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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상상캠퍼스

[생활문화취재단] 대만 생활문화 현장리뷰 (보장암국제예술인마을편)

2019-12-03 ~ 2019-12-07 / 2019 국외 우수 생활문화 현장사례 탐방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생활문화 현장을 찾아서

“타이베이 보장암 국제 예술촌”



경기문화재단의 우수 생활문화 현장을 찾아가는 대만 탐방 일정,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는 첫 번째 방문지인 타이베이 ‘보장암 국제 예술촌’으로 향했다. 예술촌 입구에 있는 보장암(Treasure Hill)이라는 절은 관우를 모시던 사찰이었다. 전쟁 준비를 하던 막사였다고도 한다. 이 동네가 2010년 ‘보장암 국제 예술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곳이다.


예술촌은 경사진 골목이 있는 마을이다. 타이베이시가 이 빈민촌을 철거하려는 계획이 알려지자 이곳을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과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반대하며 남아있던 50여 가구와 시 정부가 타협을 보았다. 평지인 아래 구역은 공원으로 관리하고 비탈진 위쪽 거주지는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현재의 예술촌으로 남게 되었다. 시 정부는 보장암 예술촌을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저렴한 임차료를 내고 건물을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문처럼 입구에 자리 잡은 보장암은 마을의 일부다. 우리가 다닌 타이베이 도시 곳곳에, 심지어 주요 정부부처 앞 큰 공원에도 붉은 등을 달거나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곳들이 있었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은 곳이어서인지 우리와 같은 동북아권임에도 문화적인 다름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보장암을 통과하자 꽃분홍색 부겐빌레아가 활짝 핀 2층 건물이 나타났다. 겨울이지만 그날 기온이 19도 정도였으니 우리보다 온화한 남쪽 나라에 온 것을 실감했다. 건물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채소밭이 나왔다. 아삭아삭하고 신선하게 보이는 양상추가 예쁘게 자라고 있어 자꾸 눈이 갔다. 낡은 건물은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다. 몇 점의 그림과 조형물이 따뜻한 불빛을 받는 소박한 전시공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사서함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빨간색은 전시공간, 노란색은 예술가 공작실 등으로 표시되어 있고 호실 번호와 상호 또 작가의 사진도 붙어있어서 이 마을에 어떤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경사가 심하고 비좁은 골목길을 일일이 올라가지 않고 우편물을 보관해 두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 입주해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대만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골목으로 올라가니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 스탬프를 찍는 곳도 있었지만 안내하는 사람은 없었다. 번역이 좀 아쉬웠지만 한국어로 된 간단한 리플렛이 있어서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탐방하던 시간에 골목에서 만난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안내 책자를 보니 입주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가이드 투어가 가능한 날도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가이드 없이 개방된 공간만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이 마을은 자유 방문보다는 가이드 투어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근처에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슈퍼도 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상용품을 사고 여행객들이 잠시 쉬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주민들이 대피하던 군사 유적지로 방공호가 있었다. 이 공간은 폐쇄적인 곳이라 울림이 좋아서 지금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전시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전쟁 준비를 하던 막사가 있던 동네여서 총을 들고 지키던 보루도 있었고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마을을 체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겐 요긴한 곳이다.


좁은 골목을 돌다가 만난 장소 중에는 로봇 DIY라는 간판이 붙은 장소도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이처럼 의외의 장소들이 나온다. 그중 가장 정리되고 깔끔한, 우리가 흔히 보던 선물 가게 같은 곳도 그랬다. 아담하게 정겨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엽서나 에센스 오일, 작은 장식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올라가니 시멘트 바닥에 포춘쿠키 조형물 두 개가 덜렁 마주 보고 있다. 2010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건축가와 도예가가 합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두 개의 쿠키 모양은 두 개의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감정을 느껴보고 포춘쿠키가 의미하는 행복감이나 따뜻함을 공감해 보자는 의미라고 한다. 바로 그 옆에 변기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곳이 집터여서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도 작가들의 작품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발한 배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가진 포춘쿠키의 이미지를 깨는 느낌이 들었다.



50여 호가 남았다고 하니 큰 마을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비탈진 동네에 작은 마당 같은 평평한 공간만 있어도 광장(plaza)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산성 광장이니 고양이 광장이니 반루광장 같은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오래되고 허술해 보이는 집들, 허물어져 붉은색 벽돌이 드러난 집터, 자주 내리는 빗물에 거뭇한 곰팡이가 슬고 이끼가 피어있는 담벼락, 어쩌면 남루해 보이는 작은 건물과 동네 골목, 고양이 그림이 있는, 좁고 옹색한 계단 아래로 갑자기 나타난 귀여운 화분들. 이런 것들이 방문자가 보게 되는 마을 일부이기도 하다.  


한때는 불법 건물이던 집들이 지금은 역사적인 마을로 변했다. 원주민들의 주거 공간과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 함께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 이제는 대만의 생활문화나 예술촌을 궁금해하는 이들의 탐방 장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보장암 국제 예술촌을 돌아보며 연상되는 곳이 있었다. 서울의 문래예술창작촌이다. 오랜 세월 철공소가 밀집해 있던 동네지만 도심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철공소는 쇠퇴하고 빈 가게나 공장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 공간 일부를 가난한 작가들이 입주해서 창작실로 사용한다.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철공소 골목에서 거주와 창작을 병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은 홍대 쪽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난 예술가들이다. 몇 년 전부터는 공공기관에서 지원하는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도 있다. 시에서는 슬럼화된 이 지역을 개발하여 아파트를 짓고 공원을 만들어 번듯한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은 임차료가 싼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문래동은 철공소 골목 중간중간 숨어든 듯 입주한 예술가들이지만, 보장암 예술촌은 마을 전체가 개발을 반대한 원주민이거나 예술가들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곳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물론 보장암 예술촌 작가들의 경제적인 것 등의 여건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지역이 공동체로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면에서 둘을 비교하자면, 문래동은 벽화와 같은 공동작품이 눈에 띈다. 밝고 생동감 있는 작품들도 있어서 황량한 철공소 골목에 활력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문래 예술창작촌 투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색다른 면이 있다. 보장암 국제 예술촌은 그날 많은 작품을 볼 수 없어서였는지 예술적인 감각보다는 누군가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구나 정도로 다가왔다. 오래된 마을에 작가들이 모여 사는 느낌이 들었다.



보장암 국제 예술촌을 나오며 드는 생각은 예술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마을이란 느낌이 들었다. 개발을 반대하는 원주민들을 몰아내지 않고 타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과 이런 빈민촌을 특색 있는 문화예술 마을로 지원하는 것도 부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보장암 예술촌 탐방에서 느낀 또 다른 생각은, 오래되고 낡은 것이 예술로 이름 붙을 때 주목받는가. 아니면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이라 끌리는 것인가. 번쩍이지 않고 사소한 것을 귀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걸까.


예술인 거주 지역이 활성화되는 것은,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섭취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키워 가려 하는 생활문화도 일상에서 쉽게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 활동, 이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면 좋겠다.


2019 생활문화 취재단

○ 작 성 자 : 유미희 

○ 활 동 명 : 2019 생활문화 취재단

○ 활동내용 : 경기문화재단 "생활문화 공동체(동호회) 네트워크" 사업 현장 취재


생활문화 취재단은 '경기생활문화플랫폼'과 '생활문화 공동체(동호회) 네트워크'의 사업 현장을

취재하여 경기도내 생활문화 현장을 더 많은 도민들에게 전달 및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