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상상캠퍼스

광명하안문화의집 축제 모니터링 "만나장"

2019-10-26 ~ 2019-10-26 / [경기문화재단] 경기생활문화플랫폼

“내 이웃과 동네문화를 만나는 장”



시작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소 차면서 볕이 좋은 가을날은 그 자체로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데 딱 그런 날이었다. 입구에는 축제 안내문을 나눠주는 분들이 계셨고 복도에는 함께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의 생각, 과정,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보드로 만들어(GMO를 아시나요?/ 벼의 한 살이) 벽에 걸어 놓고, 사람들에게 잘 보일만한 곳에 테이블을 놓아 각자의 관심사들을 보기 좋게 늘어놓기도 하였다. (토종팜_호박, 양파잼 등 토종 먹거리 판매와 토종 씨앗 전시)


공간의 벽을 따라 축제를 찾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밀랍초, 한국화를 이용한 파우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도자기 목걸이 등의 만들기 테이블들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구경하다, 만들다, 기다리다 힘들면 가운데 깔아 놓은 자리에 앉아 쉬며 무대 벽에서 돌아가는 영상으로 ‘아 동네 사람들이 봄부터 이렇게 만나서 준비했구나.’ 하고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광명 하안문화의집의 생활문화축제 ‘맛나장’의 풍경이다.



경기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32개 단체 중 하나인 하안문화의집은 식생활과 식문화를 주제로 주민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축제’를 열고자 했다. 두 개 그룹의 사람들을 모으고 각각의 그룹을 이끌어 가는 이들 또한 그동안 하안문화의집 활동을 통해 성장한 주민 가운데 섭외하였다. 처음에 생활문화라는 게 무엇인지, 이 단어가 가진 의미의 넓음, 가치의 확장성이 오히려 자신들이 해야 할 것들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터라 그 혼란의 과정을 지켜보았던 필자는 축제가 어떤 분위기와 퍼포먼스를 만들어낼지 내심 궁금한 마음이었다.


두 그룹은 자신들의 이름을 ‘8공주와 맛수다(이하 8공주)’로, 또 다른 한 팀은 ‘맛보자’ 로 각각 지었다. 이날 축제에서 8공주팀는 하안문화의집 2층 생활문화창작실에서 <식생활 반상회>를 열고, 맛보자팀은 체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가을 품은 국화차와 떡>이라는 제목으로 국화차와 즐기는 떡 문양 찍기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맛보자팀의 경우 GMO와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과 공부로 시작했었는데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축제를 찾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물을 만들어 두는 등 체험 프로그램의 방식에 그간의 과정이 잘 드러나도록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8공주팀은 과정에서의 모습과 축제에서의 모습이 닮아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세먼지에 좋은 생활음식에서 시작하여 음식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갔던, 스스로 즐거웠던 그 방식, 그대로 축제에서 또 다른 시민들을 만난 것이다.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아 난감했던 것들은 오히려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 그간의 시간을 불충하게 하지 않는다. 축제에서는 두 번에 나눠 10명의 참가자를 모집하고 8공주가 손수 준비한 도토리전, 오이도라지무침, 배숙, 초주먹밥, 사과를 메뉴(미세먼지에 좋은)로 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인생에서 찬란했던 시절을 묻고 답하며 낯설게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 달라는 제안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음식문화에 관한 두 팀의 관심은 건강함이었다. GMO나 미세먼지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생활 실천의 측면에서 음식을 다룬 셈이다. 음식이나 먹거리는 누구의 삶이든 떼어낼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라 생활문화, 생활문화의 기획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타당한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생활문화에 장르가 있다면 음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처음에는 관계를 트는, 나눔의 매개물로서 음식이 활용되곤 했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문화기획이 더해지면서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처럼 각자 집에서 음식을 한두 가지씩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거나,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이들이 동네를 거점으로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ning)과 같은 방식들이 트렌드로 자리 잡기도 했다. ‘요리’라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더해지거나 ‘레시피’의 기록이나 공유와 같은 것들도 이 언저리에서 많이 이뤄진다. 방법, 주제, 장소, 재료, 사람, 개인의 서사, 기억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적 접근과 해석이 이처럼 가능한 것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음식을 생활문화를 기획하는 주제나 소재로 활용하고자 할 때 좀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지향과 주제의식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가치만으로는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함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문화라는 것 자체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거나 느꼈던 음식문화의 구체적인 사건들이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캠페인이나 정치적 선언, 공익 광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험에 나오는 정답들처럼 말이다. 두 팀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 각자의 삶에서 공유할 수 있는 16개의 음식문화들이 이번 축제를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딜 가나 축제의 풍경은 비슷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음’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움이겠지만 이 익숙함 속에는 체험 지상, 가시적 성과 중시, 소비하는 문화, 일회성 같은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 삶이 축제라면서 각자의 삶들이 만들어 내는 축제에서 삶은 사라진다. 얄팍한 현재 우리 삶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양복 차림으로 사람들 사이, 비좁은 틈을 비집고 다니며 악수를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조차도 지역 축제나 행사장 모습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올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영향이 있었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축제, 행사들이 취소, 연기, 축소되는 분위기에서 ‘맛나장’도 하안문화의집 앞 너른 잔디마당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건물 2층의 실내 공유부엌(일상부엌, 30평 내외)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축제의 외향도 제대로 갖추질 못했다. GMO와 미세먼지,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모두 소비와 과잉에 대한 인간 욕망의 후면이다. 맛있으면 그만이고 싸면 그만인, 당장 편하면 그만이고 덕분에 내 주머니가 채워지면 그만인 물심의 그림자이다. 정치나 제도가 작동됨으로써 시스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가 가장 크지만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서 변화나 실천을 이끌 방도는 무엇일까?



축제 ‘맛나장’은 이 두 팀을 주축으로 하안문화의집의 동호회들과 지역의 공방들이 참여하면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경기문화재단의 생활문화플랫폼 지원사업의 의미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이는 부분 중 하나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지와 역량으로 누구의 삶이 아닌 바로 자신의 삶에 필요한, 삶을 변화시키는 사건을 벌이는 경험의 경험, 경험들의 축적이다. 생활문화플랫폼에서는 이 주체들을 생활문화디자이너로 호명하며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보통 사람들의 가치를 일깨운다. 8공주팀과 맛보자팀의 15명의 생활문화디자이너들은 이 축제에서 정신없이 스친, 어쩌면 의미 없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북적임보다 스스로에게 여운이 남는 시간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맛나장’과 두 팀의 지난 시간들이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길 바란다. 지역의 정치인들도.


※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안내(하단 링크 참조)

http://ggc.ggcf.kr/p/5d8b82367048904d2c0c8637



2019 생활문화 취재단

작성자 : 임재춘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컨설턴트)

소   속 : 경기창생공간 '생활적정랩 빼꼼' 공동운영자 /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 공동운영자


생활문화 취재단은 '경기생활문화플랫폼'과 '생활문화 공동체(동호회) 네트워크'의 사업 현장을 취재하여

경기도내 생활문화 현장을 더 많은 도민들에게 전달 및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