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상상캠퍼스

공간옴팡 행사 모니터링

2019-10-12 ~ 2019-10-12 / [경기문화재단] 경기생활문화플랫폼

“나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야속한 바람이 불었다. 전시를 위해 탁자 위에 진열해 둔 도자기가 밀려 날아갈 만큼 강한 돌풍이었다. 행사장 곳곳에 놓인 온갖 종류의 재료와 물품들이 들썩였다. 의자가 바람에 떠밀리고, 현수막이 출렁였다. 이래서야 어디 행사가 되겠나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행사는 무난하게, 아니 흥겹게 마지막까지 질주했다. 커다란 축제는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고 담백한 맛이 있는 공유의 자리였다. 관객보다 먼저 웃는 사회자의 너털웃음도, 중간 중간 나오는 공연자들의 실수도, 여러 동아리들이 준비해 온 체험 활동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생활문화 축제를 참관하게 되면 언제나 축제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축제는 지역의 정체성이나 사회통합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의례에 가깝다. 지역의 역사적 연원이나 종교적 전통을 확인하는 한편으로 일상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을 통해 사회적 평안을 도모한다. 그렇다면 생활문화 영역에서는 축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축제와 성과공유회는 어떻게 다른 걸까, 그저 규모만의 문제일까, 축제의 관객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생활문화 영역에서 축제의 규모를 키우는데 집중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생활문화의 주요한 축은, 좀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즐거움의 플랫폼을 만들고 교류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활동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축제에는 원심력이 작동해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갈구하게 되고, 이는 축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흔히 만나게 되는 지자체 축제에 각종 연예인들이 출동해 예산을 펑펑 쓰게 되는 구조는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축제든 발표회든 성과공유회든 이름이 어찌됐든 간에 생활문화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활동에 참여한 이들이 참여하고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외연 확장의 기회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연히 행사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우리의 활동을 다른 이들이 접하고 호감과 매력을 느껴 참여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옴팡난장은 그런 지점에서 자기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옴팡의 동아리들이 일 년의 성과를 함께 나누고 즐기는 자리라는 것을 진행자나 참여자나 모두들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예산의 문제도 있겠지만 초대 공연이나 부스를 최소화하고 동아리에 참여한 팀들을 기본으로 해서 운영한 행사는 사이즈를 재서 맞춘 옷처럼 참여자들과 잘 맞아떨어지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이날 특히 인기가 많았던 팀은 발효 동아리 ‘곰팡’과 ‘술 빚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옴팡의 이름과 곰팡이를 절묘하게 조합한 곰팡과 전통주를 빚는 술 빚는 마을 사람들은 직접 만든 치즈와 술을 가져와 시식, 시음행사를 가지며 축제 참여자들의 눈과 입을 붙드는 데 성공했다. 강력한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캘리그라피 동아리와 드로잉 동아리의 전시/체험, 도예 전시와 체험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발 마사지 동아리 <발사자>는 발마사지 체험을 진행했고, 젬베 및 카혼 동아리 <쿵치타치>는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젬베와 카혼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10월치고는 혹독한 날씨에도 비교적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각종 체험과 공연을 즐겼다.


이날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옴팡의 천성원 운영자가 한 여성과 자이브 댄스를 추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온갖 미디어에서 늘씬한 선남선녀들의 퍼포먼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웃들의 무대가 주는 친근함과 뜻밖의 해방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부러움과 감탄을 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이들의 공연을 즐겼다. 누구든 가장 익숙한 미디어는 몸이다. 사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따라 자유의 정도가 달라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춤은 몸을 써서 자유에 가장 가까운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날 함께 무대에 오른 아프리카 댄스팀이 주던 해방감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날의 무대를 함께 본 이들은 ‘춤추는 삶’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기타 동아리 <아드레날린>과 <쿵치타치>의 공연도 악기와 음악의 매력을 잘 보여주었다. 누군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만한 재산, 일상을 영위하는 데 불편이 없을 만큼의 건강, 연주할 수 있는 하나의 악기를 꼽았다. 사람들과 함께 악기 연주를 하고 서로 소리를 맞추며 활동하는 즐거움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생활문화의 즐거움은 역시 나 홀로 기쁨을 만끽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그 즐거움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배우고 옴팡지게 놀아보자”라는 옴팡난장의 부제는 축제와 옴팡 활동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최근 생활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점이다. 물론, 장기간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기술은 전문가를 통한 배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직업적인 활용이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을 위해 활용되는 기술에는 반드시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생활문화의 중심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동아리, 동호회가 정확하게 그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제한 없이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 배움의 모든 영역을 생활문화 안에 가둘 수는 없겠지만, 생활문화의 큰 보람이나 즐거움 중 하나가 배움이라는 것을 굳이 가리거나 숨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옴팡의 성장세는 지속되어 왔다. 초기에는 마음에 맞는 이들이 모여 모임 몇 개를 운영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공간을 사용할 시간을 조절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일까지 생긴다. 어느새 옴팡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200명 안팎에 이른다. 동아리 영역도 마라톤, 술 빚기, 발효, 인문학, 여행, 음악, 댄스 등등 다양하게 뻗어있다. 지금까지는 상근자를 따로 두지 않았는데, 공간 사용자가 많아지며 상근인력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천성원 운영자는 올해 축제의 성과를 동아리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에서 찾는다. 동아리 회원들이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갈등 요소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다는 것이다. 어느 공동체에서나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동아리 활동의 특성상 서로 쉽게 만나지 못했던 구성원들이 함께 행사를 준비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다.


옴팡은 이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을 만들고 즐기는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옴팡이 자리 잡은 곳에는 문화기반 시설이 없어 주민들은 동네에서 뭔가를 도모해 보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축제는 작년에 이어 옴팡이 지역에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다. 나의 즐거움을 구성원들의 즐거움으로, 다시 구성원들의 즐거움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확장하길! 배움을 기반으로 옴팡지게 놀아보는 옴팡의 실험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안내 (하단 링크 참조)

http://ggc.ggcf.kr/p/5d8b82367048904d2c0c8637


2019 생활문화 취재단

○ 작 성 자 : 안태호 (2019 경기생활문화플랫폼 사업 컨설턴트)

○ 소 속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협동조합 이사


생활문화 취재단은 '경기생활문화플랫폼'과 '생활문화 공동체(동호회) 네트워크'의 사업 현장을 취재하여

경기도내 생활문화 현장을 더 많은 도민들에게 전달 및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