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사회학을 시작하는 모멸감 입문서

사회 분야 『모멸감』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멸감』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 





사회학을 시작하는 모멸감 입문서


김민영 - 숭례문학당 이사




『모멸감』을 읽고 “평생 절 괴롭힌 문제가 뭔지 알게 됐어요”라던 H. 그녀는 미루던 학업, 진로, 결혼 문제를 단계별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괴감에서 벗어나니 무엇이든 직면하고 선택할 용기가 생겼다. 그녀를 회복시킨 페이지는 프롤로그와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2장 ‘한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였다. 이 책은 강렬하게 시작하여 독자의 가면을 벗긴다. 저자 김찬호 교수는 ‘감정’이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띤다며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고 진단한다. 그것은 “오랜 기간 이어지고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삶의 바탕”이다. 저자는 이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며 다소 낯선 진단을 내린다.


의사 아버지 아래서 늘 ‘기준 미달’이었던 딸 H는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을 타고난 것이라 여겼다. 한 번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을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상담과 신앙으로 극복하지 못한 삶의 문제가 투명해졌으며 극복할 힘을 얻었다. 책에 따르면 모멸감은 “누군가가 나를 직접 모욕하지 않았다 해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또는 “어떤 상황 자체가 모멸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수치심의 질감을 좌우하는 변수는 무엇일까? 토론 논제로도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다섯 가지 변수를 제시한다. 본인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 부모로부터 받은 애정의 정도, 또래집단과의 관계, 사회문화적 요인, 사람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모멸감으로 고민해 온 이라면 이를 두루 살펴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본인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과 부모로부터 받은 애정 정도의 원인에만 집중해온 H에게 이 책은 다른 변수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자기 삶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생겼다는 H의 일상은 한결 편안해 보인다.


저자 김찬호의 화두는 2장 ‘공동체의 붕괴, 집단주의의 지속’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침투한다. 모멸감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과민감”을 꼽는다. 이는 두 가지 차원으로 다시 나뉜다. 첫째,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 둘째, “자기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 책은 이러한 경향의 중심에 있는 차별 의식에도 주목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으로 쏠리는 가운데 행복은 점점 껍데기로 형해화된다. 그렇게 남의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자라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H의 모멸감을 증폭시킨 감정 중 하나는 ‘남의 이목’이었다. 의사인 H의 아버지가 주로 하던 말은 “네 직업을 보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겠냐”였다. 친구들의 자녀들이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데 비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학원가를 택한 H의 선택은 아버지에게 일종의 ‘모멸감’이었다. 그는 H에게 끊임없이 모멸감을 주입했다. 김찬호의 지적대로 H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모멸감을 느꼈고 자존감까지 잃어버렸다.


2015년 서울시의 한 도서관에서 『모멸감』이 여러 시민에게 읽히는 현장을 목격했다. H의 아버지처럼 학부모로서 각성하듯 읽는 이들도 보았다. 그들은 “이제야 내 자신이 보인다” “함께 읽고 토론해야 할 책”이라고 말했다.


후반 4~5장에 나온 대안을 둘러싼 토론 또한 첨예하게 이뤄졌다. 원인을 읽게 된 것만으로도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H류의 독자도 있지만, 저자만의 대안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후자의 독자들은 “파헤쳐 놓았으니 구체적인 대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질문을 이어갔다. 대안 격으로 구성된 4장 ‘인간적인 사회를 향하여’와 5장 ‘생존에서 존엄으로’에서 주제 키워드는 품위 · 감수성 · 좋은 삶에 대한 자문 · 연대와 결속 · 환대의 시공간이다. 특히 ‘환대의 시공간’이라는 대안에선 구체적인 예까지 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에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어 저자는 40년간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정책적인 예방 프로그램을 연구한 길리건 교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길리건 교수는 결국 “개인이 살아가는 집단이나 공동체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강렬한 저자의 외침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 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환대의 시공간’이야 말로 저자가 부제로 꺼낸 ‘굴욕과 존엄의 감정 사회학’을 실천하는 장이 될 수 있다며 지지하는 독자도 있겠으나, 모호한 대안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런 대안은 이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느냐는 이견이다. 『모멸감』의 토론 엔딩 크레딧과 같은 ‘환대의 시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실천할 것인지는 모두의 과제다.


저자는 다른 사회학자들과 달리 이 책에 소설과 영화와 같은 ‘스토리’를 예로 들거나, 작곡가 유주환의 ‘모멸감’ 음반을 동봉하며 독자와의 접점을 만들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책은 사회학 입문서로 제격이다. 관련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은 이보다, 사회학과 멀었던 독자의 첫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또한 H처럼 모멸감이란 감정에 더 근본적으로 다가서고 싶다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함께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피터 비에리의 『자기결정』을 추천한다. 비에리는 영화화된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로 소설과 또 다른 원칙과 신념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민음사, 2015


『자기결정』

피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2015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이후, 2002






김민영 - 숭례문학당 이사


학습 공동체 숭례문학당에서 강의와 저술을 한다. 한 달에 열 개 이상의 학습 모임에 참여하며, 책, 영화, 글, 운동과 산다. 교육청, 대학, 한겨레글터에서 글쓰기 강의를 한다. 지은 책으로는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서평 글쓰기 특강』『이젠, 함께 읽기다』『필사 문장력 특강』(공저) 등이 있다. 김성신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0183768027@naver.com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 입사했다. 저작권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현재 KBS 1라디오 「생방송일요일아침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에 16년째 고정 출연 중이다. tbs의 서평 프로그램 「TV 책방 북소리-해결책 코너」의 진행 외에도 10여 개의 방송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스포츠경향과 조선일보, 〈기획회의〉등에 칼럼과 서평을 쓰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다. 지은 책으로는 『북톡카톡』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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