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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양주 관아지 楊州 官衙址

경기도기념물 제167호




<양주 관아지>는 조선시대 양주목楊州牧의 치소로서 기록에 의하면 1504년(연산군10)에 일시적으로 폐목되었다가 1506년(중종1)에 다시 복구되면서 고주내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해동지도海東地圖』 양주목해제에 따르면 1511년(중종6)에 치소를 불곡산佛谷山 남쪽 현재의 자리인 유양리에 이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22년 시둔면(의정부 1동)으로 옮길때까지 411년간 양주군 읍치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불곡산 양주 관아지가 위치한 곳은 남사면에 접해 완만한 구릉지를 이루고 남측 유양천을 중심으로 소규모 경작지가 형성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양주 관아지 동헌,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양주목 관아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 중 1871년(고종8) 편찬된 『경기읍지京畿邑誌』의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가 가장 상세하다. 공해조公廨條에는 동헌東軒인 매학당梅鶴堂, 연무청, 군관청, 속오초관청, 아병초관청, 사창 정도만 기록되어 있으나, 각방사례各房事例에는 공해조에 누락된 다양한 관아 시설이 규모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객사·형옥·읍창·진창·군기고·화약고·금화정·관청 및 관청고·문루·동헌 및 중동헌·동서행각·내삼문·좌우행각·내아 및 행랑·향청·집사청·초관청·형리청·순령수청·관노청·세락수청·주인청·토포청·강무루 등 31개 시설인데,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객사 관련 시설이 1개, 동헌 관련 시설은 내아를 포함해 14개, 관아 부속시설은 향청을 비롯해 7개, 중영과 관련된 시설은 9개로 구분된다.



양주 관아지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양주 관아지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되어 당초에는 이건된 양주목사 송덕비군과 입구 주변의 옛 사령청 초석과 장대석렬, 훈련장 건물의 초석, 석루조 그리고 동북쪽에 관아 누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 장초석과 고복석, 장대석 등의 유물 정도만 남아 있다가, 1997년에 동헌東軒이 먼저 복원되었다. 이후 2000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건물과 권역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동헌의 위치는 1997년 복원된 동헌의 전면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과 내아 영역의 대략적 윤곽 등이 확인되었다.


양주목사 송덕비군, 1984 ©양주시


양주목사 송덕비군,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동헌 뒤편에는 1792년(정조16) 왕이 광릉에 행차하던 길에 민정을 살피고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쏜 뒤 잔치를 베푼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어사대비가 있고, 관아지 서쪽의 작은 계류 상류쪽에 ‘금화동문’, ‘화대’, ‘관민동락’ 등의 글씨가 새겨진 석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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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문화재구역 6,096㎡

    주소/ 양주시 부흥로1399번길 15

    지정일/ 1999.04.26

    소유자/ 양주시

    관리자 / 양주시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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