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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원로 하동근 원장이 말하는 성남의 실체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성남의 원로 하동근 원장이 말하는 성남의 실체 >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하동근 원장


성남구도심, 분당, 판교의 삼색 신도시로 이뤄진 성남시는 50년 짧은 역사의 인공 도시다. 도시빈민연구의 전형으로 삼는 광주대단지(성남구도심)가 뿌리다. 성남의 지역운동가이자 시민사회 원로인 하동근(67) 판교환경생태학습원 원장은 “성남은 군사정권의 비인간적인 도시계획에 항거해 주민들이 쟁취한 새로운 근대 도시로부터 시작됐다”며, 그러나 “전기 신도시의 근원적 치유 없이 신도시 1기, 신도시 2기로 이어져 디아스포라의 상처는 진행 중”이라고 했다. 돈벌이 수단과 정치적의도로 만들어진 도시계획의 실체.

성남시에서 태어나 초중고, 대학교를 다니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러 성남 세대라 한다. 성남시가 생기기 전부터 조상대대로 터잡고 살던 원주민과는 또 다른 성남 토박이다. 하동근 원장은 성남세대의 부모세대인 성남 1세대다.



하동근 원장, 71년 성남 모란단지로 이사오다




내가 처음 성남에 들어온 게 1970년. 그때가 고3땐데 우리 아버지가 광주대단지(성남 구도심)에 이런저런게 있다더라. 가서 보려는데 같이 가자. 두 번을 왔어요. 국가 명령으로 서울시가 서울 판자촌 이주를 위해 69년부터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광주대단지 개발을 했는데 70년에도 한 게 없었어요. 수도, 전기 같은 도시기반이 없었으니까. 그 당시 친척중 하나가 딱지를 사서 전입해 살고 있었어요. 살기가 어떤가 와봤어요. 우리집 이사는 71년도에 7. 8개월에 걸쳐 집을 짓고 들어왔는데, 우리 아버지는 당시 민간인 김창숙이 개발하던 모란단지 딱지를 샀어요. 당시 모란단지는 딱지 한 장에 한 필지씩 팔아야 하는데 최고 27명에게 팔았어요. 나중에 유보지를 팔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건국 이래 최대 사기사건으로 김창숙은 7년 6개월 형을 받습니다. 결국 추첨해서 한 명만 주고 나머지 26명한테 땅을 만들어줘야 할 게 아녜요. 서울시가 개발 안한 땅을 20평씩 줘요.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 딱지 가격이 다 다른데, 딱지 가격이 비싸건 싸건 똑같이 줘요. 그 동네가 지금의 성남시 산성동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란이 성남 형성에 영향을 미쳤어요. 모란이 없었으면 광주대단지만으로는 조그만 성남시, 오늘날의 성남시가 안됐겠죠. 대학 다니다 광주대단지 빈민운동을 시작으로 경제 정책까지 문화 환경 다 포괄해서 지역운동을 했어요. 책도 냈고 맡은 직함 만 40~50개 될거에요. 이룬 것은 없어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있죠.


선입주 후건설 실험의 장이 된 성남의 모체 광주대단지




분당이 최초의 1기 신도시고, 판교가 최초의 2기 신도시입니다. 구 도심은 최초의 인공도시입니다. 물론 신도시라고 하는데 도시계획학 같은 학문적인 것에 넣을 수 있는 프레임이 없는거죠. 그런데 구 시가지도 신도시거든요. 당시 땅값을 올리려고 ‘아시아의 최고 신도시’라고 서울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합니다. 광주대단지는 ‘선입주 후건설’ 하는데 이는 도시기반 시설을 선입주를 통한 건설붐을 통해 지가 상승을 일으켜 그때 땅을 처분해서 도시기반 시설을 하겠다. 서울시가 산꼭대기 땅은 분양을 해 딱지를 줍니다. 시가지는 유보지라고 해서 나중에 도시가 완전히 되고 사람이 있고 상권이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서울시가 땅장사 하는거죠, 민간소유 땅 수용할 때도 돈 주고 한게 아니라 땅값 뛰었을 때 대토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돈 안들고도 충분히 신도시 하나 만드는 거죠. 그래서 선입주 후건설이 갖고 있는 철학의 의미는 첫째가 땅장사고, 또 하나는 인구가 최소 10만명이 되면 지들끼리 뜯어먹고 산다. 10만명 중에 기술 있는 놈, 돈 있는 놈, 이렇게 되면 시장도 형성되고 거기서 뜯어 먹고 살게 돼 있다. 12만명을 집어 넣은 거에요. 부양 이런거 하지 않아도 도시계획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게 선입주 후건설 의미에요. 선입주 후건설은 도시기획 역사상 광주대단지 딱 한번이에요.


그런데 구시가지만 땅장사 한 게 아닙니다. 분당, 판교도 마찬가지에요. 합동건설방식이라고 땅장사 방법을 바꿨어요. 건설회사하고 국가하고 입주자들하고. 수법이 광주대단지처럼 노골적이고 무식 하고 사람들을 완전히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합동으로 서로 합의해서 혼자만 먹지 않겠다. 광주대단지 때 돈버는 테크닉을 가르쳐 준거죠. 내가 이야기하는 거는 왜 개발을 했는지 세 개 도시가 똑같다. 부지는 왜 선정했는지 세 개가 똑같다. 갈수록 성공을 크게 합니다. 그런데 광주대단지는 실패했어요. 땅장사를 잘 했음에도 엄청난 광주대단지 사건이 벌어지니까. 서울시도 도망가고 다 도망갔어요. 실패를 한게 이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서는 너무 잔인한 거였죠. 생계대책 전혀 하지 않고 뜯어먹으라며 택지 개발이라고 한 게 줄만 그어놓았으니까. 그때 굶어서 엄청 죽었습니다. 하루에 20명을 장사 치뤘다고도 해요.


주택단지 조성에서 경영으로 둔갑


광주대단지 사업의 원래 이름이 일단의 주택단지 조성사업입니다. 그런데 경영사업으로 바뀝니다. 조성 글자 지우지도 않고 사인펜으로 두 줄 그은 것이 그대로 있습니다. 광주대단지를 만든 배경은 도시 산업화를 시키려면 산업예비군이 많아야 해요. 노동력이 싸야해요. 농사짓고 있으면 산업화가 안되니 이중곡가제 정책으로 서울로 다 오게 만듭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상을 초월하게 올라와요. 우리집도 그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초등학교 때 내가 우리 반에서 87번인데 우리 학년이 28반이 있었어요. 내 뒤로도 세 명이 더 있어요. 한 학년이 2500명 될 겁니다. 부제수업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도시 시설이 감당을 못해요. 서울에 판자촌이 청계천뿐만 아니라 프라자호텔 뒤 최고 번화가에도 다닥다닥 있는 거에요. 68년에 이디오피아 황제가 카메라 외신들 대동하고 방한하는 데 박정희대통령이 창피한 거에요. 고2 땐데 시청앞으로 태극기 들고 마중나갔어요. 양택식 서울시장이 광주 대단지 이걸 하게 됐어요. 근데 예산이 없으니 땅장사, 즉 경영을 한거죠.






딱지자본-철거민 딱지 사고 파는 전매입주자


성남은 딱지를 알아야 잘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철거민에게 준 게 20평짜리 딱집니다. 당시 최소 건축 허가 면적이 27.5평입니다. 원래 20평에는 지을 수 없는데 너희만 허가 내줄게. 철거민은 딱지 받아서 집을 짓는게 아니라 당장 먹고 살게 없으니 딱지를 팔고 다시 서울로 가거나 안양천변으로 갔죠. 파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것만 사는 사람이 생겨요. 딱지 값이 하루에도 몇 번씩 튑니다. 취로사업을 해도 돈 대신 딱지를 줘요. 15일 후 간조날(일본어, 월급날) 돈을 받는데 그때까지 당장 먹고 살게 없어. 그러면 딱지장사한테 가요. 그러면 이자를 제하고 줘. 남는게 없어요. 고리대금이죠. 성남에 부자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걸 딱지자본이라고 해요. 딱지 사고 팔고를 잘 해서 큰돈을 모은 사람이 몇 사람 생겨요.

이렇게 돈 있는 사람들은 철거민이 아니고 전매입주자라고 해요. 딱지가 전매됐잖아요. 전매입주자는 광주대단지를 상당한 신도시로 만든다는 소리에 집도 짓고 장사도 해보자는 사람이에요. 돈이 다 얼마 씩은 있어서 1, 2년 먹고 살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딱지장사가 장사꾼만 하는게 아니라 지금 태평역부터 숯골 사거리가지 1.36km 될 텐데, 복개전 하천변쪽으로 전부가 복덩방이에요. 복덩방 전체 가 딱지 전매 사업을 하고 있는 거죠. 철거민은 대부분 나가고 한쾌 잡자 이러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그 당시에 성남에 있는 산업은 유일하게 부동산밖에 없었다고 봐요. 홍보가 최대가 된 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동시 선거 때. 대통령 후보 박정희, 김대중이 유세하는데 여기 정 말 잘사는 도시 만들어주겠다 공약을 해요. 국회의원 후보는 차지철이 유명했는데 이리 이사오면 이사비 주고 생활비를 2만원씩 주겠다고 공약을 해요. 딱지값이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른데 사람들이 안오고 배기겠습니까. 되팔고 사기만하지 집짓는 사람이 없는 거에요.


전매금지


총선이 끝나는 날 갑자기 전매를 금지시켜요. 그리고 며칠까지 집을 안지으면 딱지를 무효화시키겠다. 전매로 땅 산 사람들 취득세 언제까지 내라. 취득세를 평당 1만6,000원까지 과세 기준으로 잡 았는데 당시 서울 동자동 남대문 앞 땅값이 1만6,000원이었어요. 환지는 땅값이 30만원까지 갔다고 하니까. 10평을 전매 했으면 16만원에 대해서 취득세가 나와요. 집지어야지 세금내야지, 전매 못 하지. 그거 때문에 광주대단지 사건이 난거에요. 이 사람들은 완전히 뒤통수 맞은거에요. 전매금지령 딱 떨어져서 완전히 딱지값이 똥값이 된거지요.


광주대단지 사건


‘100원에 산 땅 만원에 폭리말라.’ 대책위원회 요구조건을 서울시가 안들어주니 투쟁위원회로 바꿔요. 철거민과 같이 갑니다. 엄청나게 조직이 커졌죠. 방을 돌렸어요. 내가 그걸 봤는데 곡괭이건 몽둥이건 다 들고 나와라. 다 가지고 나왔어요. 사건이 나니까 구호물자를 풀죠. 거의 죽음의 원인이 아사가 제일 많았을 거에요. 청와대까지 보고가 되는데 요구조건 다 들어줄테니 끝내자. 요구는 다 들어줬어요. 유예해주고 먹고살 수 있게 취로사업 하고 1,2,3공단이 들어왔어요.



성남시 승격


광주대단지 사건이 끝나자마자 국가가 정식 독립시로 만들어주겠다며 경기도로 넘겨요. 3년 있다가 74년도에 시로 승격합니다. 광주대단지가 30만평었는데 시가 되면서 판교 분당까지 300여만평이 된거죠. 광주대단지를 행정체계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는 방법은 시로 만드는 것밖에 없었죠. 난리가 나니까 예산계획을 보면 서울시가 도시기반 예산을 늘립니다. 학교를 경기도가 지어준 데가 있고 서울이 지어준 데가 있고. 근데 경기도가 결국은 다 한거에요. 경기도 니네가 해라. 가장 상징적인게 성남공설운동장이에요. 원형경기장을 짓는데 한 칸씩 해서 6년인가 7년 걸렸어요.




세 개의 신도시로 이뤄진 성남시


성남은 인공도시죠.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도시가 아닌 인공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왜 만들고, 무얼 하려고 했나. 이런 목적이나 배경이 중요합니다. 성남은 3번 신도시를 같은 지역에다 만듭니다. 광주대단지, 분당, 판교를 만듭니다. 하나의 도시에 신도시를 세 개를 만든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어요. 광주대단지는 철거민의 도시, 서민의 도시, 하층민의 도시입니다. 분당은 중산층의 도시. 강남 집값을 잡아야 하는 정치적인 문제로 조성돼 강남 사람들이 실제로 여기로 많이 왔고 계속 중산층의 도시를 만듭니다. 아파트값하고 관련되니까. 그걸 어떤 인류학자는 ‘사회적 생산’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성남 구시가지하고 차별적 장벽을 만듭니다. 심지어는 아파트단지에 소형차나 경차 이런거 가지고 다니는 것 자체를 금지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눈초리와 분위기를 만들어요. 판교는 IMF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상류층의 도시로 만들어요. 세 도시를 국가적 필요 해결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듭니다.


남단녹지와 신도시 도미노


부지를 찾다보니까 여기가 좋았죠. 분당도, 판교도, 구시가지도. 구시가지는 당시 광주군 중부면이었는데, 서울에서 거리도 적당하고 땅도 싸서 산업예비군 기능을 해줄 수 있는 최적지였어요. 분 당은 왜 이리로 됐냐. 75년 5월달에 박정희 대통령이 광주대단지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시찰을 와서보니 인구가 20만에 가까워 원래 12만 도시를 하자고 했었잖아. 일단 집값 싸고 전세값 싸면 몰려오는 거죠. 그때 성남 집들은 방 한칸에 아궁이 하나씩 쭉 돼 있는 집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대통령이 화를 냅니다. 자연적 인구증가는 어쩔 수 없지만 사회적 인구증가는 철저하게 막아라. 이러고 돌아가서 나온 조치가 5·4조치에요. 분당, 판교를 남단 녹지로 묶었어요. 구시가지에 살고 있는 사람을 절대 밖으로 못나가게 한거죠. 당시 광주대단지가 전체 성남 면적의 9.1%에요. 그 땅에 92%의 인구가 살아요. 지금도 인구밀도가 아주 높아요. 남단 녹지가 해제되면 분당 판교로 갈 수 있지만 당시 조치로 화장실도 못 고쳤어요. 그 정도로 철저하게 5·4조치를 통해 묶었어요.

그러니까 땅값이 그대로인 거에요. 안올랐어요. 89년도에 분당을 개발 하려고 보니까 여기가 적지에요. 판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그린벨트 지정지역이에요. 판교는 IMF 겪고 난 후에 부동산으로 경기부양을 해야겠다. 판교도 땅값 싸지 교통 좋지. 판교 건설하는데 3조가 좀 넘게 들고 LH가 2조 벌고, 경제효과는 36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겁니다. 상류층 도시를 만드니 주변 아파트 가격 상승분만 36조. 내수경기 살아나고 제조업과 전체 경제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는 거죠.


성남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국가나 서울시 주체하고 하위주체인 경기도, 광주군, 성남시 관계 변화를 보면 세 도시가 만들어질 때 성남의 입지가 세 개가 다 달라요. 구도심 만들 때 광주출장소를 뒀어요. 당시 광주군에 대단지 집 짓는 사업을 하겠다는 통보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서울시가 사업을 하면서 경기도에도 나중에 통보만 하는 식이고. 분당할 때는 이틀인가 하루전에 국토부가 이대엽 성남시장한테 남단녹지를 신도시로 하겠다 통보해요. 상의도 안했어요, 근데 판교는 전혀 달라요. 계획 단계부터 국토부, LH공사, 경기도, 성남시 4자가 다 모여서 한 테이블에서 도시계획안을 입안할 때부터 상의해서 했어요.


순환재개발


현재 구도심 집은 다 외지인 소유고 10년전부터 재개발 한다고 집값만 오를대로 올랐죠.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판교에 아파트를 져서 구도심 세입자를 잠깐 이주시킨 후 구도심에 아파트를 다 지면 새 아파트에 입주시키자고 한건데 다 외지인들이 입주해요. 비싸니까 살던 동네로 들어간 사람이 10퍼센트가 안되요. 광주, 용인 더 외곽으로 떠나요. 그래서 도시재생 해야지 재개발은 안된다는 겁니다. 광주대단지가 그때 사건으로 끝난게 아니라 계속 연동돼서 지금은 집주인들이 떠나는 도시까지 연계돼 오는거죠.


8.10사건 추진위원회


조례가 통과되고 9월에 광주대단지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면 이름부터 짓는 작업을 시작할거에요. 그동안에는 8월 10일에 일어난 사건이니까 내가 8·10사건, 혹은 8·10 광주대단지사건이라고 부르자고 제안을 해서 시사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공식이름이 그렇게 됐어요. 이 사건은 민간인들이 군사정부에서 대규모 소요를 일으킨 최초 사건입니다. 군사정권 최초고 근대사의 최초의 사건입니다. 70년 8월 10일 치안본부는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기사 보도자료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치안본부장이 지어놓은 난동사건으로 불렸죠.


인위적 정주의식


성남을 도시계획의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사회문화적 장벽이 세 도시마다 다 있는거죠. 인공도시로만 이뤄진 도시가 지속되다 보니까 농촌경제 시대의 공동체 전통이 없어요. 성남시 행정부가 내세웠던 게 성남에 고향을 심자였습니다. 정주의식이 취약했고 뭔가 성남에 살 사람을 대상으로 행정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여건 되면 떠나겠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더구나 인위적으로 하는 게 어렵죠. 분당사람 중에 구시가지에 70% 이상이 안가봤어요. 근데 그 사람들은 성남을 거치지 않고 서울로 가는 길을 뚫어달라고 요구했어요. 지하철 신분당선도 새로 뚫어 성남을 경유하지 않고 강남으로 가는 그런 의도가 있죠. 그게 다 사회적 생산이죠. 분당 집값 오르고. 결국 행정서비스를 분당용, 구시가지용 따로 만들어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되죠.


성남의 미래


사회문화적인 것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려면 경제적 기반이 다 바뀌는게 필요해요. 구시가지도 재개발, 재생이 다 끝나면 거의 새로운 사람들이 오게될 테고, 경제적 기반도 바뀔테고, 이리되면 변화가 있겠죠. 분당이 지금 연금 받는 노인도시가 돼 가는 반면 구시가지가 더 새롭게 짓고 하기 때문에 인구 구성도 달라질거고, 그 쪽이 오히려 젊은 도시가 될 거에요. 언제될지는 모르죠. 판교는 상류층의 도시로 기획됐기 때문에 점점 더 최고의 도시문화, 삶의 기반, 최고로 계속 가는거죠. 그쪽과 관련된 전공자나 기술자나 학자나 다 이리로 안가면 안되요. 포스트가 만들어진다는 게 그래서 무서운거죠. 망하지 않을 미래도시. 부가가치가 높아질거고 집값은 계속 올라갈 거에요. 테크노벨리 근무 인원이 7만이 넘는데 70%가 수원, 인천 등 외지에서 출퇴근해요. 30%정도가 구시가지에 사는데 이들을 유도해 임대주택 만든다, 서현동에 테크노밸리 아파트단지 만든다. 구도심 재개발과 이들 유입세대가 삼색신도시의 높은 장벽을 허물고 정주의식을 심어낼지 궁금합니다.


*사진 출처: 성남의 역사와 문화(성남시사편찬위원회·2015)


글 박숙현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공공감사정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사주당의 태교신기, 처인성 등 용인지역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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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2 _ 2019 가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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