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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번영로의 문학 정신을 잇는 시인이 탄생하다

제22회 수주문학상 수상자 이동욱 시인 선정

제22회 수주문학상의 이동욱 시인 「치(齒)」



 제22회 수주문학상 수상자 이동욱 시인



수주 변영로의 문학 정신을 잇는 시인이 탄생했습니다.


부천문화재단은 13일(목) ‘제22회 수주문학상’ 수상작에 이동욱(42) 시인의 「치(齒)」를 선정했습니다. 수주문학상은 부천 출신 시인 수주 변영로(1897~1961)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전국 문학인 404명이 지원한 이번 문학상의 출품작은 총 3,308편입니다.


심사위원단은 ”이미지의 전면화, 이미지를 제시하는 새롭고 신선한 언어의 운동이 눈길을 끌었다“며 ”날카로운 물줄기의 반복과 채소의 순종이 대비되는 장면이 강렬하고 참신하다“고 평가하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수상자 이동욱 시인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바위’ 제목의 글로 수상소감을 대신하고 ”이번 수상을 통해 시인으로서 나아갈 길을 명확하게 깨달았다“는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동욱 시인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과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으며, 2019년 소설집 「여우의 빛」을 출간했습니다.


수주문학상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올곧은 시 정신과 뛰어난 문학성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1999년 제정됐습니다. 시 부문 문학상으로 수주문학제 운영위원회와 부천문화재단이 주관하며 부천시가 주최합니다. 수상자는 상금 1,000만 원을 받고 당선작은 「현대시」 9월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상식은 9월 19일(수) 복사골문화센터 2층 복사골갤러리에서 열리며, 수주 변영로의 정신을 연구하는 콜로키움을 함께 가질 계획입니다. 이날은 9월 초 당선작 발표 예정인 부천신인문학상의 시상식도 열려 부천에서 발굴한 신인과 지역 문학인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치(齒)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 쥔다

우리는 무해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이동욱 시인의 당선 소감] _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바위  


집 앞 천변에는 드문드문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징검다리는 생소한 터라 아내와 나는 부러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징검다리는 넓은 바둑판 모양으로 천변 바닥에 박혀 있습니다. 비록 반듯하게 깎여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편평하고 하얗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 일단 멈춰 서서 어느 발을 먼저 디딜지 결정합니다. 거리를 가늠하고 무릎을 굽힌 뒤, 폴짝. 


그렇게 공중에 있을 때 기분은 참 좋습니다.

서사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의미의 도약처럼.

공중에 떠 있던 발이 바위에 닿는 순간, 발바닥에 닿는 바위의 감촉이 깊은 신뢰로 다가옵니다.


여름이 되어 비가 그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이거 이상한데, 하는 생각이 들 때쯤엔 이미 늦어버렸지요. 천변에는 통행금지를 알리는 방송이 울렸고, 우리는 종일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빗소리는 기관지가 약한 사람처럼 실컷 퍼붓다가 한순간 조용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강물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는 새벽. 혼자 천변에 나가보았습니다. 강물은 넘칠 듯 흔들리고 연약한 가지와 수풀들이 떠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온 빗물이 허벅지를 차갑게 했습니다. 나는 걸어가 멀리서 징검다리가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두운 강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하얗고 굳은 바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발을 디딜 때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는 쉴 새 없이 우산을 두드리고, 강물이 거대한 빗자루처럼 천변을 휩쓸고 다니는 중에도 나는 바닥에 박혀 움직이지 않고 있을 바위를 생각했습니다. 발바닥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집 쪽으로 크게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부천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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