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우리가 먹는 인간인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문제

사회 분야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허남혁 지음, 김종엽 그림, 책세상, 2008






우리가 먹는 인간인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문제


염경원 - 〈기획회의〉 편집자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초의 시험은 먹는 문제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만은 먹어선 안 된다는 금기를 깬 아담과 하와는 그 원죄의 대가로 “종신토록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먹고사는 일은 언제나 인간에게 시험이자 고통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그의 저서 『미식예찬』에서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겠다”라고 말했다.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생존이나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먹는 사람의 인격과 성격, 나아가 정체성까지 규정한다는 의미다. 이는 비단 한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의 허남혁 저자는 “먹거리는 그 자체로 사회이자 자연이며, 문화”라고 말한다.


저자는 학부 시절 우연히 환경문제를 접하고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과 먹거리 문제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는 근대화 이후 역사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연이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는지, 혹은 자연과 사회가 어떻게 신진대사 해오면서 물, 에너지, 먹거리 같은 자연의 흐름이 유지되어 왔는지와 같은 '정치·생태학적 관점'에 관심을 두고, 주로 먹거리와 농업의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먹거리가 가진 다양한 맥락의 사회적, 생태적, 윤리적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나’와 먹거리가 어떤 유기적 연결을 맺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는 왜 생겨났을까? 정말 고기를 먹어도 안전한 걸까? 드림카카오를 즐겨 먹는 우리 모두에게 아동 노예 노동문제의 책임이 있는 걸까? 남의 굶주림으로 나의 통장을 채우는 애그리펀드는 죄악이 아닐까? 먹거리를 대부분 사서 먹는 오늘날, 아토피 문제를 그저 개인의 고통으로 남겨두어도 되는 걸까? 저자는 먹거리에 관한 크고 작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쌀과 커피와 초콜릿 등 한국인에게 매우 친근하고 익숙한 먹거리를 낯설고 불편하게 만든다.


1장에서는 우리의 먹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며, 우리의 식문화가 전 세계의 농민과 어민, 그곳의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채 30%도 되지 않는다. 쌀을 제외하면 모든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콩, 옥수수, 밀은 90% 이상을 수입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 곡물 수입국이다. 저자는 먼저 우리의 주식인 쌀과 쌀농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설명한다. 한국은 WTO 체제 하에 2005년 쌀 수매 제도가 폐지되었고, 1995년부터 이미 가공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온 데다, 2007년부터는 밥상용 쌀까지 수입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쌀 수입이 식량 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농촌 쇠락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미국에서 수입되는 쌀이 우리의 식탁을 장악할수록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그동안 쌀을 통해 관계 맺어온 우리나라 농민들 대신에 미국의 대농장 경영 농민들과 그들의 쌀을 유통시키는 다국적 기업들을 먹여 살리게 되고, 따라서 우리나라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수많은 농민이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농촌을 떠났으며, 우리 농업의 근간이자 문화의 기반이었던 쌀농사의 퇴조가 현실화되었다. 1970년 230만 헥타르에 이르던 농경지는 2017년 기준 약 165만 헥타르로 줄었다. 매년 전체 농경지의 약 1%(2만 헥타르)가 줄고 있다. “또한 쌀농사를 통해 유지되던 물 보전, 산소 발생, 홍수 방지 등의 환경 보호 기능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경제 논리에 따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농업의 가치와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2008년 출간된 책이니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에 관한 내용도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인수 공통 전염병은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광우병과 조류 인플루엔자 현대 공장식 축산이 야기한 문제라고 본다. 양 내장을 소의 사료로 사용한 인간의 반자연적인 행위가 이 병의 시발점이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기 위한 현대의 공장형 가축 사육 방식이 광우병의 근본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조류 독감 역시 대량으로 가금류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비위생적이고 반 자연적인 사육 조건과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 꼬집는다. 애먼 철새 탓하지 말라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광우병 파동 이후 10년이 지났다. 대중적 관심이 꺼진 10년 사이에도 전 세계에서 광우병 소와 인간 광우병 의심 환자들이 발생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가 경각하지 않는다면, DDT와 같은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의 미덕은 먹거리에 관한 문제를 쉽고 명료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대안까지 성실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화 시대의 산업화된 먹거리 관계망을 반성하며 등장한 채식주의나 슬로푸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가공품을 직거래를 통해 지역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로컬푸드,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의 노동 조건과 생계를 보장하는 공정 무역 등은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는 설명이 쉬울 뿐만 아니라 개념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생태, 식량 문제, 대안 먹거리 등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나 청소년들이 입문서로 읽기 좋다. 친절하게도 책의 부록 ‘참고할 만한 자료’에 『빵의 역사』『육식의 종말』『로컬푸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의 책과 영화 「슈퍼사이즈 미」 「미트릭스」 등의 영상 자료를 소개하고 있으니 함께 살펴보기를 권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먹거리가 ‘좋은 먹거리’이고 ‘바람직한 먹거리’인가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변하고 있고 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거리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값싼 먹거리를 얼마나 충분하게 먹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중략)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먹거리를 소비하는 데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한다. (중략) 더 나아가 이 먹거리가 지구 환경을 해치고 다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며 얻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보다 큰 차원의 고려 사항들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먹방, 쿡방, 맛집, 미쉐린가이드까지 미식에 대한 열망이 여느 때보다 높다. 미식의 사전적 정의는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이다.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 유기농 음식, 건강에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만이 좋은 음식은 아닐 것이다. 식량 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지만, 공급되는 식량의 3분의 1을 버리는 나라, 한국의 민낯이다. 우리에게 좋은 음식이란 농민과 생산자를 착취하지 않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거스르지 않으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 연결망을 가진 음식일 테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가 출간된 2008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18년의 대한민국은 과연 그때보다 ‘좋은’ 먹거리 관계망을 만들었는가. 앞으로 10년은 또 얼마만큼 ‘좋은 음식’으로 채워질 것인가. 오늘의 내 밥 한 그릇, 내 밥상이 시작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GMO, 우리는 날마다 논란을 먹는다』

존 T. 랭 지음, 황성원 옮김, 풀빛, 2018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책세상, 2017


『먹는 인간』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메멘토, 2017






염경원 - 〈기획회의〉 편집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만들고 있다. 친구들이 디지털기기에 인터넷소설을 넣어서 읽을 때 종이책에 푹 빠져 사춘기를 보냈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 종말론이 떠돌자 막연히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책의 미래를 늘 궁금해하며 선배들이 보여준 책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새내기 편집자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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