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연구원

남한산성 옛길 1차 테마강좌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 옛길 1차 테마강좌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센터 김성태 수석연구원>


남한산성 연구의 토대가 된 <중정남한지>는 <동국여지승람>과 서명응의<남성지> 등 여러 사서와 지리지를 참고, 수정, 보완하였으며, 삼국시대 이후 경기도 광주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지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중정남한지>는 저자인 홍경모가 1844년 광주부윤 겸 수어사가 되자 고을 수령으로서 지방지의 필요성을 느껴 저술한 책입니다. 특히 인물편은 조목 하나하나가 한 편의 인물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합니다. <중정남한지>는 각각의 조목에 대한 기록이 매우 자세하고 치밀하여 학술적 자료로 활용하기에도 매우 훌륭한 수준입니다. 또한 군사학의 전반적인 부분, 건축한, 역사학, 지방관의 직제에 관한 문제, 민중의 생활사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자료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어 가히 광주지역 연구의 보고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대훈연구원>


병자호란은 조선과 청나라가 군사력으로 부딪힌 동아시아의 대사건입니다. 이 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질서는 급격하게 청나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우리 민족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병자호란의 중심에는 바로 남한산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성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근왕병과 지원병이 청군의 남한산성 포위를 풀지 못 한 채 모두 격퇴되고 말았고, 설상가상으로 두 달 분의 비축물자가 바닥나자 결국 인조는 항복을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패배의 결과로 인조는 송파에 위치한 삼전도로 걸어 내려가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고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이후 수많은 변화를 맞게됩니다. 패배를 씻기 위해 북벌론이 대두되기도 하고, 명분 만을 중시하던 사상체계의 변화가 일어나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민중 계층에서도 패배한 전쟁의 결과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민담과 설화들이 창작되었습니다. 병자호란은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기폭제였으며 동시에 우리 민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역사의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남한산성 옛길 문의전화/031-231-8548

사진 출처/경기학연구센터

글 출처/남한산성 옛길 이야기책

글쓴이
경기문화재연구원
자기소개
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