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가야만 해야 할 고난의 길

인문 분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지음, 정수일 옮김, 학고재, 2004









가야만 해야 할 고난의 길


김영수 -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671년 당나라의 한 승려가 바닷길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천축(인도)에 도착했다. 그는 여기서 20년을 머물다가 장안으로 돌아왔다. 장안으로 돌아온 그는 60여 명의 당나라 구법승들이 머나먼 인도로 구법을 떠나서 사막이나 험산 그리고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인도에 건너간 고행 내력과 인도에서 경전을 공부한 예불순례 등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바로 의정 스님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이다. 의정 스님은 이 기록에 인도에서 만난 신라의 현태, 현격, 혜업, 이름을 알 수 없는 승려 둘을 언급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신라 승려가 인도로 구법을 떠난 사실이 확인되었다.


기원전 1세기 한나라 무제 무렵 비단길(실크로드)이 개척된 후 당나라 때까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를 찾은 구법자들은 약 2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교통 상황으로 볼 때 인도행은 대체로 3년에서 5년이 걸리는 참으로 고난의 행로였다. 도중에 병과 굶주림 그리고 도적 등을 만나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또 돌아오지 못하고 인도에서 열반한 순례자도 많았다. 다시 천신만고의 여정을 거쳐 돌아오기까지 15년에서 20년이 걸렸다.


불법을 구하기 위한 이 험난한 여정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로써 동서를 잇는 땅과 바다의 길이 온전히 열렸다. 이 길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정신이 오갔고, 동서양의 무역로가 함께 개척되었다. 세계사에 큰 획을 긋는 동서 교류의 길이 이런 순수한 선구자들에 의해 열린 것이다.


의정이 인도에서 신라 승려들을 만난 후, 약 50년 뒤인 723년 또 한 사람의 신라 승려가 광주(지금의 광저우)를 출발하여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구법행을 떠났다. 그는 약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지방을 돌고 727년 육로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장안 천복사와 대흥선사 등지에서 밀교 경전을 강의하고 연구하여 큰 업적을 남긴 다음 780년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약 80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천 년 넘게 잊혔다.


이 신라 승려가 세상을 떠나고 1200여 년 뒤인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는 돈황 천불동 장경동에서 사경류, 회화, 직물류 등 다량의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그런데 그가 빼내간 사경류 중 약 6천 자의 필사본 하나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름하여 『왕오천축국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함께 신라 승려 한 사람도 1200년 만에 부활했다. 바로 혜초 스님이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 스님이 4년에 걸쳐 인도와 서역을 다니면서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여행기로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세계 4대 여행기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오도록의 『동유기』 그리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꼽는다. 『서유기』 삼장법사의 모델이 된 당나라 승려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꼽는 경우도 많다. 인도와 서역을 다녀와 기록으로 남긴 기행기로는, 현재까지는 이 책이 유일하다. 이 여행기는 “총체적으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긴 했으나 일시적 부흥을 모색하던 8세기 전반기에 오천축과 중앙아시아 일대를 두루 순방”하여 “불교사의 한 장을 이루는 당시의 이러한 역사상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투영”된 귀중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혜초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대식(아랍)에 다녀온 사람으로 『왕오천축국전』에 나타난 대식 관련 기사는 특별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다. 혜초는 아랍을 처음으로 ‘대식’이란 이름으로 불렀고, 하나의 문명권 내에서 최초로 대식 현지에서의 견문을 여행기로 남기는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서역 각지의 나라 이름과 지명을 한자와 함께 그 지방의 원어를 기록하는 최초의 선례를 남겨 나라와 지명 연구에 참으로 귀중한 자료를 남기기도 했다.


『왕오천축국전』은 온전한 기록이 아니라 축약본이고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어 연구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와 사료적 가치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적지 않은 연구가 축적되었다. 사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친절한 안내서가 절실했다. 이런 점에서 동서교류사에 남다른 연구와 저역서를 남긴 정수일 선생의 『왕오천축국전』 역주서는 『왕오천축국전』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정수일 역주 『왕오천축국전』은 평생 동서 문명교류사를 연구하고 현장을 탐방해온 역자의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발군의 역주서이다. 『왕오천축국전』의 발견 경위와 그 가치를 상세히 전해주는 해제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방대한 역주는 원서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차원을 넘어 혜초의 원서가 갖는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정수일 선생은 『왕오천국국전』이 갖는 문명사적 의미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첫째, 문명교류사에서 개척자적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둘째, 『왕오천축국전』은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진서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서지로서 명실상부 국보급 진서다. 셋째, 『왕오천축국전』의 의미는 실제 여행기로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에는 고향을 그리는 시를 포함하여 다섯 수의 시가 실려 있다. 이밖에 『왕초천축국전』은 중세 세계사, 특히 8세기 불교 상황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 원이며, 한국과 아랍-이슬람 세계의 관계사에서 개척자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근대 서양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 이후 세계사는 서양 중심으로 기술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사는 줄곧 동양이 주도했다. 동서 교류의 주체도 늘 동양이었고, 교류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다름 아닌 비단길이었다. 수많은 선구자와 개척자들이 이 길을 통해 문물을 전하고 가져왔다. 인도라는 세계 정신사의 메카에서 중국과 한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로는 이 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말하자면 성지 순례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은 이 순례의 여정에 화룡점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 남북의 길이 열리면 남-북, 통일한국-중국, 통일한국-시베리아, 중국-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아랍, 아랍-유럽, 시베리아-유럽을 잇는 철도를 통한 철의 실크로드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여기에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개척된 바닷길도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이에 맞추어 신남방정책도 나왔다. 한국의 미래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왕오천축국전』을 펼쳐보면 어떨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대당서역기』

현장법사 지음, 권덕녀 옮김, 서해문집, 2006


『대당서역구법고승전』

김규현 지음, 글로벌콘텐츠, 2013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 사계절, 2000






김영수 -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사마천과 『사기』를 30년 넘게 공부하면서 중국 역사와 역사 현장을 통해 중국 알기에 매진해오고 있다. 현재 현장과 접목한 『사기』를 완역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중국 역사를 조직과 경영에 접목하여 리더십, 인재론, 인문경영 등을 주제로 기업, 교육기관, 공공기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난세에 답하다』 『인간의 길』 『대륙의 거성』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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