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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백두산아 다시 깨어나라

아동 분야 『백두산 이야기』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두산 이야기』

류재수 지음, 류재수 그림, 보림, 2009








백두산아 다시 깨어나라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는 늘 한국 그림책의 시작과 함께 이야기된다. 『백두산 이야기』가 한국 현대 그림책의 시작일 뿐 아니라 류재수 역시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자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출간된 이 책은 어린이책 출판사가 아니라 철학자 김용옥이 만든 출판사 통나무에서 출간되었다(2009년 개정판부터는 보림에서 펴내고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류재수는 1984년 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 주관 ‘일러스트레이션트레이닝 코스’를 수료하고, 첫 그림책인 『턱 빠진 탈』(1985년 절판)로 1987년 노마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이후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우리 신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당시 어린이책 시장에서 『백두산 이야기』는 파격 그 자체였다. 어린이책이라면 울긋불긋 화려한 원색을 사용해야 한다고 여겼던 세태에서 류재수는 황토색을 주제 색으로 정하고 색감을 절제했다. 게다가 한 권의 그림책을 완성하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보기 드문 6도 인쇄로 제작된 그림책이 어린이책 출판사가 아니라 성인물 출판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990년 『백두산 이야기』는 일본 후쿠인칸 쇼텐에서 『산이 된 거인』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판된다. 일본 그림책을 주도하던 후쿠인칸 쇼텐의 마츠이 다다시는 『백두산 이야기』를 높이 평가하며 “그림책이 지닌 위대함을 꼭 일본의 어른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평하기도 했다. 과연 『백두산 이야기』는 일본의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었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백두산 이야기』를 무대극으로 만든 「산이 된 거인」이 일본에서 순회 공연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되며 ‘한국의 그림책 100선’에 선정되었다.


그림책을 펼치면 세상이 시작되는 아득한 옛날로 독자를 데려간다.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나누어지고 해와 달이 둘씩 생겨 세상이 비로소 밝아졌던 시절이다. 그러나 해와 달이 두 개나 있다 보니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웠다. 너른 만주 벌판에 자리 잡은 조선의 백성들은 하늘에 해와 달을 하나씩 없애 달라고 빌었다.


천지왕은 이를 해결하고자 흑두거인을 보내지만 섣불리 덤비다 실패를 하고 만다. 이에 천지왕의 부름을 받은 백두거인은 해와 달을 하나씩 화살로 쏘아 바다에 떨어뜨려 조선 백성의 소망을 이뤄준다. 또한 천지왕은 아들인 한웅 왕자를 조선에 내려 보내 고운 여자와 짝을 지어 조선의 임금이 되도록 했고, 조선 백성은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백두거인을 시기하던 흑두거인은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 백성을 유린한다. 공포에 질린 조선 백성은 하늘에 빌었고 천지왕이 다시 백두거인을 조선에 내려보낸다. 백두거인은 포악한 흑두거인과 백일이 넘도록 싸웠고 마침내 흑두 거인을 물리쳤다.


긴 싸움이 끝난 후 백두거인은 깊은 잠에 빠져들며 조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원히 너희 곁에서 너희를 지킬 것이다.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올 때 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세월이 흘러 백두거인은 거대한 산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이 산을 백두산이라 불렀다.


시간이 흘러 조선에 큰 흉년이 들자 사람들은 백두산을 향해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며 기우제를 지냈다. 며칠이 지나자 백두산 꼭대기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고, 세찬 비가 몰려왔다. 비가 그친 후 백두산 꼭대기에는 거대한 물웅덩이인 천지가 생겨났다. 천지에서 넘친 물은 강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 가뭄 걱정도 사라졌다. 이날 이후로 조선 백성의 가슴에는 백두산의 기운이 깃들었고 언젠가 나라에 재앙이 닥칠 때 백두산이 다시 깨어나리라 굳게 믿게 되었다.


『백두산 이야기』가 출간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 보아도 놀라운 그림책이다. 그림책이 담은 시공간의 규모는 물론이고 남북 분단의 현실에 맞선 웅대한 주제의식도 시대를 훌쩍 앞서간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이나 보는 거라는 편협한 시각을 지닌 그때의 혹은 지금의 시선으로 살펴보아도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담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두산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중국을 통하지 않고는 쉽게 갈 수 없는 한반도 최고의 영산이다. 작가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창조 신화를 새롭게 재창조하여 세상이 만들어진 이야기며, 우리 민족이 만주에 자리 잡은 과정이며, 백두산과 천지가 생겨난 연유를 들려준다. 창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느끼게 된다. 백두산의 기운이 깃든 조선 백성은 하나이며, 백두산이 다시 깨어나는 날 한민족은 다시 하나가 되리라는 걸 말이다. 우리 곁에서 영원히 지켜줄 백두거인이 있는 한 조선 백성은 결코 외세에 굴하지 않고 민족 자주의 정신을 잊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남과 북의 관계가 오늘과 같지 않던 1980년대, 류재수는 남한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정치적 제약을 넘어 한반도 그리고 한민족의 하나 됨을 뜨겁게 소망한 것이다. 자본주의 물신만 남고 신화가 사라진 시대, 작가는 『백두산 이야기』를 통해 한민족에게 새로운 신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여전히 현재성을 지닌다.


장대한 창조 신화는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림과 완벽하게 조응한다. 한민족의 탄생과 시원을 표현하기 위해 류재수는 그림을 공간 안에 가두지 않고 웅대한 규모로 폭발하듯 그려냈다. 어린이책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과감한 구도는 독자에게 천지 탄생의 무한 공간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또 포스터물감을 사용해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거칠고 힘 있는 붓 터치를 보여주어 그림이 그야말로 꿈틀거린다. 흑두거인과 백두거인의 긴 싸움, 하늘을 향한 기우제 장면 등 몇 장면을 빼고는 최대한 색을 절제하고 황토색을 주제 색으로 삼아 민족의 공간을 형상화해 냈다.


『백두산 이야기』는 그림책에서 시각 언어로 어떻게 주제의식을 표현할 것인지를 알리는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다. 한국 그림책의 시작이자, 류재수라는 걸출한 작가의 탄생을 알린 책이자, 그림책이 독자적인 예술 장르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솔이의 추석 이야기』

이억배 지음, 길벗어린이, 1995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지음, 초방책방, 1994


『아씨방 일곱 동무』

이영경 지음, 비룡소, 1998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출판칼럼니스트다. 책을 읽고,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쓴다. 한겨레에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를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책 읽기는 게임이야』 『지도탐험대』 『아이를 읽는다는 것』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공저) 등이 있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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