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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청계사 淸溪寺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호




『봉은사본말사지奉恩寺本末寺誌』에 실려있는 「청계사중건기淸溪寺重建記」에 의하면 <청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이후 평양부원군 조인규(1227~1308)가 원元 간섭기인 1284년(충렬왕10)에 크게 중창하여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조인규는 청계사 내에 자신을 위한 건물을 지어 머물기도 하였다. 조선 초인 1431년(세조13)에 조인규의 영당은 다시 중건되었고, 1448년(세조30)에는 그의 6세손인 조현趙玹이 중건을 하는 등 이후로도 오랫동안 청계사는 조인규 일가의 원찰願刹이었다.


청계사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1503년(연산군9) 도성 내 사찰 폐쇄령이 떨어지게 되자 청계사는 봉은사를 대신해 선종본찰禪宗本刹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피해를 겪은 것은 물론 1689년(숙종15) 화재로 다시 한 번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곧 승려 성희性熙가 조인규 후손일가의 도움으로 중건하고, 그 내력을 추려 사적비를 세운다. 이후 정조가 왕세손 시절이던 1761년(영조37) 직접 청계사를 찾아 왕실을 위한 기도처를 마련하고, 밤나무 3,000주柱를 내리고 원감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청계사 전경, 2004 ©의왕시


1789년(정조13)에는 현륭원제각顯隆園祭閣을 세웠는데, 이전에 지은 기도처를 확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1798년(정조22)에는 조인규 후손인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건불사가 행해졌으며 1879년에도 한 차례 중건이 이루어졌다. 그 뒤에도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진 중건·중수 불사를 통해 청계사는 안정적으로 가람伽藍의 사세寺勢를 이어올 수 있었다. 특히 19세기에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을 일으켰던 경허鏡虛(1849~1912)가 이곳에서 출가하여 도를 깨우쳤고, 그 선맥을 이은 만공滿空(1871~1946), 금오金烏(1896~1968), 월산月山(1912~1997) 등이 이곳에서 선풍仙風을 드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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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삼국~조선시대

    규모/ 일곽

    / 극락보전 3×3칸 지장전 3×1칸

    / 봉향각 3×2칸 삼성각 1×1칸

    재질/ 목재

    주소/ 의왕시 청계로 475

    지정일/ 1983.09.19

    소유자/ 청계사

    관리자 / 청계사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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