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정수연

[문화플러스] 정신영 아카이브

2019-12-08 ~ 2019-12-08 / 2019 경기북부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그음공간>에서는 2019년 11월 30일부터 2020년 4월 8일까지 <정신영 아카이브>가 전시되고 있다. 정신영 작가는 문자그음을 창시하고, 다양한 문자그음 작업과 이론, 디자인들을 남긴 디자이너이자, 창작자이다. <정신영 아카이브>는 고 정신영 작가가 남긴 자료들을 정리하고, 작품들과 출판물 중에 중요한 자취들을 작업으로 프리젠테이션하고 있다. 11월 30일 <유족과 지인을 위한 오픈>을 시작으로, 12월 1일에서 14일까지는 <일반 전시>, 2020년 4월 8일에는 <유족과 지인을 위한 재회> 순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12월 1일 윤병철 작가, 12월 8일, 김지섭 작가, 12월 14일 차정인 작가가 발제를 통해 정신영 작가의 작품세계와 아카이브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음공간>을 찾아가면서 세련되거나 감각적으로 꾸며졌을 아담한 전시공간을 상상하며 갔는데, 도착한 곳은 건물 공사 중인가 생각이 들게 하는 철제 구조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못 왔나 싶었지만 외진 곳이라 차에서 내릴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지섭 작가가 내려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김지섭 작가를 따라 건물 내부를 통과해 2층으로 올라가니 철제 구조물 전체가 모두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철제 구조물뿐만 아니라 야외 곳곳에 꽤 큰 여러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김지섭 작가의 설명을 받으며 작품 하나하나를 관람했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은 산 속 공터에 설치된 6미터 높이에 올려져 있는 의자였다. 김지섭 작가는 “의자지만 앉을 수 없는 의자이니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그게 약이 올라 오픈식 때 의자 그림자에라도 앉아보려고 땅까지 팠다니 꽤나 떠들썩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정신영 작가에게 작품의 의도를 물으니 공자가 초나라에서 어미돼지의 젖을 빨던 새끼 돼지들이 어미가 죽는 순간 모두 달아났는데, 그것을 본 공자가 새끼돼지들이 사랑한 것은 그 어미의 모양이 아니라 그 모양을 부리는 것(사기형자)이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를 말하며 6미터 위에 올려진 의자에 <사기형자>라고 제목 붙였다고 했다. 들어도 작품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저 깊은 뜻이 있으려니 하며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솟아있는 의자를 고개가 아프도록 한참 쳐다봤다.


또 다른 작품은 큰 하얀 배경에 읽을 수 없게 글자들이 겹쳐 쓰여 있었다. 연극 대사는 한 명씩 이야기해야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데, 각자 자기 얘기만 하면서 오디오가 겹치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우리 역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통은 없고 떠듬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야외에서 여러 작품들을 구경한 후, 따뜻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업실로 돌아오니 정신영작가의 작품과 아카이브에 전시한 작품 등에 대한 김지섭 작가의 발제가 시작되었다. 발제가 마무리될 때쯤 김지섭 작가가 문득 <정신영 아카이브>의 초대장을 건넸다. 이미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건네는 초대장은 뭐지 싶지만, 알 수 없는 타이포그라피가 쓰여진 초대장은 보는 순간 얼른 받아들게 되었다. 김지섭 작가는 초대장에 쓰여진 것이 영문 주기도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냥 봐서는 글자가 잘 읽히지가 않는다. 설명에 따라 기울여 보니 그때서야 비로소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기울여도 모든 글자가 쉽게 읽히지는 않아 글자를 읽어보려고 더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김지섭 작가는 <정신영 아카이브> 초대장에 <기울여서 마주보라>라고 적어 넣었다고 했다. 김지섭 작가는 “마주한 평면은 단축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기울여진 것들이 단순한 투시로 솟아올라 마주서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렵게 다시 그것을 세워 일으키고 마주해야 한다... 역사는 기울여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다. 삶에서 마주한 것을 기울여 투시할 때만 접근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했다. 정신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듣고 있자니 아카이브에 대한 김지섭 작가의 입장이 조금 이해되는 듯 했다. “아카이브가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관점이 중심이 되고, 기록과정에 끼어들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사실증주의처럼 사실을 왜곡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대화의 가능성마저 상실해서도 안된다. 기록하는 자의 관점을 분명하게 하고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아카이브에서 관람객들이 경험하는 것이 그러했다. 작가에 대한 왜곡 없는 기록들을 접하지만, 관람객들은 각자의 해석과 평가를 더해 작품들을 이해했다. 관람객 스스로 작품들을 평면으로 보지 않고, 기울여서 마주보는 것이다. 기울여도 잘 보이지 않기에 더 자세히 보려고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작가의 생각과 만나게 되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관람객들이 작품에 덧입히는 수많은 의미들이 더해져 하나의 작품은 갈수록 그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
정수연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