順蒙將軍 墓

경기도기념물 제92호





조선전기 무신인 이순몽李順蒙(1386~1449)의 묘이다. 이순몽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1405년(태종5) 벼슬에 올라 1417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418년 의용위절제사·동지총제가 되었으며, 1419년(세종1) 우군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19년 우군절제사로 이종무李從茂·우박禹博·박초朴礎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패하였으나 이순몽은 김효성金孝誠과 함께 대전과를 거두었다. 1433년 중군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1434년 경상도도절제사, 1447년 영중추원사를 지냈다.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이순몽장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순몽의 묘는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 무술마을 동편 약 200m지점 구릉의 서편에 조성되어 있다. 부인과 쌍분이며 동냠향이다. 묘역은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식으로 3계를 이루고 있는 조선전기의 묘제이다. 상계에는 봉분·호석·묘표·상석을 배치하였고, 중계에는 문인석 2기, 하계에도 문인석 2기를 배치하였다. 봉분은 방형인데, 봉분 아래에 두른 호석護石은 장방형의 돌을 2단으로 쌓았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의 묘제를 이어받은 전형적인 조선초기의 양식이다. 묘역 아래에는 1997년에 새로 세워진 묘비 등이 있다.

묘표는 서쪽 봉분 앞에 1기가 있는데, 비제는 ‘영중추원사영천이공지묘領中樞院事永川李公之墓’이다. 건립연대는 1509년(중종4)으로 이순몽이 사망한 뒤 약 60년 후에 설립한 것이다. 형태는 좌우 모서리의 각을 죽인 규수방부형奎首方趺形으로 대석과 한 돌로 되어 있다. 마모가 많이 진행되었으며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은 조선초기의묘표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순몽장군 묘 문인석(우, 앞),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상석은 각 봉분 앞에 1기씩 총 2기가 있다. 이순몽의 봉분 바로 앞에 묘표가 있기 때문에 상석이 계체석 끝단 정도까지 물러난 상태이고, 부인의 봉분 앞에는 묘표가 없어 상석이 봉분쪽으로 거의 붙어 있다. 문인석은 중계에 2기, 하계에 2기 총 4기가 설립되어 쌍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문인석의 형태는 모두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으로 홀을 들고 서 있다. 이목구비는 선각화되어 단순하고, 두 눈과 양 볼, 턱이 앞으로 돌출된 15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신체의 형태는 사각주형의 둔중한 형태에 구성요소는 얕게 양각하여 단순화시켰다. 중계 동쪽의 문인석은 복두의 양각이 교차하고 있는 교각복두交脚幞頭의 형태이고, 하계의 문인석은 복두의 양각이 거의 환형으로 곡선화되었다. 특히 하계 문인석은 손을 소매에 가리는 15세기의 한삼汗衫형 소매표현을 시도하였으나 어색하게 마무리되었다. 모두 15세기 후반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중계의 문인석과 하계의 문인석의 규모와 재질, 복식 표현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나서 각각 다른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조선초기의 묘제와 석물 구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3계의 구성, 방형의 호석과 규수방부형의 묘표, 4기의 문인석의 배치 등은 15세기 전반 조선 사대부 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으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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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쌍분, 묘비 1기, 상석 2기, 문인석 2쌍, 호석, 계체석

    주소/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 산45-3

    지정일/ 1986.09.07

    소유자/ 광주이씨 좌의정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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