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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풀피리 보유자 오세철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행한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종합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기능보유자와 예능보유자 66명의 삶을 조망하고 보유 종목에 대한 소개와 다양한 단체에서 제공한 진귀한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지씨에서는 이 책에 소개된 경기도의 무형문화재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 전문 보기



자연의 악기로 자연의 소리를 연주하는 풀피리. 풀피리 소리는 농촌 들녘을 닮았고 숲을 닮았다. 사람이 연주하지만 사람은 온데 없고 자연만 울려 퍼진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보유자 오세철 선생은 자연이다. 포천에서 농사일을 주업으로 하는 그는 논 가운데서도 풀잎을 놓치지 않는다. 자연과 풀피리와 하나인 오세철 선생. 늘 자연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새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감흥을 즉각 반영해 더욱 자연의 소리를 내놓는다. 무대에 설 때는 원음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새소리로 청중의 귀를 모으며 시작하는게 특징이다.



풀피리는 한자로 초적 또는 초금이라 불렸던 우리나라 전통 향악기다. 조선시대 편찬된 악학궤범에는 풀피리를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을 말아서 입에 물고 불거나 나뭇잎을 접어서 입술에 대고 분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피리계통 관악기들이 모두 소리를 내는 리드가 있고 겹서로 아래 위가 떨리며 소리가 나는 데 반해 풀피리는 홀서로 풀잎을 무는 강도, 바람의 세기, 양손의 장력, 혀 놀림의 조절로 음악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대금과 피리를 넘나들며 애잔한 음이 그 어떤 국악기도 능가하는 풀피리. 오세철 선생은 어린시절 우연히 들은 연주 소리에 반해 오늘날 최고 경지에 올랐다.



조선 성종24(1493년) 왕명으로 편찬된 악학궤범 속 풀피리에 관한 기록


부친의 구성진 목청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우리소리를 잘한다고 동네에 소문났던 오세철 선생은 철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사가 주업이었던 동네에 모내기가 시작되면 어린 오세철은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서 박자를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꾼으로 초청되곤 했다.


1971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연천 친척집에 갔다가 우연히 풀피리 소리를 들었다. 한 할아버지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아카시아 잎으로 창부타령을 부는데 어찌나 좋던지 넋을 잃고 홀린 듯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들은 풀피리 창부타령은 집에 돌아와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이후 학교수업도 부모님 모르게 빼먹고 철원에서 연천까지 시간날 때마다 찾아 뵙고 풀피리 연주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졸라야 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스승이신 전금산 선생은 “풀피리 소리가 좋긴 한데 아무나 배우기 힘들다”며 “풀피리 소리는 하늘이 내는 소리인 만큼 하늘이 낸 사람이라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어린 오세철을 일깨웠다.




전금산 선생에게 풀피리 연주에 중요한 메나리가락과 민속기악곡의 흐름을 배웠다. 또 각 도에 분포되어 있는 민요나 고난도 풀피리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풀피리를 잡는 요령부터 서치기, 혀치기, 목더름, 서자침 기법(흐~ 발음을 끌어올림) 등 풀피리 연주의 기초와 전문적인 기법을 모두 전수받았다.


당시 80세 노령이었던 스승은 1년 반 만에 타계했고 오세철은 슬픔으로 한동안 방황했다. 슬픔을 잊기 위해 더욱 풀피리 불기에 매진하다보니 너무 불어 입술이 부르트고 독초를 물어 죽을 뻔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의 손에 잡히는 풀잎은 종류를 불문하고 모두 악기가 됐다. 풀피리 연주는 풀잎

이나 나뭇잎 등 탄력을 가진 타원형 잎이면 모두 가능하지만 오세철 선생은 특히 개복숭아 잎과 청가시넝쿨 잎을 풀피리 악기로 손꼽는다.


좌 / 중요 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배뱅이 굿) 보유자  이은관 명인


군대 제대 후 가업인 농사에 매진하면서도 온 세상에 지천인 악기로 풀피리를 연주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1999년 어느 날 모내기가 갖 끝나고 아내의 권고로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이은관 선생을 찾아갔다. 첫 대면 자리에서 전수자 된 그는 본격적으로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배우며 풀피리와 서도소리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하는 갈등도 겪었다.


2000년 11월 초, 국립극장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피리를 위한 무대’ 공연이 있었다. 오세철은 풀피리 연주로 참가했고 이때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던 풀피리가 정식 국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국립극장 ‘피리를 위한 무대’ 2000. 11. 2~3


일본 전국풀피리콘서트 -가나자와시 초적애호회-(2009. 10. 4)



한일 풀피리 교류회(2010. 7. 3)


제5회 세계 자연보존총회(2012. 9. 6)


*영상자료 : 경기학연구센터(http://cfgs.ggcf.kr/)>센터자료>영상자료 '자연의 소리, 산과 들의 악기'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지정일2002. 11. 15
보유자오세철(1957년생)
보존회풀피리 보존회
정보

다음카페 : 무형문화유산 풀피리 오세철 http://cafe.daum.net/ohsecheol

문헌조선왕조실록, 악학궤범, 승정원일기, 영조진연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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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

    발행처/ 경기도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문의/ 031-231-8576(경기학연구센터 담당 김성태)

    발행일/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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