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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을 거닐다. 그리고 마주하다.

경기학광장Vol.2 _ Trip & Healing

< 남한산성을 거닐다. 그리고 마주하다. >


- 경기학광장Vol.2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나기가 후두두 내리는 날 남한산성을 오른다. 산성을 오르는 이유와 방법은 오르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만 보며 걷는 어른들이 있고, 가벼운 걸음으로 뛰는 아이들도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 있고, 끊임없이 주변 풍경을 살피며 걷는 사람도 있다. 남한산성 길을 걸으며 인조의 삼전도를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부부를 만나고 인조가 피난길에 올라 처음으로 들어섰던 문 앞에서 깔깔거리며 역사 수업을 듣는 한 무리의 아이들도 만난다. 정작 아이들은 산성에 대한 역사수업보다는 길 위에 있는 다리가 떨어져 나간 메뚜기 한 마리와 붕붕 날아다니는 꿀벌에게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아이들을 따라 역사수업 귀동냥을 나선다. 소나기와 함께 찾아 온 덥고 습한 여름의 한낮 송골송골 맺힌 땀을 연신 훔치며, 남한산성이 어떤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지를 아이들을 인솔해온 교사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한다. 험한 지형을 활용,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성곽축성기술의 모습들을 발달단계별로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것이다. 총 12.4km에 달하는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성곽을 유심히 살펴보면 돌의 종류나 성곽을 쌓은 모습이 제각기 다른데 이것은 남한산성이 어느 한 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기록상 통일신라시대에 쌓았던 주장성을 기초로 하여 조금씩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등의 국제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로 평가 받고 있으며 포곡식 산성으로 계곡을 둘러싸고 축조된 산성이라는 것과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어 전쟁이나 나라에 비상이 있을 때, 임금은 한양도성에서 나와 남한산성 행궁에 머무르고, 종묘에 있는 선조의 신주(神主)를 옮길 수 있는 좌전을 마련하여 조선의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인정받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알려준다. 더위 탓일까? 아이들은 자꾸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듯 하고 귀동냥으로 듣기에는 차고 넘치는 지식을 훔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옆길로 빠져 산성을 오른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이 있다. 저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만날 수 없는 귀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겠지만 그냥 포기한다. 누군가 열심히 밟으면서 사진도 찍고 꽃도 보았으리라 그래서 저렇게 길이 난 것일 테지만 다 욕심이다. 굳이 들어오지 말라고 줄을 친 저곳까지 올라가서 살펴 볼 일은 아닐 것이다.


개망초 Erigeronannuus (L.) Pers 남한산성

   국화과 두해살이풀로 전국에 분포한다.


개망초가 지천이다. 아이들은 삶은 계란을 반으로 잘라놓은 것 같이 생겼다고 ‘계란꽃’이라고 부른다. 개망초는 우리나라 어디서든 관찰할 수 있는 흔한 들풀이지만 귀화해 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귀화식물이다. 개망초를 ‘왜풀’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일본을 통해 우리 나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도 개망초의 유입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에도시대 말(1865년경) 관상용으로 도입되었다가 들판으로 탈출해서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한글이름 개망초는 망초에 개를 더한 것으로 1921년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 속에 나오는 일본명 이누요메나(犬嫁菜)의 ‘개(犬)’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건너왔기 때문에 빼앗긴 나라, 빈집 황폐한 땅에, 제일 먼저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남한산성 행궁


북한산성 서암사


가끔 TV에서 하는 사극을 시청하다 개망초가 지천으로 널린 꽃밭에서 연인이 뛰어 다니는 신라시대가 배경인 드라마의 한 장면도 보았고, 조선시대 인물 신사임당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현재 꽃꽂이로 쓰이는 수입산 꽃 ‘왁스플라워’를 한 다발 안기는 희한한 장면도 보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또한 역사왜곡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도 식물에 관한 역사고증이 필요한 작업일 것 같다.


싸리 Lespedeza bicolor var. japonica NAKAI 남한산성

콩과 전국 각지의 산이나 들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낙엽활엽수 이다.


싸리꽃에는 등에가 꿀을 찾아 열심이다. 산성길에서는 여러 종류의 싸리를 만날 수 있다. 콩과 식물인 싸리는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어서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60년대 사방공사에 많이 심어져 산림 녹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또 싸리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건조에 강하고 줄기가 굵게 자라는 참싸리는 바구니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도 했고, 나 뭇가지를 엮어 만든 사립문, 울타리의 재료로 쓰였다. 나이 많으신 분들로부터 한국전쟁 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김없이 싸리나무를 베어다가 밥을 해 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생나무도 불에 잘 타며 화력이 좋고, 특히 연기가 나지 않아 전쟁시 군수물자로 쓰이기도 했다니 여러모로 유용한 나무다.


조록싸리 L. maximowiczi SCHNEID.북한산성



땅비싸리 Indigofera kirilowii 북한산성


칡 Pueraria thunbergiana 남한산성

콩과 덩굴성 낙엽관목으로 전국에 분포하고 산기슭 양지쪽에서 자란다.


후텁지근한 바람에서 향기가 전해온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역시 칡꽃향이다. 그러나 때론 너무 흔해서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 반평생을 살아도 꽃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식물 중에서 우리의 삶에 칡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식품으로, 섬유로, 생활용품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 생활과는 밀접한 식물이지만 멀고 먼 미국 땅에서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칡은 미국에서 일본 이름인 ‘쿳주(Kudzu)’로 알려져 있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독립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장 일본전시관에 사료 작물 및 정원 장식용으로 조경업자에 의해 일본에서 옮겨져 전시 된 이후 빠른 시간 정원의 아치나 파티션에 장식으로 심어졌다. 심지어 토양유실을 막기 위해 미정부가 주도적으로 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인간의 계획대로만 되는 것일까? 정원을 탈출한 칡은 140년이 지난 현재는 미국 남동부를 뒤덮어 중장비를 동원해도 제거하기가 힘든 유해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칡은 뿌리가 굵고 범위가 넓으며 껍질도 한국산보다 두 세배는 질겨서 벗겨내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완벽한 현지식물로 거듭났다.



칡잎은 잎자루마다 세장의 잎이 달리는 삼출엽 식물이다. 맨 아래쪽에 나오는 한 장은 좌우대칭을 이루지만 위에 있는 두 장의 잎은 좌우가 비대칭을 이루게 한쪽이 작게 자란다. 대칭을 이루어 잎이 커지면 아래쪽에 있는 한 장의 잎이 가려져서 햇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식물은 우리가 그 능력을 미쳐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똑똑하다.


사위질빵 Clematis apiifolia 남한산성

미나리아재비과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는 덩굴성 낙엽관목이다.


불꽃놀이를 하듯 하얀 꽃들이 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사위질빵을 만난다. 꽃잎처럼 보이는 네 장의 하얀 꽃받침에 올라앉은 가느다란 수술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성곽 길을 더욱 풍성하게 그리고 빛나게 해 준다. 사위질빵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 중에는 할미밀망이라는 것도 있다. 이 식물들은 어쩌다 이런 재미난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을까? 질빵이나 밀망은 짐을 짊어 질 때 어깨에 거는 멜빵을 이르는 다른 이름이다. 사위질빵은 할미밀망에 비해 덩굴이 가늘고 약해서 짐을 걸머지고 옮기기에는 약하다. 귀한 사위가 힘든 일을 하지 않도록 지게의 멜빵끈을 끊어지기 쉬운 사위질빵으로 만들어 조금씩 짐을 나를 수 있게 장모가 만들었다는 설과 짐을 지고 사위가 먼 길을 떠나면 딸이 혼자 남을까봐 떠나지 못하도록 잘 끊어지는 약한 것으로 멜빵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할미밀망은 사위가 메지 못한 짐을 자신이 메기 위해 좀 더 질긴 줄기로 멜빵을 만들었다는데서 할미밀망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하니 이래저래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마음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할미밀망 Clematis trichotoma Nakai 축령산


사위질빵은 잎자루마다 잎이 세 개씩 달리는 삼출엽이고, 할미밀망은 다섯 개가 달리는 오출엽이다. 사위질빵은 할미밀망보다 꽃이 피는 시기가 한두 달 늦은 7월에서 8월에 피며, 꽃과 잎의 크기가 할미밀망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참나리 Lilium lancifolium Thunb. 남한산성

백합과 전국각지 산과들에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123층 건물이 멀리 건너다보여 사진찍는 사람들의 성지순례가 된 수어장대 근처 길에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참나리가 피었다.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있다. 나 좀 봐달라고 말을 걸고 있지만 높은 건물과 한강이 보이는 반대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는 못한다. 지체 높은 양반들을 일컫는 ‘나리’에서 이름이 유래된 만큼 크고 훤칠한 풍채를 자랑한다. 붉은 색깔의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참나리의 주변에는 호랑나비가 자주 찾아온다. 큰 꽃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향해 피어 있고 수술이나 암술은 길게 튀어 나와 있어서 나비종류 중에서도 날개 힘이 좋은 큰 종류의 호랑나비에게 최적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참나리의 수술 끝은 T자 모양을 이루며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각도에서도 나비의 몸에 꽃가루를 묻힐 수 있게 되어있다. 꽃가루에는 끈기가 있어서 나비의 날개에 쉽게 잘 달라붙는다. 암술 끝에도 끈적이는 점액이 있어서 나비가 가져온 수술의 꽃가루가 달라붙기 쉽도록 되어 있다. 참나리의 특별한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개체와 수정을 하지 않고도 번식할 수 있도록 잎날개 아래에 자신의 복제품인 짙은 갈색의 주아(珠芽)를 만드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다른 참나리의 꽃가루를 기다리지 않고도 복제품을 떨어뜨려 번식을 하는 것이다. 또 덩이뿌리를 가지고 있는 참나리는 바로 위에서 싹을 뻗는 다른 식물과는 달리 땅위로 나오기 직전 한 번 옆으로 뻗어 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땅위로 나오는 영리함을 가졌다. 덩이뿌리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위장하는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사투를 벌이는 식물들의 노력은 이렇듯 눈물겹다.


참나리 주아. 북한산성


파리풀 Phryma leptostachya var. asiatica 남한산성

파리풀과 전국의 산과들 약간 그늘진 곳에서 자 라는 여러해살이풀


파리를 잡는 끈끈이에 붙어있는 수많은 파리의 사체와 함께, 머리카락이 엉켜붙어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파리끈끈이의 원조가 식물에도 있다. 물론 붙여서 잡는 방식이 아니긴 하 지만 말이다. 뿌리를 짓찧어서 그 즙을 종이에 먹이거나 밥에 버무려 파리가 많은 곳에 놓아두고 파리를 잡은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파리풀이다.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까지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지만 파리풀은 1과 1속 1종밖에 없는 풀이다. 지구상에 파리풀과 비슷한 그 어떤 식물도 없다는 뜻이다. 7월에서 9월까지 5mm 정도의 작은 꽃들이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위를 보고 피기 시작하지만 꽃 하나에 열매가 하나씩 맺히면 완전히 아 래를 보고 달린다. 7월의 끝자락 남한산성 길에서는 양옆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파리풀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숲길을 오가는 사람들이나 길고양이들이 씨앗을 부지런히 옮기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너무 흔해서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짚신나물, 큰뱀무, 맑은대쑥... 수많은 풀과 나무들을 어느 여름날 산성길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볼 일이다. 휴식이 필요한 당신 숲길로 가자!



글 김미애

비영리민간단체 미래환경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및 구리시환경교육센터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환경교육 강사로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뛰어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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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2 _ 2019 가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0.18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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