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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이야기를 찾아서

경기학광장Vol.1 _ Column & study


< 이야기를 찾아서 >


- 경기학광장Vol.1 _ Column & stud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0년 전을 상상하고, 10년 후를 기억하라>. 딱 10년 전 어느 시민단체의 창립 10주년 기념자료집을 편집하면서 붙였던 제목이다. 항의성 질문을 많이 받았다. 상상과 기억이 바뀐 것 아니에요? 글쎄요. 의뭉스러운 웃음으로 눙치곤 했다. 내심으로는 멋진 작명이라 자부했다. 글의 허두로 여러 차례 써먹기도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독창적 작명은 아니다. 루이스 네이미어라는 영국 역사가(1988~1960)의 말이라고 알려진,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표절 100%다.
고백하거니와 네이미어가 무슨 심사로 그리 말했는지 솔직히 알지 못한다. 고약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상식을 완전히 뒤집은 표현인지라, 시쳇말로 ‘임팩트’가 있다. 자료집 제목 작명 이후 여기저기서 인용되는 걸 봤다. 어떤 이는 에드워드 카의 명제라고도 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랑>에 저 구절이 엔딩신에 등장한다는 애기도 들었다.
기념자료집을 만들 때 저 제목을 떠올린 이유는 단순했다. 단체의 초기 자료가 매우 빈약했다.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일단 과거를 상상하니까, 미래를 기억하라는 대구(對句)는 저절로 따라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10년 후 우리의 비전을 똑똑히 기억하자! 네이미어도 기뻐했을까?



말라빠진 기록과 생생한 이야기

한국인에게 역사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과거와 현재의 대화’ 라고 대답할 듯하다. 먹물이 좀 들어간 축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카가 뿌듯할까? <역사란 무엇인가>에 네이미어가 언급되었다는 어렴풋한 기억은 있다. 대화는 주고받아야 성립된다. 일방적인 말은 독백이거나 방백이라 해야 맞다. 대화는 소통의 시작이다.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야 소통이 이루어진다. 현대 한국인은 대화와 소통에 약하다. 제 말을 하기 바빠서, 상대방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파커 파머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갈파했듯이, 대화와 소통은 민주주의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과거에 대한 현재, 이것이 기억이고, 현재에 대한 현재, 이것이 비전이며, 미래에 대한 현재는 기다림이다.” 프랑수아 도스는 <역사-성찰된 시간>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까지 끌어온다. 신학적 시간관이 역사 이론의 전거로 차용된 셈이다. 어쨌거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라면 ‘확장된 현재’라는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역사는 ‘확장된 현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게 도스의 주장이다.

2009년 이른 봄부터 경기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답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경기도의 근현대사를 생활사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조사해 달라는 제안을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받았다. 답사장소를 결정 하고, 기초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둘러보고, 증언을 채록하고, 믿을 만한 기록과 비교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현장은 상상력을 요구했다. 시간을 채우고 지나간 숱한 삶의 흔적들을 네까짓 게 찾을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찾아보라고 시치미를 떼기 일쑤였다. 건조하고 형식적인 기록들은 조금만 수고하면 모을 수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이야기, 생생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많은 분이 도움을 주었다. 우연히 마주친 그 마을 어른들, 누가 알아주건 말건 오랫동안 향토사와 향토문화를 연구해온 분들에게 적지 않은 신세를 졌다. 기록에서는 보지 못한 이야기라도 듣게 된 날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단편적인 이야기여도 좋았다. 파편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말라빠진 기록보다는 백배 나았다.

이야기는 공간의 옷

공간은 이야기라는 옷을 입으면 달리 보인다. 사람의 삶이 있었던 곳엔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이야기가 없는 공간은 역사의 시야 바깥에 놓인다. 미하일 바흐친은 아예 크로노토프(chronotope)라 했다. 이야기 속에서 공간(chromos)은 시간(topos)과 합성되어 한 몸이 된다. 이야기가 역사라고 불리기는 어려워도, 역사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정통 역사학자들은 정색을 할는지 모르겠다. 물론 역사학은 이야기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그러모아도 역사를 서술하려면 엄밀한 방법론이 반 드시 필요하다. 지나간 시공간에는 정면충돌하는 내러티브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야기꾼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편집하기도 한다. 심지어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북한의 교과서는 여전히 1950년 6월의 전쟁이 북침으로 시작되었다고 기술한다.
긴치 않은 이야기에도 무의식적인 혹은 의식적인 왜곡과 비틀기가 들었을 수 있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이 삽시간에 무한 복제되기도 한다. 기생들의 기미 만 세시위 장면으로 알려져 온 사진처럼 말이다. 트레머리에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성들은 기생이 아니라 여학생이라고 바로잡혀서 다행이다. 사진 속 그이들이 여학생이냐, 기생이냐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수원 권번 김향화처럼 전국 곳곳에서 기생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역사학은 공간에 입혀진 옷(이야기)을 고증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상충되는 이야기들을 깊이 따져 진위를 가릴 책임도 진다.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 원고와 피고의 이야기가 마주치는 법정의 내러티브를 가려내야 하는 것처럼. 그러나 진위를 따져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역사가는 다시 이야기의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마련이다. 서구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이야기의 매력을 재발견한 1990년대 이래 역사 스토리텔링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경기도 근현대 생활사의 흔적을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수집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하노라고 했지만 충분하다고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고 고백해야 할 터이다. 애써 변명을 하자면, 자기 동리를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들을 조금 끌어내온 게 성과라면 성과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싶다.
작업을 하는 동안 지역학은 더 많은 이야기를 온축해야 한다는 믿음만은 확실히 굳어졌다. 특히 근현대 생활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애써 찾아내지 않는 한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를 품은 공간 자체가 개발 논리에 밀려 이 순간도 멸실되는 중이다. 근대문화유산 수준으로 인정받은 공간이 아닌 한 몸체도 옷도 자취를 감추는 건 시간문제다.
서울의 경우 2012년 여름부터 ‘미래유산’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중했던 기억을 망각해 간다.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래유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시행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서울연구원의 민현석 연구위원이 들려준 기획 의도다.
시민 공모를 통해 추천된 미래유산 후보는 2,500여 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430여 건이 ‘미래유산’으로 1차 지정되었다. 동산·부동산을 가리지 않는 서울의 미래유산에는 건축물은 물론이고, 자연물과 예술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의 미래유산은 ‘서울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억의 대상’으로 정의된다.


지역학은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한다

미래유산과 미래유산은 이야기라는 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로 여러 유산이 꿰일 수도 있고,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 사이를 잇는 이야기의 다리가 놓일 수도 있다. 이른바 선적(線的) 활용이니 면적(面的) 활용이니 하는 말들이 그런 의미일 것이 다. 서울시는 이처럼 선으로, 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길들을 여러 곳 지정하기도 했다.
서울 미래유산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정만 해놓고 보전노력과 활용이 미흡하다는 불만이 간혹 새어 나오고, 아예 지정을 반납하는 곳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미래유산 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시민의 호응도 좋은 듯하다. 나 역시 경기도 근현대에 관심이 있는 터라 순항을 바라는 마음이 크다.
경기도에서도 같은 관점에서 모색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서울을 벤치마킹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고, 시험적인 시도도 진행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경기도의 여건이 만만치 않다. 경기도는 면적도 면적이거니와 분산적이다.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와 어떻게 협력 체계를 만들어나갈 것인가부터 해서 고민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울은 정체성을 규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경기도는 어려움이 많다. 아마 전국에서 가장 갈 길이 먼 지역이 경기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제 고장 이름을 앞세운 ‘○○학’이 입길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을 선출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물론, 지역에 대한 연구는 ‘○○학’이라 불리기 전에도 존재 했다. 고장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향토사와 지역 문화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발굴과 정리 노력은 계속되어왔다. ‘○○학’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한 차원 높은 분과 학문 수준으로까지 발돋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된다.
중앙집권적 시스템 아래서 일개 구성단위로 취급되었던 지역의 고유성을 부각시켜 지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데는 체험만한 수단이 없다. 그러므로 지역학은 일종의 체험재(體驗材)라는 성격 을 갖는다. (정정숙,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지역학 활성화 방안 연구>)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역학은 탄력을 받는다. 연구와 교육 그리고 체험의 선순환 구조가 요청된다. 체험은 연구를 자극하고, 연구는 교육을 통해 확산되어 다시 체험의 질을 높인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학’이 지속적인 동력을 확보하려면 체험의 기회를 확대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지나치게 관광의 논리에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지역학은 체험재’라는 주장에 기꺼이 동의한다. 지역학이 좋은 체험재가 되려면, 이야기가 풍부한 장소가 많을수록 좋다. 무심히 지나치던 공간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더 좋다. 이야기는 체험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최고의 처방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조각이 말라빠진 기록보다 백배 낫다고 했다. 다소 지나친 단정일 수도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말라빠진 기록이라도 이야기에 담그면 되살아난다. 꽤 오래 전에, 씨레이션이라 부 르던 미군 전투식량에서 특수 건조한 과일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바싹 마른 과일 조각을 물에 넣으니 놀랍게도 생과일 모습으로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착오나 편견이 작용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 기는 더 많이 발굴되어야 한다. 잘못된 이야기조차도 맥락에 대해 더 풍부한 이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어긋나는 이야기들을 놓고 토론하고, 해석하고, 바로잡아가는 과정에서 지역학은 학문 으로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 근현대 생활사 공간 답사를 오랜만에 다시 진행했다. 10년 전 시작한 작업을 아퀴 짓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성이 부족했는지, 인심이 변했는지 이야기를 듣기가 수월치 않았다. 어렵 잖게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10년 전과는 영 딴판이었다. 정리를 하자니, 힘이 곱절로 든다. 별 수 있나. 10년 전을 상상하며 궁리를 짜낼 수밖에.


글 양훈도

경인일보에 24년 간 재직했다. 기자 생활 그만두고 늦깎이로 북한학을 전공했으나, 기자 시절 경기도를 돌아다니며 지역 르포를 쓴 경험 덕분에 경기도 생활사에 관심이 많다. 근대문화 흔적들이 품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 많은 경기학광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바로가기]




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1 _ 2019 여름창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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