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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20세기의 난중일기

인문 분야 『백범일지』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돌베개, 2002









20세기의 난중일기


한승동 - 저널리스트







군국 일본 강점기에 중국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중심에 있었던 백범 김구의 회고록 『백범일지』는 우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데 필수적인 자료다. 그리고 그가 꾸려간 임시정부와 그 핵심 인물들 그리고 그들 주변과 항일운동을 중심으로 한 당대의 한반도 및 중국 사정(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긴요한 1차 사료다. 여전히 ‘분단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탓인지, 제국주의 식민수탈에 대한 저항의 규모나 밀도에서 타민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음에도 그와 관련한 변변한 읽을거리조차 없는 현실에서 『백범일지』는 분명 높은 가치를 지닌다.


『백범일지』는 민족 수난기에 반격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직접 써서 남긴 드문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도 비견될 만하다. 김구가 충무공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있었고, 그 두 사람이 맞서 싸웠던 대상이 침략자 일본이라는 점에서도 두 책은 친연성이 있다.


상·하권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인 이 책의 상권은 탄생과 성장기부터 동학운동 가담, 일본인 격살과 투옥, 탈옥, 교육운동, 재투옥을 거쳐 3·1운동 뒤 망명, 상하이 망명정부 참여 이후 10년까지의 기간에 대한 회고를 담았다. 상권이 저자의 파란만장했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하권은 임시정부 시절 활동 쪽에 초점을 맞춘다. 하권 말미에는 일제 패망과 환국 뒤 이 책이 처음 국내에서 출간된 1947년까지의 활동에 대한 회고와 당시 그의 정국에 대한 생각과 정치철학, 인생관을 담은 글 「나의 소원」이 추가돼 있다. 이를 일지 원본뿐만 아니라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형태의 출간본들까지 비교 검토해 오류를 바로잡고 깐깐한 주석을 붙이고 쉽게 풀어 쓴 도진순 주해본은 텍스트로서의 가치와 신뢰성을 한층 더 높였다.


김구는 1876년이라는 출생 년도부터 매우 시사적이다. 그해에 제국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불평등조약 ‘한일수호조규’ 체결을 강요했고, 그 사전 작업으로 1875년에 군함 운요호를 앞세워 강화도를 무력으로 유린했다. 해주 지역에 자리 잡은 몰락 잔반의 퇴락한 가문에서 ‘상놈’으로 자란 그가 문맹을 면하고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결심한 것은 갓도 못 쓰게 하는 주변 양반들의 차별과 멸시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 문자 해독 열망이 동학과 연결되었고, 그것은 다시 ‘아기 접주’가 돼 동학혁명에 가담하게 되고, 1895년 을미사변·단발령을 거치면서 ‘왜구’에 대한 증오로 일본인을 죽이고 투옥당해 서양 소식과 신학문, 기독교를 접하고, 탈옥 뒤 교육운동에 헌신하는 사건들의 연쇄로 이어진다. 그 와중에 그의 견문은 크게 넓어지고 세계관도 확장됐다. 3·1운동의 적자라 할 임시정부가 출발부터 왕정복고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지향한 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 1차대전 뒤의 탈식민적 민족자결 요구라는 세계사적 조류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임시정부 멤버들 특유의 출신 배경과 체험 덕이 컷을 것이다. 백범 개인으로 보자면, 그 계급적 배경과 기독교가 성했던 당대 서북지방 풍토 등이 그의 삶의 방향을 애초에 공화제로 돌려놓았을 것이다.


백범은 1896년 21세에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사형수로 인천 감옥에 수감돼 상당히 요란스런 감방생활을 하다가 약 2년 뒤 탈옥한다. 죽인 왜인의 신분을 김구는 일본 육군 중위라고 썼으나 일본 외무성 자료는 그를 상인으로 기록했다. 이를 김구의 사실 왜곡 내지 과대포장의 사례로 삼는 주장도 있는 듯하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가 있을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침략 초기에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 상인들은 일본 관·군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관·군 못지않게 조선 침략과 통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그때 조선 사람들의 반일감정과 의병 봉기 등 당시의 격앙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사형수였던 김구가 형 집행 직전 고종의 집행 보류 지시로 목숨을 건진 것도 그런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독립신문에 날 정도로 유명했다.


탈옥 뒤 서남 지역을 잠행하며 지인들을 만나고 다니던 그는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됐다가 다시 고향 해주, 장연, 안악 지역에서 본격적인 신식교육 운동가·교사로 활동한다. 1903년 무렵부터 시작된 그의 교육운동은 1911년 기독교 계통의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탄압 때 투옥당해 15년 형을 받을 때까지 계속된다. 약 5년간의 감방살이 뒤 석방돼 다시 교육 활동을 하던 그는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된다.


그때까지 그는 크게 도드라지진 않았으나 지역 활동가로 착실히 입지를 다지면서 삶의 좌표를 재설정했다. 거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이 『백범일지』에서 상권으로 정리돼 있는데, 분량도 책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많다. 김구라는 인물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당대 조선과 중국의 사정, 일제 조선침탈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는 데 흥미롭고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회고록으로서는 이 상권 쪽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책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지 1년여 만인 1929년에 탈고한 상권은, 당시 홀어머니와 함께 고향에 돌려보낸 두 어린 아들에게 남기려 했던 일종의 유서다. 그는 1919년 임정 초창기에 경무국장이 되고 3년 뒤 임시의정원 의원 그리고 내무총장, 1925년에는 최고위직인 국무령까지 되며 고속 승진을 했다. 이는 그가 유능하고 심지가 굳은 덕이기도 했겠지만 초기 수백 명이었던 임정 일꾼들이 수십 명 수준으로 쪼그라들 정도로 사람도 돈도 다 빠져나간 침체와 위기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기사회생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특단의 대책을 구상했다. 임정과 자신의 생사를 건 그 모험(이봉창·윤봉길 의거)을 감행하기로 작심하면서 그는 자신이 걸어온 삶 전체를 돌아보고 자식들과 세상에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한 주요 궤적들을 정리했다. 이게 1929년 상하이 임정 청사에서 탈고한 상권이다. 하권은 그 2년여 뒤 그 구상을 실행에 옮겨 기사회생한 이후 1941년까지의 궤적을 충칭의 새 입정 청사에서 임정 활동 중심으로 정리했다.


하권의 백미는 1932년 1월의 이봉창 의거와 그해 4월의 윤봉길 의거다. 도쿄 사쿠라다몬 앞에서 마차 타고 가던 히로히토 천황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거는 천황을 죽이지 못했다는 점에선 실패였지만, 사그라지던 임정의 건재를 세계에 알리고 동포들의 관심과 지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선 큰 성공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중국 홍구 공원에서 천황 탄생일 기념식을 하던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과 상하이 일본민단장을 죽이고 여러 명의 요인들에게 중경상을 입힌 윤봉길 의거는 임정으로서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그 두 의거 뒤 일본이 꾸며낸 ‘만보산 사건’ 등으로 갈라져 반목하던 중국과 조선의 민심이 다시 합쳐졌고 중국, 특히 장제스의 국민당은 임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해외동포들 지원도 크게 늘었다. 그 거사와 이후의 변화 과정을 그것을 기획하고 주도한 당사자의 기술, 즉 1차 사료를 통해 확인하는 의미와 감흥이 색다를 수 있다. 그야말로 기사회생한 임정의, 자싱(嘉興)-창사(長沙)-광저우(廣州)-류저우(柳州)-구이양(貴陽)-치장(綦江)-충칭(重慶)으로 이어진 그 이후의 행보도 피땀과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더 컸다.


김구의 공산당 등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쟁세력에 대한 불신이나 평가절하는 아쉬운 일이지만, 거기에는 장제스 국민당의 적극적인 지원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환국할 때 장제스 쪽의 대대적 환송 행사 못지않게 중국공산당도 본부에서 저우언라이, 둥비우 등의 참석하에 송별연을 베풀었지만, 김구는 환국 뒤에도 장제스와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일제 패망 뒤 중국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의 국민당이 이겼다면 김구의 운명도, 미 점령군의 선택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런 얘기는 『백범 일지』엔 나오진 않으나, 그런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동녘, 2005


『백범 김구 평전』

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2014


『여운형 평전 1』

강덕상 지음, 김광열 옮김, 역사비평사, 2007








한승동 -저널리스트



1988년 창간 때부터 30년 간 한겨레에서 기자로 일한 뒤 2017년 정년퇴임해, 지금은 출판과 번역 일을 하면서 여러 매체에 부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한겨레 기자 시절 쓴 글들을 엮어 『대한민국 걷어차기』『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를 펴냈으며, 1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번역서로는 『멜트 다운』『속담 인류학』『나의 서양음악 순례』『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인간폭력의 기원』『짧게 쓴 프랑스혁명사』『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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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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