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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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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_육근병 작가의 작업실



육근병의 세상을 보는 눈




육근병 작가는 30대였던 80년대 후반부터 당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던 미디어아트의 아이콘이었다. 8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95년 리옹비엔날레 그리고 92년 카셀도큐멘타에 참여하며 한국이라는 곳에도 현대미술이 있다는 것을 알렸던 작가다. 특히 5년마다 열리는 독일의 카셀도큐멘타에는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참여하며 ‘제2의 백남준’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20년 동안 한국 작가가 참여하지 못하다 2012년에서야 3명이 참여하게 된 것만 봐도 당시 육근병 작가의 성취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미술이 세계와 동시대성을 획득한 지가 이미 오래고 최근의 성과가 눈부시지만 카셀도큐멘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전시에 참여했던 육근병 작가의 활약상은 현재의 시점에서 더욱 경이롭다. 분명 작가는 당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아이돌’이었음이 틀림없다.




육근병 작가의 대표 아이콘은 ‘눈’이다. 처음 세계가 주목했던 그의 작품 또한 눈이 중심이 되는 비디오 설치 작업이었다. 무덤 같은 흙더미에 비디오 모니터를 설치하고 그 모니터를 통해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형식의 작업이었다. 무덤 속 누군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듯, 혹은 무덤 자체가 하나의 객체가 되어 세상을 응시하는 이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마치 유령처럼 비디오가 바라보는 관객과 작품 사이의 경계는 작품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이며 체험해야 하는, 반대로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보도록 하는 상호소통적인 작품이었다. 이후로도 작가는 이 ‘눈’을 통해 자신이 보는 세상을 새롭게 제시하며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리옹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The Sound of Landscape+eye for Field Survival is History 1945-1995 "time in the time">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비디오 다큐멘터리 식으로 전개되며 화면 상단에서 눈 하나가 그것을 내려다보는 영상작품이다. 비디오 영상은 전쟁과 자연의 약육강식 등 디지털화되기 이전의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영상 자료를 모아 ‘생존은 역사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미디어아트로 세계를 누비던 백남준 선생과 비디오를 통해 여러 가지 형식 실험을 하던 다른 작가들과 달리 육근병 작가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며 나아가 미디어라는 특수한 형식을 통해 작가와 작품, 관객과 작품, 관객과 작가가 만나는 다자간 소통 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작품 또한 한국에서만 소통되는 내용을 넘어 세계 각국의 언어나 상황에 기반한 보편적 해석이 가능했기에 설명과 번역이 필요 없는 국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작가가 지난 2012년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일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5년 경기문화재단 G-오픈스튜디오 '옆집에 사는 예술가‘에 참여해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했다. 이미 11년째 살며 작업하고 있는 그의 스튜디오는 경기도 양평군 용천리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설매재자연휴양림에 포함되어 있다. 99년 국내 개인전 이후 국내 활동이 뜸했던 만큼 많은 이들이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작가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고 한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작가의 작업실 한편에는 작가가 직접 쓴 ’九牛一毛구우일모‘가 걸려있는데 이것이 작업을 하는 모티프가 된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아홉 마리 소의 털 한 가닥‘은 특수한 거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특별하지 않은 개개인의 삶의 역사를 고민한다는 뜻이며 이는 작가가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의 예술은 특별하고 특수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관심,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작업한다는 의미다.


이렇듯 자연과 시간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인 역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업하는 작가는 일민 미술관의 개인전에서 이전 작업과 함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양평 작업실에서 접한 자연을 작품에 담는 영상, 사진 작업이 그것이다. 자연 풍경 한 컷을 찍기 위해 작가는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찾아가 탐색하고 그 풍경을 담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간 시간들, 그곳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을 한 화면에 텍스트로 표현한다. 그렇게 풍경 하나도 작품으로 담을 때를 기다리고 지켜본 작가는 여러 시간을 경험하고 축적한 후 대상을 체화하듯 작업을 진행한다. 이는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는 대상을 체화하는 것과 유사한 과정으로 단지 가서 있는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고 오는 것과는 다르다. ‘자연과 세상은 언제나 끊임없이 변화 한다.’ 그래서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언제나 다른 것을 보는 작가는 자신 내부에서 ’이것이다.‘ 라고 결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한 대상을 탐구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오픈 스튜디오에서 작가는 그러한 자신의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필자가 궁금했던 것은 99년부터 진행하던 뉴욕의 UN 본부 프로젝트가 왜 멈추어졌는지었는데, 2013년 다시 재개된다는 일부 기사도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의 향방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작가는 99년 시작해 계획하던 프로젝트가 2001년 9/11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실행할 수 있도록 진행 중이라고 했다. 작가의 스튜디오에 걸려 있는 99년 제작된 UN 프로젝트 포스터에는 UN 회의장 외벽을 비디오 프로젝션 매핑으로 작가의 아이콘인 눈으로 뒤덮고 있었다. 소위 ’미디어 파사드‘라는 프로젝션 방식을 99년에 대형 스케일로 구현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휘도 프로젝터는 엄청난 고가였고 그러한 대형 프로젝트의 선례를 찾기 힘들 때였다. 국내에서 2010년 이후 미디어 파사드가 활성화된 것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생각은 이미 십수 년을 앞서가고 있었던 셈이다.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작가의 행보를 기대해 볼 만하다.



오픈스튜디오에서 작가는 방문객들과 담소를 나누며 자신의 작품과 예술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작업 과정과 지인들과 나누었던 일화들을 소개하며 기타 연주와 함께 자신이 편곡한 ‘아침이슬’도 들려주었다. 작업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보면서 방문객들과의 밤이 깊어갔다. 한국의 1세대 미디어 아티스트인 만큼 작가의 스튜디오에는 갖가지 미디어 장비와 컴퓨터 장비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VHS 테이프를 보유하고 있었고 신디사이저와 미디를 이용해 사운드작업을 하는 것까지 짧게 선보였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작가는 여전히 ‘얼리어답터’의 태도를 지니며 새로운 미디어를 실험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99년 이후 육근병 작가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리고 작가는 2012년을 기점으로 다시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거듭나려고 한다. 이미 일본을 비롯한 세계에서 많은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던 작가지만 한국의 미술 상황이 변화한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을 재개하려고 한다. 201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2016년 초 중국의 사천성에서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에 초청 작가로 참여한다. 해외에서는 베를린에서 개인전이 계획되어 있다. 여전히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작가이지만 이번 G-오픈스튜디오를 계기로 작가는 공식적으로 작업실을 개방하고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한참 후배인 필자에게는 작가는 책에서만 만나볼 수 있고 공부하던 거장이었다. 텔레비전을 통한 응시와 미디어의 특수성을 작품의 맥락으로 끌어 들였던 작가의 작품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의 오픈스튜디오를 기획하며 작가의 육성을 작업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보람과 함께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필자가 아는 한 육근병 작가만큼 일찍 세계에서 인정받았던 한국 작가는 없다. 백남준 작가는 독일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미국에서 작업을 이어갔지만,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미디어 작가는 육근병이 유일하다. 세계에서 받았던 관심만큼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게 오히려 의아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세계를 무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모습을 드러낼 대규모 UN 프로젝트는 세계 미술계가 육근병 작가를 다시금 주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거대 역사가 아닌 역사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주체들의 역사에 주목하며 예술과 작가의 역할을 고민하는 작가의 ‘눈’이 다시 세상을 향해 시선을 맞추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일은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글 서준호 스페이스 오뉴월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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