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옛 그림과 함께 거니는 조선시대의 내면 풍경

문화 분야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푸른역사, 2017









옛 그림과 함께 거니는 조선시대의 내면 풍경


이광표 - 서원대 문화유산학 교수





먼저, 이 책의 맨 뒤에 실린 부록 가운데 글 한 편을 읽어본다. 18세기 단원 김홍도의 그 유명한 풍속화 「씨름」에 관한 오주석의 글이다. 저자인 미술사학자 오주석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글이다.


“씨름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철 이른 부채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막 힘든 모내기가 끝난 단오절인가 보다. 씨름꾼은 샅바를 상대편 허벅지에 휘감아 팔뚝에만 걸었다. 이건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 지방에서만 하던 바씨름이다. (중략)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승자다. 뒷사람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 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른손까지 점점 빠져나가 바나나처럼 길어 보이니 이제 곧 자빠질 게 틀림없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니 상대는 순간 그쪽으로 낚아챈다. 이크, 오른편 아래 두 구경꾼이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 순간 상체는 뒤로 밀리고 오른팔은 뒷땅을 짚었다. 판 났다! (중략)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 왼편 위쪽,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어리숙한 양반은 아닐 성싶다. 갓도 삐뚜름하고 발이 저려 비죽이 내민 폼이 좀 미욱스러워 보인다. 그 뒤 의관이 단정한 노인은 너무 연만하시니 물론 아니고, 옳거니 그 앞의 두 장정이 심상치 않다. 갓을 벗어 나란히 겹쳐 놓고 발막신도 벌써 벗어 놓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등줄기가 곧으며 내심 긴장한 듯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 낀 채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선수 두 사람의 초초함과는 무관하게 엿장수는 혼자서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먼 산만 바라본다. 엿판에 놓인 엽전 세 냥이 흐뭇해서인가.”


첫 문장부터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림 속 부채 하나에도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왜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씨름판을 벌이는지, 그 시간적 문화적 배경을 명쾌하게 표현했다. 오주석은 두 남자의 샅바잡기를 보고 경기도 씨름임을 알아냈다. 그림을 제대로 읽기 위해 씨름의 역사와 종류까지 공부한 것이다. 짧은 글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넘어갈 때마다 행간의 깊은 울림 속으로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특히 오주석의 집요한 관찰력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단원의 「씨름」을 말하면서 두 주인공 씨름꾼의 승패에 대해 누가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던가. “얼마나 놀랬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라고 표현할 정도로 저자 오주석은 넉살도 좋다.


이러한 설명은 모두 그림을 꼼꼼히 읽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짧은 글 하나만 읽어도 오주석이 김홍도라는 화가에 얼마나 푹 빠졌는지, 김홍도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 절로 느껴진다. 이것이 오주석 글의 매력이다.


「씨름」에 관한 이 짧은 글을 확장해, 다채롭고 편안하게 조선시대 문화와 미(美)와 정신세계로 확장해 설명한 책이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이다. 「씨름」에 관한 글처럼 이 책에는 시종일관 옛 그림에 대한 오주석의 안목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대중 강연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편안한 데다 저자의 풍부한 관련 지식과 정감 있는 글쓰기가 더해져 읽는 이를 옛 그림의 매력으로 끌고 간다.


책은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오주석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수백 년 전 당시 사람들의 내면과 고민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조선의 내면이고 한국의 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점들을 거창한 철학이나 어려운 미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이야기로 편안하게 풀어나간다.


첫 번째 장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에서는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고 그림의 대각선 길이의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감상하라는 식이다. 옛 그림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장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에서는 옛 그림에 담긴 우주관과 인생관을 살펴본다. 특히 음양오행에 기초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생관 우주관을 들여다본다. 주역(周易), 음양오행 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음양오행 이론의 궁극은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하는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모두 결국 조화를 추구한 작품이며, 그것이 조선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장은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다. 가장 장쾌한 그림의 하나로 꼽히는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에서는 백성을 드높였던 정조 시대 성리학의 이념을 찾아내고, 「이재 초상(李縡肖像)」 「이채 초상(李采肖像)」에서는 터럭 한 올까지 정확하게 묘사해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읽어낸다.


이 책의 압권은 책 뒷부분에 나오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작자 미상)과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에 관한 대목이다. 「일월오봉병」은 왕의 용상 뒤에 세워놓는 병풍 그림이다. 누군가는 이 그림을 두고 “왕의 절대권력” 운운하며 부정적인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오주석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특히 그림에 등장하는 붉은 기둥의 소나무를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붉은 우주목(宇宙木)으로 해석한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은 무언가 장엄하고 힘이 넘친다. 오주석은 이 그림을 통해 조선의 문화 속에서 담겨 있는 꿈틀거리는 힘을 역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조선 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진경산수화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독특하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하늘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전체 금강산을 원형 구도로 잡았다. 그러고는 흙산과 바위산을 좌우로 구분에 S자 모양으로 태극 형상을 만들었다. 참으로 독특한 그림이다. 오주석은 여기서 주역의 원리를 찾아낸다. 그는 흙산과 바위산은 음과 양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주역을 열심히 공부했던 정선이 금강산을 주역의 원리로 구현한 것이다. 오주석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조선이 영원하길 바랐던 정선의 마음까지 읽어낸다. 오주석의 설명을 듣고 나면 「금강전도」가 왜 대단한 걸작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저자가 예로 드는 그림의 상당수가 김홍도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주석은 정선, 신윤복, 강세황 등의 그림도 소개하지만 대부분은 김홍도가 그린 작품을 이야기한다. 오주석은 김홍도를 특히 좋아했다, 김홍도를 두고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고 했다. 부록으로 수록한 짤막한 그림 설명도 김홍도의 그림 12점에 대한 것이다. 김홍도에 대한 오주석의 애정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홍도가 왜 인물의 좌우 손을 종종 뒤바꿔 그렸는지 등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덧붙인다.


오주석은 2005년 세상을 떠났다. 49세였다. 많은 이가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의 유고집이 몇 권 나왔다. 2010년대 들어 오주석의 고향인 수원에선 그를 되돌아보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오주석 저작물 독서모임,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오주석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유족은 그의 책과 유품 등을 고향에 기증했고 수원시는 화성행궁 옆 멋진 단독주택을 한 채 매입해 그것들을 전시하고 옛 그림을 공부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2018년 9월 문을 연 오주석의 서재다. 이 책을 읽으면 조선시대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수원 화성을 들러보고 화성행궁 옆 오주석의 서재를 찾아가면 더 좋을 것 같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신구문화사, 2018


『간송 전형필』

이충렬 지음, 김영사, 2010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

윤철규 지음, 컬처북스, 2015 






이광표 - 서원대 문화유산학 교수


1993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2018년까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소개하는 글을 주로 썼다. 지금은 서원대 교양대학 교수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저서로 『그림에 나를 담다-한국의 자화상 읽기』 『명품의 탄생-한국의 컬렉션 한국의 컬렉터』 『한국의 국보』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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